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근대는 시각을 특권화한다. 어둠 속에 있는 것들, 시각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한편 불안해하고 한편 봉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뚜렷한 하나의 실체를 잡아내어 빛 가운데로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병의 원인을 미생물이라는 구체적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그런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그렇게 되자 "더 이상 생명을 갑자기 덮치는 죽음(전염병)으로서가 아니라, 삶 속에 미끄러져 들어와 끈질기게 그것을 파먹고 점점 작게 만들어 마침내 그것을 약화시키는 그러한 점진적인 죽음으로서의 질병을 다루게 되었고, 이것이 의료 행위의 조정과 정보의 집중, 앎의 규격화와 함께 공중보건을 주임무로 하는 의학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이제 죽음은 권력의 바깥 쪽으로 나오게 되었다. 권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망률'인 것이다.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