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ㅇㅇ
학교한 아이의 얼굴이 어둡고 피곤해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엄마, 오늘 선생님이랑 내 짝꿍이랑 싸웠어. 아니 선생님이 내 짝꿍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쳤어.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너무 무섭고 힘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선생님도 어떤 이유가 있으셨겠지?"
"그래. 사실 내 짝꿍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아.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수업 시간에도 딴 짓을 하고, 집중을 잘 못해. 오늘은 6교시 하는 날이라서 내 짝꿍이 진짜 힘들었나봐. 책상에 엎드려 있었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다가와서 일어나서 공부하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어. 조금만 하고 가셨어야 하는데 정말 오래 큰 소리로 혼을 내셔서 우리반 친구들 모두가 얼음이 되었어."
"정말 힘들었겠네."
"나는 정말 머리가 아팠고 짝꿍도 선생님도 모두 불쌍해보였어. 그런데 엄마, 선생님은 아무리 말을 안 듣는 학생이어도 싸우면 안 되지 않아? 싸우지말고 부드럽게 타일러주면 좋겠어. 말썽꾸러기에게는 더 부드럽게 말해줘야 해. 그래야 말을 듣게 되거든."
"그럴까? 너도 엄마가 부드럽게 말하면 잘 안 들을 때도 있지 않아?"
"응.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너무 큰 소리로 말하면 얼음이 돼. 얼어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런데 부드럽게 말해주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녹아버려. 마음이 녹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지. 맞지?"
"말이 되는데?"
"왜 어른들은 이렇게 쉬운 방법을 모르나몰라."
"엄마도 더 부드럽게 이야기해줘야겠네. 가르쳐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니 놀라운데"
"왜냐하면 나도 얼음이 되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싶고 생각이 없어지거든. 부드럽게 말해주면 머리에서 막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이 나와. 오늘 일기장에 선생님. 제 짝꿍에게 조금만 작게, 부드럽게 말해주세요. 라고 적어도 될까?"
"괜찮을 것 같아. 선생님이 조금 머쓱하실 수도 있지만 네 마음을 이해해주실 거야. 그리고 선생님도 사람이라서 계속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건 힘들거야. 참고, 참고, 또 참고 견딘 시간이 더 많으실거야."
"그렇긴 하다. 우리 선생님이 오래 참으셨지. 나라도 화를 냈을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의 끝이 다시 처음으로 이어지니 재미있다며 깔깔 웃었다. 어두웠던 아이의 표정도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면서 사회를 경험한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옳고 그른지, 적당한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나였다면 이렇게 했을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읽어가는 것 같다. 선생님의 마음, 짝꿍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오가며 아이는 아이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나는 그저 '선생님이 그럴만 한 행동을 했겠지!'하고 선생님 편에 서지도 않고, '억울하겠다'며 짝꿍의 편에도 서지 않고 아이가 만들어가는 세계에 대해 지켜보았다.
솔직히 나도 신규교사일 때 과한 열정으로 큰 소리로 혼내고, 억울해하고, 내 노력에 비해 변화가 없는 아이를 탓하기도 했었던 지라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굴이 벌개졌다. 아이들이 다 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에게 해줄 말도 많았을텐데, 날 참아준 고마운 제자들이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