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드형 Oct 02. 2021

줄 없는 거문고

마음으로 듣는 소리의 멋

역시 박다울이었다


<슈퍼밴드 2> 결승 첫 무대는 거문고에 이펙터를 활용한 그의 독특한 연주로 시작했다.


카레이싱의 속도를 의미하는 '7000 RPM'이란 자작곡을 보컬, 드럼, 기타, 베이스와 팀을 이뤄 공연한 그 무대는 심장이 쾅거릴 정도로 압도적이고 창의적이었다.


멤버 모두가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어벤저스 급이긴 하지만, 박다울과 그의 거문고의 존재는 내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할 정도로 최고다.

최근 대박이 난 <오징어 게임>처럼 글로벌에서 통하는 K밴드가 되리라 믿는다.




거문고는 검은 가야금을 뜻하는 '현금(玄琴)'의 우리말이라고 한다.

고구려 때 왕산악이 연주할 때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니 이름부터가 참 멋스럽다.


봉황새가 유일하게 앉는다는 오동나무에 밤나무 판을 붙인 '울림통'에 높이가 다른 16개의 '괘'를 세우고

그 위에 명주실로 꼬아 만든 여섯 개의 '줄'을 얹어 매고

대나무 '술대'로 연주하는 우리나라 고유 현악기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 집에 줄 없는 거문고(무현금 : 無絃琴)가 있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셨던 아버님이 남겨 주신 유품인데

가운데 새겨진 백학처럼 고고한 운치가 있어 재산 목록 1호로 가장 잘 보이는 TV 옆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현악기에 줄이 없으면 어쩌자는 거지?


처음 봤을 땐 이상했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쓰신 글을 보고 알았다.


거문고 음악에도 풍류는 있다.

귀로 듣는 음악은 소인의 음악이고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 군자의 음악이라 하여

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곁에 둔 무현금을 어루만지며 마음의 음악을 즐겼다고 한다...


아직 이 정도 내공은 쌓이지 않았는지

나는 여전히 박다울의 파격적인 거문고 연주처럼

귀로 듣는 소인의 음악이 와닿는다.


하지만 언젠가 듣고 싶다.

조선 말기 한 기생도 즐겼다는 이 무현금의 소리를...


줄 없는 거문고를

소리 없이 튕겨보니

병풍에 백학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이전 03화 달과 밀당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