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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29. 2024

뿌리꼬리

죽은 나무와 산 나무 18

자람이 더디기는 했지만 별 문제없던 은행의 분갈이를 했다. 그때 화분 속에서 나온 뿌리다. 승천을 앞둔 이무기 마냥 긴 뿌리가 화분 가득 똬리를 틀고 있었다. 펼쳐 보니 거실 바닥을 가로지를 만큼, 천정에 닿고도 남을 만큼의 길이였다. 헉! 했다. 


은행은 땅 위의 보이는 생활보다는 땅 속의 감취진 삶에 더 많은 힘을 쓴 것일까. 이건 몇 년의 시간 동안 

땅 위의 가지나 잎은 적당히 유지해서 안심을 시키고  뿌리를 키운 이중생활이다.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나 애썼구나. 니가 다 먹여 살린거야? 고마움도 있지만 너무 저만 혼자 자란 것이 독불장군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뿌리가 열악한 환경에 저항하고 항거하는 레지스탕스였는지, 잔뿌리들을 제압하고 모든 권력을 장악한 독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길고 긴 뿌리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만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독재였던 저항이었든 지금은 은행을 살려야 한다. 특단의 처방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생명줄 같았던 그 꼬리를 싹둑 잘랐다. 뿌리를 자르면 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홀가분해진 듯 은행은 금방 안정을 찾고 더 생생해졌다. 

진작에 잘라야 했던 거추장스러운 꼬리였을 뿐이었던 거다. 속이 시원하다. 


없으면 큰 일 날 줄 알지만 사실 떼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세뇌된 꼬리가 숨어 있는지 엉덩이를 잘 살펴 보아야 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똬리를 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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