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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09. 2022

30화. 반복

(좌) 노트북을 품은 천 (우) 우롱차와 유정유일(惟精惟一)


눈을 뜨면 차를 들고 서재를 향한다. 책상 위에 차를 놓고, 노트북을 품은 고운 천을 걷어내면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자는 유정유일(惟精惟一)이다. 하나의 일에 마음을 쏟아 최선을 다 한다는 뜻인데, 나는 원하는 일에 정성을 다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나의 행위에 정성을 다 하고 싶다.


하루를 시작하며 반복되는 이 단순한 행위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오늘 내가 정성을 쏟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반대로, 노트북 사용이 끝나면 천을 덮는다. 반나절 재택근무하는 나는, 업무가 종료되면 천을 덮는다. 그래야 운동, 독서, 글쓰기 등의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종일 노트북을 켜 두고 회사 일과 그 외의 일을 분리하지 못하며 어느 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 후에 내린 조치다. 물론, 갑자기 일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화상회의가 잡히거나 긴급한 업무를 하느라 혹은 글을 쓰기 위해 천을 걷어내기도 한다. 그래도 노트북을 늘 켜 두던 때와는 달라졌다.




잠들기 전에는 부엌 일(daily) 마감을 한다. 커피 찌꺼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싱크대 위의 물건들을 제자리로 이동시킨다. 정리가 끝나면 싱크볼을 닦아 물기를 제거한다.


제조 현장의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 활동처럼 부엌 설비(커피메이커, 식기세척기 등)의 사용기간을 늘리고 표준 준수로 일의 효율을 높이는(예. 물건이 제자리에 있으면 찾기가 편함) 측면도 있으나(직업병^^), 무엇보다 마감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부엌 마감은 가사의 종료를 의미한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나는 노트북위에 천을 덮으며 일을 끝내고, 부엌 마감을 하며 가사를 끝낸다. 이렇게 반복되는 작은 행위들이 쌓여 나의 일상이 된다. 11년째 수리 한번 없이 사용 중인 세탁기, 정리 정돈된 사물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나의 삶이다. 내가 사는 공간, 사용하는 물건, 만나는 사람, 생각과 행동, 나의 글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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