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지하철 출구를 향해가던 길에 시를 만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삐 걸으며 지나치는 시 항아리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시는 일단 가방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항아리를 보았다. 서너 시간이 지났으나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지하철에 앉아 동그랗게 말려있던 종이를 펼치니 '해가지면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시였다. 매일매일 돌아올 내 집은 당신이라는 마지막 시구가 가슴에 닿았다.
릴케, 류시화, 최승자 시를 좋아하며 시인을 꿈꾸던 열일곱 소녀는 어쩌다 시를 읽는 어른이 되었으나 내 몸 어딘가에 그 흔적은 남아있는것 같다.
우리 모두는 작가로 태어난다. 어린 시절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렸고, 작곡가가 되어 노래를 흥얼거렸으며 일기, 시 등을 자유롭게 썼다. 세월이 흘러가며 그 창작의 감을 키워가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나 모두의 가슴에 어릴 적 그 창작의 기억은 남아있을 것이다. '시 항아리'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어 주었고 오랜만에 나는 책장 한구석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다시 시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