시작은 쉽고, 과정은 험난한 그리고 결과는 답답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
회사에서 흔히 보는 브랜딩 회의
국내에서 팀들과 함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수립할 때였다. 상사였던 K부장이 한마디했다. "경쟁사 좀 보거나 삼성, LG등 국내 리딩 기업의 좋은 말들을 다 모아보고 우리에게 제일 잘 맞는 것으로 정리합시다.” "그리고 Chat GPT 를 활용해서 가치제안을 만들고 가장 괜찮은 것으로 정합시다" 산업 카테고리내 글로벌 7위의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위에서 회사의 미션, 비전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부서들은 본능적으로 최대한 피하려한다.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외에 하나가 더 생기는 꼴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경험이 있어도 과정의 어려움을 알고 있어서 하고 싶지 않다. 결국 경영기획팀, 브랜드 마케팅팀, 홍보팀에서 진행하거나 TF(Task force)를 구성한다. 담당팀이 정해지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결정권자의 코드에 맞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진다. 입맛에 맞는 어휘가 담긴 말이 나오고 ‘O.K 이걸로 합시다’. 가 나오면 그제서야 마무리 된다. 직원들의 생각과 공감대가 없는 공허한 방향성이 결정되는 셈이다. 그 다음날 당신의 홈페이지 혹은 메일에 방향성이 나온다. 이게 현실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브랜드 수립을 어렵게하는 벽이 존재한다. 실무 입장에서 내부 장애물은 지치고 포기하고 싶게 만든는 첫번째 요소다. 기업 문화, 결정권자의 브랜드 지식 부족, 브랜드 방향의 시각차이, TF (Task force)구성의 어려움, 참여자의 동기 부족 등 다양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난관들이 당신을 가로막을 것이다. 당신은 쇄빙선처럼 하나하나 부수며 앞으로 나가는 힘겨운 여정을 할지도 모른다.
브랜드 실무자라면 겪을 수 있는 이슈와 어려운 점들을 정리했다. 지난 몇 년동안 브랜딩 경험을 하다보니 몇가지로 요약이 된다. 이외에도 당신이 견지해야 할 마음가짐도 덧붙였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좀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미리 대응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자책과 욕심이이 섞인 마음이다. 당신이 겪게될 난관들을 미리 예방하고, 잘 대응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동료들과 같이 성취감을 맛보는 시간으로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1. 브랜딩 경험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작 첫 단추부터 헤맬수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시 필요한 정의와 의미, 개념 차이를 알고 시작하자. 그리고 당신이 만드는 결과물에 대해 모두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디자인이나 상품처럼 눈에 보이는 Tangible 제품이 아니다. 브랜드 에센스와 같이 한, 두개의 워딩으로 구성된 브랜드 지향점을 만드는 것인지, 당신 직원들이 지향하는 3,4개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 것인지, 브랜드 슬로건이나 광고 카피처럼 크레이티브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인지 명확하게 해야한다. 암묵적으로 알고있어도 한번더 의미를 확인하고 시작하자. 개념과 생각하는 결과물이 서로 다를 경우 경우 나중에 모두 뒤짚어지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 개념을 명확히 하고, 함께하는 팀원들이 있다면 동일한 개념의 이해선상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에센스, 브랜드 컨셉 등 꼭 알아야 할 필수적인 정의를 담았다. 시작전, 중간에 개념을 떠올리면서 결과물을 다듬어 가길 바란다.
2. 외로운 단독 수행
회사에서 당신 한명에게 일을 맡기거나 TF를 조직하거나 진행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른지만 단독수행을 선호할 수도 있고, 팀진행을 원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 외주를 고려하고 당신 혼자서 진행을 요구하는 것도 흔한일이다. 혼자서 외주 진행을 하면 일해야 한다면 반드시 전체 진행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파트너사와 협업하길 바란다. 브랜딩 방법과 브랜딩을 이해하면 파트너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호간의 신뢰와 이해가 결과물을 더 고민해주는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주 전문가별 특징과 전체 진행방법은 뒤의 챕터를 참고하길 바란다. 혼자 진행하는 것이 감당하기 힘들다면 회사에 팀원을 요청하자. 혼자보다는 2명, 2명보다는 3명으로 일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 최소한의 지지선을 확보하도록 한다. 브랜드 워크숍시 팀구성과 진행하는 방법론을 담았다. TF 구성시 도움이 되길 바란다.
3. 끈기와 집념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은 최종 결과물의 설득까지 열정과 끈기가 없으면 쉽지 않다. 조직내 브랜드 수립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피하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의 결정권자는 대부분 회사 오너나 대표이기 때문이다. 결정권이 본인에게 없다면 프로젝트를 임하는 태도는 당연히 수동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본인이 결정권을 가진 것처럼 주동적으로 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더 많은 어려움을 맞게된다. 주도적으로 끝까지 당위성, 전개과정, 결과물의 논리로 소통하고 설득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외국계 M사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수립할 때 거의 1년 반이 걸렸다. 매출 등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인정받기도 힘들기 때문에 위급상황이 생기면 중단을 반복했다. 심지어는 매출 압박으로 인해 타부서로 이동되기도 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중간에 없어지고 말았다. 원인은 결국 나의 열정과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에이라고 생각한다. H사에서는 최종 결과물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매일, 매주 필요할때마다 최종 오너에게 보고하고 소통했다. 브랜딩의 필요성과 이유를 매번 강조했다. 지속된 설득과 보고로 3개월 안에 결정하고 마무리했다.
4. 단기간 성과의 압박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임원은 계약직의 시한부 인생을 걷는 사람들이다.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들의 앞날은 없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처럼 성과가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를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임원은 거의 없다. 1개월이든, 3개월이든 6개월이든 꼭 마감(Deadline)을 정하고 시작하자. 프로젝트가 장기화되는 된다는 것은 잊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일정과 세부 일정을 꼼꼼히 관리하자. 먼데이닷컴(Monday.com), 라이크(Wrike), 트렐로(Trello) 등 업무툴을 사용하여 실시간 상사에게 공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귀찮고 힘들지만 진척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면 상사, 임원과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할 떄도 있다.
어떤 기업도 오랫동안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의욕에 앞선 나머지 수행 기간을 30일로 정하고 진행한 적이 있다. 30일만에 500page가 넘는 전략 보고서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 브랜딩 수립 과제는 0점 짜리로 프로젝트였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내부공감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꺼운 보고서는 단기간의 성과 압박에 시달린 보여주기식에 불과할 뿐이었다. 필요없는 수많은 보고서의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시 최소 2~3개월의 시간은 확보하고 진행해야 무리가 없다고 본다. 내부 소통을 위해서라도 꼭 일정기간은 확보하길 바란다. 최소 3개월의 시간을 보장받아도 1, 2개월로 단축해야 하는 상황이 나올수 있지만 말이다.
5. 최종 결정의 벽
세번째 피동적인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브랜드 수립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이다. 최종 결정의 단계에 오면 아웃풋이 최선의 결과물인가? 더 나은 대안은 없는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충분히 모든 사항을 고려했는가? 혹시나 누락한 것은 없는가? 등 결정을 앞두고 대부분 심사숙고하게 된다. 아마도 가장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CEO, 프로젝트 리더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오너리더십이 강한 조직에서는 CEO가 단독적으로 결정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결정을 하는데도 어려움을 느낀다. 독단적인 결정처럼 보이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사람의 결정으로 모든 리스크를 책임지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부직원의 선호도를 조사하거나 외부 소비자 선호도를 진행한다. 내부의견 수렴과 소비자 조사를 통해 최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6. Outside - Inside approach (고객 중심의 생각)
제품, 서비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수립하는 경우에는 공급자 마인드에서 수요자(소비자, 고객) 마인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최종 방향성에서 내부 직원들이 생각하는 지향점과 소비자의 needs, wants 와 상반되거나 다른 결의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야할까? 브랜딩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업 브랜딩이라면 내부의 지향점에 더 무게를 둬야하지만, 제품이나 서비스 등 소비재와 관련이 높다면 소비자 중심으로 풀어야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을 진행하는 시작부터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기획자 중심으로 생각한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소비자가 고려하는 fact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갭(Gap)을 의도적으로 줄이고자 노력해야 한다. 매 단계에 있어서 소비자를 고려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의도적으로라도 그 관점을 반영하도록 해보자. 그들이 원하는 것,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효익,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 등 고객의 유전자(Gene)를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웃사이드 관점에서 관계를 구축하고 실제적 요구를 반영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7. 내부브랜딩의 모멘텀
당신은 모든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목표를하는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 새로 온 전학생이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가 단짝을 만들고, 동네에 새롭게 오픈한 가게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단골을 만드는 노력의 모든 과정이 바로 브랜딩 과정이다. 대부분 사람이 관계의 대상을 외부 고객과의 관계로 많이 생각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고객과의 관계다. 여러분의 회사에 몸담고 있는 직원과의 관계가 첫 단추이고 관건이다. 함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발견하고 찾으면서 형성하는 공감대가 내부 브랜딩(Internal Branding)의 시작인 셈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라는 프로젝트 모멘텀을 통해 내부적인 단결,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길 바란다.
위의 언급한 장애물로 인해서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내부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다. 내부 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외부에 맡기더라도 내부 결정권자와 함께하는 워크숍, 미팅 등을 반드시 요청하도록 한다. 소통을 통해 수직 간, 수평간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알고, 이해하고 통합하는 합의의 과정을 꼭 진행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럴듯한 보기 좋은 어휘를 찾아 우리의 브랜딩 목표가 이것이라고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는다. 중견 이상의 회사에 가보면 책상에 꽂혀있는 먼지가 쌓인 브랜드 가이드 북이나 브랜드 비주얼 북이 있다. 브랜드 북이나 브랜드 비주얼 가이드에 따라서 잘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만나기 쉽지 않다.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철저한 관리 시스템이 없거나 내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래미안의 브랜드 적용 현장을 본적이 있다. 브랜드 로고, 사용 환경 모든 상황에 예외를 최소화하며 까다로운 잣대로 관리하고 있었다. 래미안의 브랜드 관리가 모든 환경에서 일관성있게 지켜지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안의 정체성을 외부로 전달하는데 내부의 일관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외부에서 관리는 요원한 일이 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