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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Nov 24. 2019

죽이는 권력, 살리는 권력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마지막 3장에 대한 이야기다. 민족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 사회적인 부분을 담당했다면, 실생활은 병리학이 담당했다. 근대가 되면서 우리의 몸이나 건강, 질병에 대한 사고도 바뀌기 시작했다.




한의원에 가면 침을 맞는다. 간을 건강하게 해주는 부위를 맞기도 하고,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부위를 맞기도 한다. 세균이 몸안에 들어왔다고 잘라내거나 무찌르는 형태가 아니다.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건강이라고 부르고, 그 조화가 깨진 게 아픈 상태다.


서양에서 넘어온 병리학 체계는 다르다. 세균이라는 분명한 원인이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거고, 우리는 약이나 면역체계를 이용해서 이를 무찔러야 한다. 위생도 청결도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근대는 시각을 특권화한다. 어둠 속에 있는 것들, 시각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한편 불안해하고 한편 봉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뚜렷한 하나의 실체를 잡아내어 빛 가운데로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병의 원인을 미생물이라는 구체적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그런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과학이나 기독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으로 우리 몸을 바라보게 된다.


권력


중세의 권력은 죽이는 권력이었다. 군주가 마음을 먹으면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게 권력자였다.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었다. 근대는 반대다. 의학으로 살리거나 죽게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되자 "더 이상 생명을 갑자기 덮치는 죽음(전염병)으로서가 아니라, 삶 속에 미끄러져 들어와 끈질기게 그것을 파먹고 점점 작게 만들어 마침내 그것을 약화시키는 그러한 점진적인 죽음으로서의 질병을 다루게 되었고, 이것이 의료 행위의 조정과 정보의 집중, 앎의 규격화와 함께 공중보건을 주임무로 하는 의학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이제 죽음은 권력의 바깥 쪽으로 나오게 되었다. 권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망률'인 것이다.
 _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쉬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논문에 가깝다. 얇아서 가지고 다니기 좋다.



★★★★★ 내 생각이 이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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