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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Feb 06. 2022

메타버스는 김혜수다

꿈일까 현실일까

정말 그녀였다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대학에 떨어진 나는 서울로 올라와 재수학원에 등록하고 설 연휴를 맞았다.

혼자 낯선 하숙집에서 외롭기도 하고 개강 전부터 지긋지긋한 입시공부는 하기 싫고 해서 영화를 보러 갔다.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이자 내 우상이었던 김혜수가 비운의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청소년 관람불가란 등급이 무색하게 건전한 베드신이 딱 한번 나오는 <그 마지막 겨울>이라는 제목의 전형적인 한국식 멜로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가 끝나고 어두운 상영관에서 빠져나오자 극장 안이 갑자기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쪽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멎었다.

김. 혜. 수. 정말 그녀였다.

방금 전 영화에 나왔던, TV나 잡지에서만 보던 그녀가 여신처럼 눈부신 후광을 뿜으며 서 있었다.

개봉행사 차 극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성인만 입장되는 영화였던 탓에 청소년 극성팬들이 곁에 없어 쉽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재수생이었던 나는 용기를 내어 학원증 뒷면에 사인을 받았다.

한복을 입은 그녀가 환하게 웃어 주었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꿈일까 현실일까


'메타버스' 세상이 온다고 난리들이다.

메타버스(Metaverse) :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 경제적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의미


요즘 10대 Z세대들이 많이 한다는 '제페토'라는 메타버스 가상공간에 들어가 보면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친구를 사귀고, 돈을 벌어 옷을 사고 집을 꾸미는 등 어른들의 현실과 똑같은 생활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그곳에서 결혼까지 한다고 걱정하는 지인들 얘기도 들려오는 걸 보면 예전 소꿉장난 수준은 분명 아닌 듯하다.  


'어스(Earth) 2'나 '더 샌드박스'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실제 지구와 똑같은, 또는 완전히 다른 가상공간을 만들어 현실의 부동산 자산처럼 사고 임대하고 파는 거래가 활발히 일어난다고도 한다. 실제 지구의 땅처럼 존재하거나 유한하지 않은 공간을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아먹듯이 사기 친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 많은 똑똑한 투자자들이 눈먼 바보는 아닐 거란 생각도 든다.


하긴, 코로나로 학교에 못가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아이들과 폭등하는 서울 아파트 가격에 내 집 마련이 꿈같은 젊은이들 관점에서 보면 메타버스는 답답하고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할 멋진 놀이터이자 투자처일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 가상세계가 꿈같은 현실인지, 현실 같은 꿈인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등 메타버스 관련 기술들이 '현실(Reality)'이란 용어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여전히 난 현실 같은 '꿈'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TV와 영화로만 보던 김혜수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실제 만나 사인을 받던 그 '현실'이 아닌

김혜수를 닮은 아바타를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느낌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니 누군가 말한다.

네가 구세대라서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겐 그 가상세계 역시 자신들 삶의 시간 대부분을 쓰는, 그래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충만한 그런 '현실'의 공간이라고 말이다.

  



중국 고사에 '호접몽(蝶夢)'이 떠올랐다.


장자가 꿀잠에서 깨어

인간인 내가 나비 꿈을 꾼 건지

나비인 내가 인간으로 변한 건지 헷갈렸다고 하는 얘기다.


하루 평균 8시간을 자는 나는 인간이 맞겠으나

만약 두배인 16시간을 잔다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꿈만 꾼다면 나는 나비가 아닐까?


메타버스가 나비의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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