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 앞에서

by JS

암 치료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화학적 약물 치료와 수술적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도 있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는 혈액암이었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꼭 선택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항암 후의 시간을 살아갈 '우리 가족'에 관한 문제.

그중에서도 '미래의 가능성'을 지키고 싶다면 생각보다 복잡한 고민이 필요했다.


약물은 혈액을 통해 온몸을 순환한다.

그 여정에서 병이 발병한 부위에만 약물이 닿는다면 좋겠지만, 혈관을 통한 약물 주입이 마음대로 되기는 어렵다.

병든 세포뿐 아니라 건강한 기관들도 훑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바로 생식기관이었다.



만약 우리에게 이미 자녀가 있었다면, 선택은 조금 더 단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계획조차 제대로 논의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진 아이를 갖는 일에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도 많았으며,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내 삶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결혼을 일찍 하긴 했지만 양가 모두 아이 문제를 재촉하는 어른은 없었고

남편도 "여보가 원하면 갖고, 원하지 않으면 안 가져도 괜찮아."라며 나의 뜻을 전적으로 존중했다.


그렇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아기 문제는 미뤄뒀던 천진난만했던 29살.

눈앞에 놓인 선택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나는 아이를 원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내 안의 진심이 또렷이 보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제시한 선택지는 3가지였다.

1. 항암 전 난자를 냉동해 보존해 주는 방법

2. 자궁 보호 주사를 통해 일시적 폐경 상태를 유도하는 방법

3.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항암 치료를 바로 시작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난자를 확보해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길이었지만, 난자 보관을 위해 항암을 한 달 이상 미뤄야 했고, 그 후의 모든 과정 역시 불확실했다.

두 번째 방법은 임시 폐경 상태로 자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치료 후 자연 회복을 기대하는 방식이었다.

항암 중 갱년기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나이가 젊기에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 있었다.

마지막 방법은 아이에 욕심을 두지 않는 방법으로, 바로 항암을 시작할 수도 있었고 항암과 갱년기 증상을 동시에 겪을 필요도 없었다.



이 전까지 아이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 문제에 있어서는 어쩌면 교만했다.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갖고 싶어 지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음 달에라도 가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스스로의 진심을 마주한 내게 아이를 포기한다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앞에 놓인 선택지 중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첫 번째 방법은 건강한 난자를 보관해 둘 수 있는 장점이 분명했지만, 냉동해 둔 난자를 모두 사용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주어진 선택지 중 덜 불안한 건 두 번째뿐이었다.

그저 나에게 맞는 길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신혼 초 흘러가는 주제로 나왔던 아이 문제에 대해 남편은 도박이라고 표현했었다.

주위에서는 다정다감한 성격의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아서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조금 반대였다.

"지금 우리 둘이 충분히 행복한데, 아이가 생기면 더 행복해질지 반대가 될지 모르는 거잖아. 나는 그건 도박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다지 아이가 간절하지 않았던 나는, 남편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항암을 앞두고 아이를 고려해 부가적 치료를 선택하자 남편은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애가 중요해? 그런 주사 맞으면 여보 더 힘들 거야. 항암도 힘든데, 난 그런 거 싫어."

"지금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아이가 뭐가 중요하냐며 치료에만 전념하자던 남편도 내 완고한 결정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자궁 보호를 위한 주사는 한 달에 한 번씩 배에 맞아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주사를 맞은 자리에 늘 예쁜 반창고를 붙여주셨다.

우습게도 그 작은 반창고가 내게 괜찮을 거라고 해주는 것 같았다.



주사는 맞은 당일을 포함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그것보단 갱년기 증상이 훨씬 힘들었다.

갑자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거나,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내 몸의 온도 센서가 고장 난 것만 같았다.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되고, 더우면 옷을 벗어버리면 되는데

잠시 잠깐 사이에도 몇 번이나 오락가락 해대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유 없이 확 치미는 짜증도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나는 항암 치료 부작용과 함께 갱년기 증상이 겹쳐져 훨씬 더 힘든 항암 생활을 보냈다.



평생에 한 번 겪을 갱년기를 두 번 겪어본다며,

엄마랑 딸이 동시에 갱년기를 겪는 일은 드물 거라고 나를 간병하던 엄마에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엄마에게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나의 민낯은 남편과 있을 때만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편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나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이해하고 안아주려 애썼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약해진다.

내 안의 감정 중 목소리가 가장 큰 아이는 불안이었다.

그리고 불안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내 불안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힘들어 한 사람은

불행히도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한 밤중에 남편 품에 안겨서 지금 생각해 보면 되지도 않는 말들을 내뱉으며 많은 밤을 울었다.

"나 아프니까 다 이해해 줘."

"다 나으면 울지 않을 테니까, 지금은 그냥 안아줘."

"내가 죽어도 여보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아니야, 평생 나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해 줘."

"나 안 나으면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못생겨져 버려서, 아파버려서, 여보가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밤이면 내 불안은 갈피를 잃고 흘러넘쳤고,

날마다 변하는 감정과 쏟아지는 두서없는 말들에

남편은 말없이 나를 안아주기도 하고 다정한 말들로 답하며 나를 달래기도 했다.



내가 부정적인 말들만 쏟아내며 진정하지 못하는 날에는

남편은 절대 그럴 리 없다며 무조건 나을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그건 남편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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