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완성본.
인간의 정신은 타자에 의해 규정된다. 자기소개서 1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 진술들을 통해 나열했다면, 자기소개서 2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인용하였다. 자기소개서 3은 보다 구체적인 나를, 특히 타자에 의한 영향을 기술할 것이다. 1,2 보다 더 사적인 차원의 글쓰기이니, 문체를 조금 더 따뜻하게 조절해보겠다.
안녕하세요.
제 글을 통해 드러나는 반성적 사유가 일상에도 기능하듯, 주변 친구들과도 굉장히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또, 현실의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사람들과의 인연을 많이 이뤄갑니다. 요즘은 용기 내어 사람들과 많이 소통하고 있어요. 이 자기소개서는 분량이 많이 길 것입니다.
먼저, 부모님과의 관계를 말해보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1+3도 손을 이용해 계산하던 저는 부모님의 위기의식 속에 구몬을 다녔어요. 학습속도가 매우 빨라 1년 만에 초등학교 5학년 과정까지 공부했습니다. 고지능자였죠.
보통의 부모님이라면 영재교육을 시키는 등 아이의 고지능에 관심을 갖고 교육을 열렬히 시키시겠지만, 제 부모님은 다르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것을 제일 원칙으로 가르치셨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까지 피아노, 영어 외에 수학, 과학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거나 집에서 게임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별 다른 스트레스 없이 자랄 수 있었어요. 이러한 가정환경 덕에 "환경에 얽매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온 제 본질 중 하나입니다. 낯섦, 새로움에 두려움을 느끼긴 하지만, 어떻게든 용기 내어 부딪치려 해요.
부모님한테는 너무 사랑만 받고 자랐어요. 하나뿐인 외동아들이기도 하고, 제가 그렇게 말썽을 피우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순한 편이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때는 몇 번 다투기도 하였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연락을 자주 드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가진 것이 아닌, 제 심경에 초점을 맞추어 저를 바라봐주십니다. 앞으로도 부모님만큼의 사랑을 해볼 수 있을까 싶어요.
또,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 하셨습니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 아버지가 먼저 져주는 느낌이 있기도 하고요. '남자는 항상 애인에게 져준다'는 태도도 부모님을 통해 배웠네요.
저는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조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는 선천적인 성향인 것 같은데요. 놀랍게도, 외가 쪽이 모두 교육에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 친가 쪽은 1남 4녀의 집안이신데, 아버지는 반도체를 연구하시고 할아버지는 많이 똑똑하셨다고 해요. 이공계 재능은 아버지 쪽에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다만, 앞선 사례처럼 과도하게 똑똑한 이유는 설명이 되질 않네요.
여기까지가 부모님 얘기였고요. 그다음엔 친구들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금부터가 본론이겠지요.
중학교 재학 당시에는 소위 평범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피시방 가거나 축구하고. 반장, 부반장도 종종 했어요. 그냥 여느 학교에나 보이는 수과학 덕후인 남자 중학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성인이 된 지금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은 극소수입니다. 저는 4명의 친구와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중 한 명과는 같이 자취를 하고요.
평범하지 않다는 자각은, 평범한 친구들에게 더욱 강한 애착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 사실이 원망스러운 적도 있습니다.
제 소신껏 행동하는 편이라, 그로 인해 타인에게, 사회에게 받은 상처가 흉터로 남아있어요.
나이가 들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하네요.
고등학교는 영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평소 특목고 폐지론을 주장하는 데엔 고등학교 시절 사귄 친구들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과도한 기준의 학업 성취도를 요하는 학교와, 그에 도태되어 좌절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제 경우엔 다른 과목의 성적이 낮음에도 수학, 물리 성적이 좋은 편이라 서울대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지만 주변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주변 친구들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것에 동정심을 느껴서일까요? 저는 하위권 성적의 친구들에게 더 애정이 갔습니다. 반면, 내신이 좋다는 사실 자체가 학교에 순종적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최상위권 학생들을 싫어하기도 했어요. 학교에 순종적이 다라...!
저는 학교에 엄청 반항심이 많았습니다. 분명 '영재학교'인데, '대학 입시 학원'같은 느낌이 매우 강했거든요. 영재학교에서 반항한다고 해봐야, 뭘 하겠습니까... 물론, 저는 제 기준에서 특이한 반항을 했는데요.
단순히 학교 내신 공부를 따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학교에서 배울 전공 물리과목들을 미리 공부함으로써 일탈을 구현했습니다. 공부로 일탈을 한 셈이죠. 물리올림피아드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고,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영재학교라는 끔찍한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순수하게 학문을 사랑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렸거든요. 순수하게 학문을 사랑하는 것, 제 또 다른 삶의 철학입니다.
떠오르는 에피소드로는, 고등학고 시험에 문제 오류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전공 물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는 문제였는데요. 문제를 출제한 교사 A는 수업시간에 설명한 자신만의 이론(물리학적으로 명백히 틀린)을 토대로 시험을 출제했어요. 절반의 학생이 문제를 맞혔습니다. 교사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은 거지요. 당시에는 문제의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12분 분량의 설명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교사 A에게 이 영상을 토대로 물리교사 8명끼리 심의 의원회를 열라고 항의했어요. 교사들 모두 제 영상을 시청하고 시험 문제 오류에 대해 찬반 입장을 보였어요. 7명이 교사 A의 손을 들어주고, 1명만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왜 제 편을 안 들어줬냐 떼쓰는 것 같아 유치하네요. 교사 A는 아직도 영재학교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12분짜리 영상을 제작한 게 약간 광기 어리긴 하지만, 적어도 학문에 진심이었음을 보여주지 않나요. 고등학생의 저는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집단과 체제에 대항하고, 객관적인 진실만을 밝히는 순수 이론물리가 너무나 매력적이라 느껴졌어요. 다행히 재능도 부여받았고요. 이론 물리를 하는 것이 곧 소명이자 구원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학자를 꿈꾼 동기중 하나가 '체제에 대항하는 것'에 주목하면, 학자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고 반성하게 됩니다. 예술가도, 힙스터도, 댄디즘[Dandyism]도 그 당시의 제게 매력적인 개념이었거든요. 다만, 잘하는 수학/물리 공부를 계속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물리공부만을 해왔습니다. 공부만으로 주 100시간을 채운적도 있네요 하하.
관습, 얽매임 모두 제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단어입니다. 23살인 지금은, 잘하던 물리공부를 다 뒤편으로 제쳐둔 후 문학 하면서 살 거라고 다니고 있어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 수/과학 공부만 해왔기에, 문학적 재능이 있을까?라는 자기 검열이 종종 공포의 감정을 일으킵니다. 21살까지는 학문을 동경했다면, 23살인 지금은 예술을 동경하네요.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서도, 소수의 몇 명과 연락하고 지냅니다. 대학전쟁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던가, 엘리트주의를 표방한다던가, 의대에 진학한 친구라던가. 수많은 기준의 잣대를 남에게 들이댔던 고등학생의 저는 굉장히 모난 사람이었어요. 관용이 부족했을 것이고요. 그래서인지 소수의 친구들하고만 연락하고 지내요. 지금은 조금 더 융통성 있게 사람을 대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저한테만)
수학/물리 공부만 했던 제가 고등학생 때 깊게 친해진 친구들 있죠.
그중엔 인문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은 친구들이 많아요.(한 80% 정도의 친구가 그래요)
제가 그런 사람들의 본성에 이끌렸던 것일까요?
인문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니 알게 된 사실이라 정말 놀랐습니다.
고등학생 때 사귄 친구들은 마냥 밝은 성격은 아니에요. 물론, 되게 좋은 사람들이지만 약간 어두운 면을 하나씩 지니고 있습니다. 실존에 대한 고민이랄까요. 제가 보기엔 하나같이 좋은 친구들인데, 가끔 친구들의 우울한 시기를 곁에서 지내다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여기까지 제 글을 봐주셨다면, 제게 호감을 가지셨다는 뜻이니 정말 감사드려요. 누군가에게 호감의 대상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게요. 아. 글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이론물리학자를 꿈꾸던 제가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어요.
연애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글의 주제가 대인관계인 만큼, 연애관련해 얘기를 하는 게 맞다고는 생각되는데, 전여자친구에 대한 언급을 공시하는 것이 민폐일 수 있기 때문에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학교 재학 내내 저는 특이한 사람들을 선호했습니다. 주어진 걸 거부하고, 본인만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요. 사실 그중에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많겠지만, 가깝게 친해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문제를 달고 살았습니다. 이 중 '특이함'이라면요. 저는 겉모습의 특이함이 아닌, 사고방식의 깊이에서 드러나는 독특함에 끌립니다. 때로는 정신적 불안정성이 그 깊이의 일부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인터넷 댓글처럼 표현하면, 가짜 광기가 아닌 진짜 광기의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과도히 힘들어하는 친구를 곁에 두면 저조차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니까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며 친구를 사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한 점 2.
제가 호감을 가진 (특이한) 사람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어요.
근데 그러한 정신적 문제는 그 사람의 말투, 행동, 사고에서 직관적인 느낌이 와요. 별로 말을 섞지 않는 사이여도, 그 사람의 대화에서 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나름 저만의 고유한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ㅠㅠ
특히 이성관계에 있어 좋아함의 감정은, 그 사람이 갖는 정신적 흔들림/결핍을 제가 보완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작동합니다. 저 또한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에, 그 사람의 모든 우울을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요. 저는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연애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그 상처가 특이함에서 기인하고요. 사랑은 나와 상대를 동일시하는 과정이잖아요. 제가 특이한 사람이라서, 특이한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 같아요. 또한, 경험상 당찬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소심한 성격이라 그런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 깊게 친해진 사람들 중, 가장 친한 사이를 고르라 하면 저보다 1살 많은 형을 꼽을 것 같네요.
저와 형 모두 학교에서 살다시피 지내는데요. 10시간 내내 붙어있는 저희를 보곤, 형의 여자친구가 저를 질투하기도 합니다. 이 형을 주제로 글을 쓰려다가 이참에 자기소개서 3을 완성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게 됐는데요. 형을 좋아하는 마음에 글을 쓸 정도면, 제가 얼마나 애정을 갖는지 알 수 있겠지요.
요즘엔 예술 쪽 전공자들과 교류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저와 친했던(지금은 사이가 조금 소원해졌지만..) 친구는 현대미술에 심취해 있는데, 대화할 땐 굉장히 코드가 잘 맞았거든요. 인간의 감정이 미세히 진동하는 것을, 그 결을 읽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아마 그런 면에서 예술 전공자들과 대화 코드가 잘 맞지 않을까? 아직 그렇게 깊이 사귄 친구는 없어 확언은 못하겠지만,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과 관련이 깊은 삶을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뜬금 우울 고백
작년에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어요. 전 우울한 걸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이걸 자기소개서에 넣을까 말까, 수차례 고민 끝에 결국 적습니다.
그런데 사라지고 싶은 심리는 사실 발견되고 싶은 욕구에서 발현된 거더라고요.
작년엔 저를 위해 기도했거든요. 제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요. 요즘은 주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평온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이요.
그런데, 우울했던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어요. 교수님이 해주신 조언인데요. 우울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내면을 더 깊게 들여다 보고, 공감하며 치유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안 그래도 작년 이후로 주변 사람들의 우울함에 조금 더 민감해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단편적으로 우울했던 시간으로 기록하기보단, 교육자로서 성장한 시기라고 평가하고 싶어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싶고요. 절대 놓치지도 않을 거고요.
저는 저보다 어린 학생들을 볼 일이 많은 편이에요. 교육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인지, 자의적으로 교육봉사를 종종 신청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는 것 같아요. 이때, 가르침이란 단순히 지식 전달의 차원을 넘어서서 이 학생이 어떤 식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남의 인생에 조언을 하는 건 굉장히 신중해야 하는 일이니까, 제가 그걸 고민할 자격이 있냐는 검열도 종종 합니다.
물리올림피아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마음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느새 전국의 예비 물리학도들이 제게 고민을 남기는 장소가 돼버렸네요. 굉장히 보람찬 일입니다.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할 일이 많아요. 후배들을 대상으로 강의나 스터디를 열어준다던가. 진로 고민도 많이 들어주고요.
이러한 교육관은 어쩌다 형성된 걸까요.
제 사랑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생산적이에요. 이때 생산적임은 사랑을 받기보다 주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성질을 뜻합니다. 단순히 배우기보단 배운 지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교육관도, 사랑을 받기보다 사랑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연애관도, 고민을 말하기보다 듣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도 모두 제 성격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항상 사랑받고 살았어요. 제 성격에 비해 너무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교육관 -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제가 넘치도록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눠주기 위함인 것 같아요.
제가 엄청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카프카라는 작가가 인형을 잃어버린 여자 아이에게 한 행동이 엄청 감동적으로 들리더라고요. 카프카라는 작가를 동경하게 된 계기기도 하고요.
https://brunch.co.kr/@a37a50686b444de/25 한 번쯤 봐 보시길 추천드려요.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동경의 감정을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못 느끼는 편이라 잊지 못할 얘기입니다.
이제 끝났다!!! 마음 같아서는 이름을 하나하나씩 직접 언급하고 싶지만, 그렇게 쓰다 보면 책 한 권 나올 것 같아요. 거의 2시간은 걸렸네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고 싶은 내용은 넘쳐났지만, 그중에서 제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썼어요.
주변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눠주기! 제 자기소개서의 마지막 문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