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훈도방(지금의 서울시 중구 일대)의 노상에서 야심한 밤중에 왜통사 이춘발이 피살되었다. 나라에서 임명한 외교관이 괴한에게 살해되었으니 파장이 매우 컸을 것이 분명하다. 범인은 종적을 감췄고, 현장에는 그것으로 춘발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보이는 몽둥이만 버려져 있었다(세종 11년 3월 23일).
다음날 아침에 보고를 접한 임금은 의금부와 형조를 불러서 함께 힘을 합해 신속히 범인을 잡으라고 특명을 내렸다(세종 11년 3월 24일). 의금부가 임금에게 현상수배를 건의하여 윤허를 받았는데, 죽은 이춘발의 사위가 의금부에 나타나 용의자를 지목하였다.
여자 무당인 주련과 그의 아들 사재가 평소 장인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인이 죽은 장소가 사재의 집 문앞인 데다, 장인을 따르던 노비가 사재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도움을 청해도 나와보지 않았으니 심증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세종 13년 6월 2일 <휼형교지>에서 발췌 ).
의금부에서 사재와 그의 동생 상이를 붙잡아다 신장(訊杖)을 가하니, 상이가 자기 형인 사재가 춘발을 죽였다고 실토하였다.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형이 이웃사람인 김소고미와 김매읍동과 함께 춘발에게 묵은 원한이 있어서 춘발을 죽일 기회를 엿보다가 함께 행동에 옮긴 것이라고 허위자백을 한 것이다.
의금부 관원이 춘발이 살해된 현장에 버려져 있던 몽둥이를 수거해 사재의 집에 이르렀다. 울타리의 긴 나무 하나가 뽑혀 있어 가져간 몽둥이를 그 구멍에 꼽으니 정확하게 딱 들어맞고 위로 남은 길이도 일치하였다.
그런데 주련·사재·김소고미·김매읍동 등 네 명을 용의자로 체포해 혹독하게 매질을 가하고 압슬을 더해도, 네 사람 모두 범행을 부인하였다. 사재의 집 울타리의 막대기를 뽑아서 춘발의 머리를 내리친 자들은 따로 있었는데, 의금부 수사관들이 상이의 거짓말에 속아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임금이 의금부에 현상수배를 지시하니, 중추부 판사 허조가 포상 수준을 파격적으로 높이기를 청했다. 천인이 범인을 잡으면 신분을 양인으로 바꿔줌과 동시에 면포 2백 필을 주고, 양인이 범인을 잡으면 관직과 함께 면포 2백 필을 주자고 한 것인데, 그대로 윤허가 내렸다(세종 11년 4월 1일).
사흘이 흐른 뒤에, 귀화한 왜인으로 부사직(종 5품 무관) 신분이던 변상이라는 자가 의금부에 나타나, 춘발과 사이가 나빴던 왜통사 홍성부와 김생언을 용의자로 제보하였다. 의금부가 즉시 두 사람을 연행해 범행을 추궁하니, 둘 다 순순히 자백하여 생언에게 공범이 있는지 물었다.
생언이 자신과 같은 패거리인 김오와 고용봉을 이름을 댔다. 그런데 두 사람 공히 생언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미리 입을 맞춰둔 대역들이었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의금부가 두 사람을 잡아다가 매질을 가하자, 모두 생언이 시킨 대로 태연하게 범행을 자복하였다.
그런데 생언, 김오, 고용봉의 연기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벽했던 모양이다. 수사가 시작되고 보름쯤 지났을 무렵, 의금부 제조 셋이서 임금에게, 생언의 진술이 오락가락해서 살인 혐의를 밝히기가 어렵다며, 생언에게 ‘왜관에서 금과 은을 거래한 죄’를 적용해 사형에 처하기를 청했다. 가장 손쉬운 해법을 제안한 것이다.
임금이 따르지 아니하고, 생언·김오·고용봉에 대한 재조사를 지시하니, 의금부 제조이던 의정부 찬성 권진이 수사 책임자를 사헌부나 사간원의 수장으로 바꿔주기를 청했다. 셋을 다시 조사해본들 생언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세종 11년 5월 7일).
임금이 권진의 청을 받아들여 수사 책임자를 중추부 판사 허조로 바꾸고 사헌부와 사간원의 지휘부와 더불어 생언 등을 국문하게 하였다. 닷새 뒤에 의금부가 공조의 기술자이던 강용을 용의자로 체포해 ‘두목인 이득시가 부하 60여 명과 함께 남산에 숨어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세종 11년 5월 12일).
임금이 병조를 불러서 의금부·진무소·군기감과 합동수색을 벌여 모조리 체포하라고 특명을 내리니 수사가 급물살을 타서 닷새 만에 이득시가 붙잡혔다. 서울의 남산을 벗어나 삭발을 하고 승려로 변장해 경기도 광주 일대를 돌아다니다 사노비 네 명에게 발각되어 꼼짝없이 잡힌 것이다.
의금부에서 대질을 진행하니, 생언이 홍성부의 부탁을 받고 조직폭력배인 이득시와 간충을 끌어들여 셋이서 춘발을 죽인 과정이 상세히 밝혀졌다. 아울러서, 성부와 생언, 그리고 생언과 한 패인 김오와 고용봉 등이 왜인 상인들과 짜고 불법무역을 한 사실도 속속들이 드러났다.
이후로 속전속결로 절차가 진행되어 홍성부·김생언·이득시 등 세 명이 사형에 처해지고, 김오·고용봉·간충은 감형을 받아 목숨을 건졌다. 매질에 굴복해 형을 살인범으로 만든 상이는 면죄되었다.
왜관 통역사 이춘발 피살사건 전모
그런데 사건의 전모를 복기해 보면, 비열한 음모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수사기 미진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변상이 불법무역을 주도하다 이춘발에게 덜미를 잡히자, 교활한 이간질로 홍성부의 반감을 부추겨 춘발을 없애게 한 다음에 성부의 범행을 의금부에 알려서 성부까지 없앴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고, 추리의 근거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사건이 나고 보름이 지나서 변상이 의금부를 찾아가 ‘이춘발이 홍성부와 사이가 나빴다.’라고 알려준 대목이 매우 수상쩍다. 둘째로, 춘발과 성부가 차례로 사라진 뒤에 영의정 황희를 비롯한 정부의 고위관료들이 변상을 간사하고 교활한 인물로 낙인찍어 먼 곳으로 추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