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리면 0.1초 만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딸이 있다. 엄청 이쁘고 매력적이다. 작은 키의 나에게서 진화되어 늘씬하기까지 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그냥 차르르르 멋이 차오르는 딸이다. 유머 감각도 있어 함께 있는 순간순간을 숨 넘어가게 깔깔댈 수 있다.
그런 딸에게 내가 붙여준 별칭은 '스. 스. 쏘. 스.'다. 나 혼자만 속으로 외치는 거지만. 커가면서 엄마보다도 더 성숙하고 지혜로워 엄마의 인생 상담도 해준다. 내게는 '스위트, 스위트, 쏘, 스위트'다. 아무튼 멋있다.
딸이 작업하다 말고
"편의점 갈까?"
한다. 나는 0.1초 만에 토끼처럼 일어나 잠옷 위에 털모자가 달린 파카를 걸쳐 입었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몰골이... 나도 모르게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립스틱을 잽싸게 집어 들고 입술에 문댔다. 그 광경을 본 딸이 깔깔 웃어댔다.
"마스크 쓸 거 아냐?"
하면서. 그렇다. 마스크를 쓸 건데.... 쩝. 밖에는 보름달이 훤했다. 예전엔 보름달만 뜨면 미친 짓을 했었다.
내일부터 추워진다고 해서 파카를 입고 나온 거 치고는 너무 온화했다. 아직은 아닌가? 그런데 버스정류장의 사람들을 지나다가 딸의 모습을 흘깃 봤다. 언제든 같이 걸어 다니면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아지는 딸을! 그런데 아니, 짧아진 잠옷 바지를 그대로 입고, 그것도 커다란 토끼가 그려져 여기저기 깡총거리며 뛰어다닐 것만 같은 무릎 나온 잠옷 바지를 입고. 하루 종일 샤워도 안 해 떡진 머리카락은 뒤집어쓴 후드티 사이로 미친년처럼 비집고 나와서 펄럭이고. 그 위에 밖에서 노숙할 것만 같은 파카를 걸치고, 마스크를 쓰고.'기생충'의 '초인종' 씬인 줄! 살짝 부끄러웠던 것 같다.
빵집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시간은 밤 10시 59분이었다. 혹시 1분 늦으면 못 먹을까 봐 무단횡단으로 뛰어가려 했었으나 동네적 지위가 있기에 꾹 참았다. 주인아저씨가 빵도 사게 해 주고 덤으로 남는 빵도 주었다. 히히.
그리고 두 군데 편의점을 들러 이것저것 고르는데, 편의점 아저씨가 저쪽에서 토끼 잠옷 바지를 입고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과자를 고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묻는다.
"딸이에요?"
.
.
.
"......... 네...."
돌아오면서 우리는 서로를 까댔다. '이렇게 못생긴 딸은 처음이라고.' '마스크 쓸 건데 입술을 발랐다고.'낄낄대며.
편의점에 '쿠쉬쿠쉬'라는 과자가 있어 사 왔다. 인도 여행 중에 내가 '조이'라고 소개를 하니까, 인도 사람이 '조이'는 인도말로 'khushi'라고 해서 내 인도 이름이 되었다. '행복'이란 인도말이다. 딸은 미국에 가서 엄마 인도 이름을 소개하면 마약 하는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며 몰려들 거라고 했다. 또 놀린다. 이 발음은 영어로 마약을 의미하는 단어와 비슷하다며.
누군가와 편히 까대고 농담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관계일까. 상대방에게 무장해제당하는 그 느낌! 총이 없다는 표시로 한 악수 같은. 안전한 관계. 그러면 그 사람에게 중독이 되는 거겠지
'쿠쉬쿠쉬' 처음 보는 이 과자 맛이 궁금하다. '행복'이 느껴지거나, '마약'이 느껴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