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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인 Jun 07. 2022

[2] 귀감(龜鑑)

육백 년 묵은 미래

  1. 천하제일의 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에는 오백 년 동안의 통치기록이 상세히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세종실록》은 국내외 형사학도의 흥미를 유발하는 진기한 내용들이 가득한 천하제일의 보물상자다. 잔혹한 권력다툼 기록 일색인 전후 임금들의 실록과 다르게, 형법, 범죄, 범죄자, 형사정책 등에 관한 정보가 풍성하여 육백 년 전의 사회병리와 사법행정 등에 대한 입체적 이해가 가능하다.     


유교문화권 국가에서 성인(聖仁)의 본보기로 여기는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은 예(禮)와 덕(德)을 앞세워 모든 백성이 행복한 무형(無刑)의 정치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공동체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하게 보조장치로 법과 형벌을 썼는데, 남형·체옥·오결 등이 만연하여, 형벌을 바르게 사용할 방법을 열심히 찾았다. 형벌이 바르지 않으면 죄수들의 원억이 쌓여서 하늘의 노여움을 부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유학에 밝았던 세종도 즉위교서에서 인정(仁政)을 다짐한 이후로 법(法)보다 예(禮)와 덕(德)을 상위로 여기고 형벌을 가급적 덜 쓰려고 노력하였다. 형(刑)으로 정치를 돕고(刑以輔治) 율로 형을 정하는(律利斷刑) 것이라고 믿고서, 형벌을 담당하는 관원들에게 ‘조심 또 조심하고 죄수를 가엾게 여기라’고 신신당부를 거듭하였다.       


사법절차에 회부된 백성을 친자식처럼 측은하게 여기며, 혹시라도 국가의 사법권이 괴물로 돌변해 백성의 삶을 짓밟는 일이 생길까 봐 항시 노심초사하였다. 백성에게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안기는 그릇된 사법 풍토를 바로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실록에 즐비하다.  

    

임금이 되고 일주일 만에 대궐에 첫 출근하여 국정을 처음 시작하던 날 첫 번째 업무로 용의자가 잠적하면 본인이 잡힐 때까지 그의 부모나 형제들을 옥에 가두던 적폐를 없앴다. 이후로 어떻게 해서든지 사형을 줄이고 남형을 없애기 위해 파격적이고 선제적인 혁신을 이룬 행적은 오늘날의 사법개혁에도 훌륭한 본보기가 될 만하다.     


그런데도 세종 치세의 형사정책과 사법행정에 관한 기록들이 세종실록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세종실록 국역본의 머리말에 쓴 것처럼, ‘저 운암호(雲岩湖)에는 맑은 물이 무한히 많이 차 있는데, 그 아래의 양전옥토가 말라 타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양으로 치자면 그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삶과 업적이 조명된 임금의 예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종과 세종의 통치 행적을 다룬 문헌과 예술작품이 주변에 흔하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세종의 천재적 면모와 출중한 리더십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세종 치세의 형정을 다룬 창작물은 흔치가 않다.    

 

세종이 백성의 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고 소신 있게 형정을 펼친 행적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실록 여기저기에 망가진 골동품의 파편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어진 정치’의 증거로 활용한 사례는 많으나, 전후 맥락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떠다 있는 것들도 편식과 곡해가 심해서 이해를 돕기보다 혼란을 키운다.        


2. 천년 거울 만년 등불   


세종이 생전에 전국의 형정 담당 관원들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한 흠휼지의(欽恤之意)·흠휼지인(欽恤之仁)·휼민신형(恤民愼刑)·근신형벌(謹愼刑罰)·형벌관평(刑罰寬平)·극신용형(克愼用刑)·진심무휼(盡心撫恤) 같은 형정 자세는 오늘날의 기본권보장·적법절차준수·죄형법정주의·공판중심주의·자유심증주의·인도적처우 등과 유전자가 같다. 사회가 어떻게 변해도 형정의 근간은 바뀌지 않는다.     


말 그대로 세종이 남긴 형정 행적은 ‘오래된 미래’다. 그래서 오늘날의 경찰, 검찰, 법무부, 법원을 비롯한 각급 형사사법기관이 진정으로 바뀌고 싶으면, 지금까지처럼 개혁과 혁신을 요란하게 외치다가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멈추기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세종의 형정 자취를 그대로 따라 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옥(獄)에 갇힌 죄수들

모든 정책과 제도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중한 정책이나 제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는 낙제점 수도 아까울 정도로 결과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눈에는 ‘천년 거울, 만년 등불’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형사사법 당국자들에게 그보다 더 훌륭한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의 구석구석을 솔개의 눈으로 꼼꼼히 들여다보면, 법·범죄·범인·수사·재판·행형 등에 대한 세종의 생각과 신념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 형사정책과 사법행정에 관련된 모든 판단과 결정이 국가의 관점이 아닌 백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비정상은 어떤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범법유죄 준법무죄’라는 상식이 언제 어디서나 당연하게 작동하였다. 혁신을 가로막은 복병·암초·지뢰 등은 형사정책과 사법행정을 만만하게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우쳐준다.


또, 세종실록에 실린 형정 기사들은 실록의 주인공인 이도(李祹)의 인간적 면모를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최고의 거울이다. 용의자로 몰려서 관아에 붙잡혀가 고문을 당하거나 옥에 갇혀서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역지사지로 헤아리며 개선과 단속에 주력한 흔적들은 형사 법당 국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커다란 벽거울처럼 자세하게 비쳐준다. 


세종은 '범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법 격언을 행동으로 실천한 보기 드문 군왕이었다. 형정의 고질적 적폐인 남형(濫刑), 체옥(滯獄), 오결(誤決)을 없앨 방안을 부단히 모색하면서, 사형수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죄수의 옥사(獄死)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끊임없이 고치고 보완한 자취는 사법개혁을 이끌어야 할 형사사법 당국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를 '콕 집어서' 알려준다.        


3. 성군(聖君) 자격 뒷받침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세종을 성군 혹은 성왕으로 여긴다. 학생 때 국사시간에 '어질고 덕이 뛰어난 임금'이었다고 배우기도 하고, 세종을 다룬 소설·영화·드라마·뮤지컬·만화 같은 창작물의 대부분이 세종을 성군 또는 성왕으로 묘사한 영향이 크다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국사를 전공한 소수를 제외하고, '어질고 덕이 뛰어났다.'는 말이 무슨 뜻이며 세종은 얼마나 어질고 덕이 뛰어났는지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을 것이다.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없는 남녀 같은 사회적 약자(환과고독·鰥寡孤獨)들을 극진히 보살피고, 한자를 몰라서 마음이나 생각을 글로 적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고 언문(훈민정음)을 창제한 것까지는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 다른 말을 더 보태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명나라)에 나이어린 화자(고자)와 소녀들을 수없이 바치고, 노비가 주인을 고소(고발)하거나 부민이 감사나 수령을 고소(고발)하는 것을 금하고, 어미가 노비이면 아비가 누구이든지 노비가 되게 한 일 등을 대강이라도 안다면 '세종은 어질고 덕이 뛰어났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간에는 그러한 이유들을 내세워 세종의 성군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는 세종의 성군 자격을 부인하는 책을 출간한 이도 있다.


따라서 세종의 통치행적을 조금만 파고들어도 세종의 성군 자격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가 쉽지만, 세종의 형정 행적을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주저없이 '세종은 성군이나 성왕으로 대접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는 확신을 가질 것이다. 그의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로운 천성(어짊)과 임금다움(덕)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유전자를 온전하고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족·종친·공신·의친 등의 면책특권이 세습되고 상하 구분과 차별이 동반된 신분질서가 견고하였다고 해서 세종치세를 폄하하거나 거부감을 품을 일도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정치가 자유와 평등을 이상으로 여기듯이, 육백 년 전의 유교정치에서는 명분론에 입각한 위계질서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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