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삐끗거림과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를 분간합니다.
건강할 때 건강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큼 따분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저도 건강에 뭐가 좋다 나쁘다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우리 몸은 질병이 생기면 수많은 신호를 보내옵니다. 소화불량, 다리 저림, 두통이나 기침 등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내부 기관의 이상을 드러냅니다.
저에게는 하혈로 왔습니다. 생리 때마다 과다한 하혈을 했는데 자궁에 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걱정되었지만 친구들도 유방이나 자궁에 양성 물혹 한 두 개쯤 가지고 있는 나이라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하던 2018년 1월은 공교롭게도 수능을 끝낸 딸과 가족여행을 예약해 둔 시기였습니다. 저는 3년 만의 해외여행이냐 수술이냐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저는 하혈을 무시하고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수술이 내키지도 않았고 오랜만의 가족여행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 알고 있지만 그때는 하혈조차 익숙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2018년 10월 저는 과다하혈로 인한 쇼크로 쓰러졌고 119에 실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실려간 저는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 후 최종검사에서 암이 아니라 종양괴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진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그때 하혈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수술밖에 없었으니깐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말 그대로 병을 키운 경우입니다. 2018년 1월에 했으면 수면 마취로 간단히 끝났을 수술이 10월엔 암 수술로 커지게 되고 결국 몸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몸이 그렇게 신호를 보내오는데도 인터넷을 뒤져 내가 원하는 대로 '오십이 넘으면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고, 폐경이 되면 양성종양은 저절로 없어진다' 해석하고 몸의 신호를 무시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일입니다. 하혈이든 두통이든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신호인지 본인도 가족도 놓치게 됩니다. 의사는 분명히 경고했고 선택은 내 몫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이상 신호를 으레 그렇거니 무시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기침, 두통, 속 쓰림 등 일상의 다양한 증상에서 일시적인 삐끗거림과 몸이 보내는 진지한 이상 신호를 분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소한 증상마다 질병을 의심하는 것도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몸이 보내는 신호를 흘러 보내지 않고 알아차리는 민감성은 작은 증상이 큰 병으로 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건강을 지킨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번 건강을 잃어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매번 수술대 위에 누워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