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진 빛깔
오전 9시가 되면 수업이 시작하고 수강생들은 각각 레슨실로 들어간다. 이제 각자의 레슨실은 저마다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수강생들은 레슨실로 들어가서 작은 공간을 자신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호흡으로 공기를 바꾸고, 자신들이 가진 빛깔로 공간을 채워간다. 나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의식처럼 피아노 건반을 깨끗하게 닦고 연습을 시작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레슨을 시작하기 위해 레슨실을 쳐다보고 있으면, 여러 빛깔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열정이 많고 에너지가 충만하신 분의 방에서는 새빨간 기운이 느껴지고, 20대의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 수강생의 방에서는 파릇파릇한 초록색 기운이 느껴진다.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곤 하는 애교 많으신 수강생의 방에서는 분홍색이 느껴지고, 차가운 감성을 자아내는 분의 방에서는 파란 기운이 느껴진다.
그중 유난히 노란빛의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분이 있다. 약간 높고 고운 톤으로 밝게 웃으시며 나에게 말을 거시는 이 분의 방을 들어갈 때면 비타민 같은 공기가 느껴진다.
“저는 이방에 들어오면 너무 밝아서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비타민을 마시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너무 좋아요.”
“제가 밝게 살려고 많이 노력하거든요. 긍정적으로 살려고 억지로 노력을 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 기운이 저에게도 전염이 됐나 봐요. 이 방에 들어오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요”
“다행이에요. 선생님, 제가 비밀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사실은 제가 얼마 전에 유방암 수술을 했어요. 몇 년 전에 크게 사기를 당해서 빚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결국 암이 오더라고요. 암 수술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구나. 몸이 망가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겠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억지로라도 밝게 긍정적으로 살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선생님도 마음이 아프면 담아두지 말고 다 풀어놓고 긍정적인 힘으로 덮어버려야 해요.”
긍정의 힘으로 인생을 버티고 계신 이분은 피아노로도 밝은 곡만 연주하고 싶어 하신다.
“선생님, 저는 슬픈 음악은 치고 싶지 않은데, 신나는 노래만 배우면 안 될까요? 슬픈 음악을 연주하면 마음도 슬퍼지는 것 같아서요. 마음이 즐거워지는 음악을 열심히 연주하면 치유되는 느낌이 들 거 같아요.”
처음에는 밝은 음악만 찾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주장하던 음악은 절대로 슬픔의 감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현대에 적용하시는 것인가?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의 영향을 받아 우아한 성품을 갖게 되고 나쁜 음악을 들으면 그릇된 성품을 갖게 된다는 플라톤의 에토스론을 알고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아마도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끼고 계신 것 같다. 밝은 햇살 같은 노란 기운을 계속해서 뿜어 내가 위해서 밝은 음악을 배우고 싶으신 거겠지.
그럼 나는 어떤 빛깔을 가졌을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어떤 빛깔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레슨에 들어가기 전에는 하얀 기운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너무 색을 진하게 가지면 수강생의 색과 대치될 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하얀색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은 회색의 기운으로 레슨실에 들어갈 때가 많지 않았나 반성한다. 내가 회색의 기운을 품고 레슨을 하면 학생도 덩달아 기운이 빠질 것이다. 나의 기운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노란색 기운을 가진 수강생처럼 밝은 기운을 전염시키는 선생님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봄기운을 풍기며 밝은 음악을 가슴에 품고 수강생들을 만나면 그 기운이 전달될 것이다. 아무 느낌이 없는 하얀색보다는 밝게 빛나는 빛이 느껴지는 레슨을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