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강도들은 죽이지 마라

처형을 앞둔 소년 강도 세 명 감형

by 조병인

평안도 평양 인근 대성산의 험준한 산세에 기대서 강도와 절도를 반복하던 도적단 40여 명이 검거되었다. 평안도 감사가 올려 보낸 체포자 명단에 미성년자 세 명이 포함되어 있어서, 임금이 그들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모두 목숨을 살려주라고 특명을 내렸다.


열세 살인 이영산은 죄를 용서하여 풀어주고, 공히 열여덟 살인 김춘과 은산은 참형 대신 장을 때린 뒤에 3천 리 밖으로 추방하기를 명하니, 형조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세 명 모두 얼굴 양쪽에 ‘强盜(강도)’ 두 글자를 나눠 새겨서 경상도 거제현의 관노비로 보내기를 청하여 그대로 윤허가 내렸는데, 영의정 황희 등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 도적들은 다른 도적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대성산을 점거해 그곳에 집까지 지어서 병장기를 소지하고 도적질을 벌이며 처자와 더불어 편안히 살아온 자들이니 나이가 어리다고 형을 감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또 율문에 강도는 주범이든 종범이든 모두 목을 베개 되어 있으니, 사형 대신 얼굴의 양쪽 볼에 죄명만 새기게 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세종 29년 5월 12일).


임금이 듣고 나서, '강도는 자자형에 처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다는 것이냐.'라고 받아치더니, '세 소년만 용서하자는 것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황희와 그를 지지하는 신하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극악무도한 도적들을 어리다고 죽이지 않으면 붙잡히는 강도마다 나이를 속여 사형을 피하면서 방자한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세를 펼치더니, 우참찬 정갑손이 나이와 악행은 관련이 없다며 소년들을 죽이기를 청했다.


당나라 장수였던 이적이 고백하기를, 자기는 열세 살 때 간악한 도적이 되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조리 죽였고, 열대여섯 살 무렵에는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강적이 되어 비위에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 죽였다고 말한 것처럼, 반드시 성인만이 악행을 하는 것이 아니오니, 소년들을 살려주면 아니 되옵니다(세종 29년 5월 12일).


임금이 공감을 느꼈던지, 태도를 바꿔서 소년들을 죽일 뜻을 밝혔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돌연 방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을 뒤집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소년들을 살리는 것이 옳을 것 같다며, 평안도 감사에게 ‘소년들의 사형을 감하여 살려줘라.’라고 공문을 내리게 한 것이다.


이후로 의정부에서 여러 날에 걸쳐서 김춘 등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끈질기게 졸랐지만 임금은 명을 거두지 않았다. 임금이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자 의정부에서 슬그머니 얄팍한 꼼수를 제안하였다.


절도범의 얼굴에 먹물로 죄명을 새기는 일은 있어도 강도에게 그렇게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사오니, 평안도 감사에게 (면피용) 공문을 한 장 내리시면 어떻겠습니까. ‘내 생각에 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 특별히 살려주라고 한 것인데, 대신들이 극구 반대해 법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만약 앞서 내린 공문대로 이미 감형하였으면 그대로 두고, 혹시 아직 감형하지 않았으면 법대로 사형에 처하라.’라고 공문을 내리시면, 필시 공문이 감사가 감형을 결정한 후에 도달하여, 백성들은 전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사형에 처할 죄인을 특사하여 살려 주는 제왕의 덕)에 감화되고 법은 법대로 지킨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세종 29년 5월 12일).


임금이 듣고 나더니, “임금이 되어가지고 아랫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일 수는 없다.”라는 답변으로 의정부의 청을 물리쳤다. 덕분에 소년들의 사형이 감면되어 세 명 모두 목숨을 건졌으니, 임금의 통큰 결단에서 대인의 대범한 풍모와 성군의 호연지기가 흠뻑 배어난다(세종 29년 5월 12일).

keyword
이전 19화간통은 신경써서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