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단편

by 장순혁

아프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
아픔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아프고 나서야 우리는 해당 부위의 존재를 명명백백하게 느낀다
아프기 전에, 우리는 그 뼈를, 근육을, 피부를 느낄 수 있었을까?
사실상 아픔이란 그들의 비명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이곳에 존재한다고,
자기도 이곳에서 숨 쉬며 살아 있다고,
자기도, 자기도 살아 있다고
내 몸이지만 역겨움이 올라온다
동족혐오일까?
자기와 비슷한 걸 보면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자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되려 더 나을 거다

나는 나 자신을 싫어한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압도적으로 내가 뽑힐 거다
내가 나를 만난다면
난 죽기 직전까지 주먹을 날리고,
마지막 한방을 날려 죽여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죽지 못했다
죽음과 고통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밧줄이 목을 조이는 그 잠깐의 고통조차 나는 참아내지 못했다

아픈 건 싫으나 죽고는 싶다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불이 붙기 위해서는
장작이 바짝 마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갓 잘린 나무는 수분기가 많아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매캐하게 풍겨나온다

나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마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조차도

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러나 이런 이성적인 판단은 지금껏 지겹게 내리지 않았는가
고작 그런 판단들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의 나다
복잡하게 단순한, 지금의 나
때로는 나를 위해 나를 배재할 수 있어야 한다

끊긴 밧줄이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밧줄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게는 필수인 인터넷의 문제다
모든 걸 쉽게 살 수 있는 대신,
모든 것의 가치는 옅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 만지고 무게를 가늠해봤자
그 본질을 알아챌 수 있지는 못하니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은
그 본질에서 벗어난 자들 뿐이다
그들은 그 본질에서 더는 가치를 찾지 못하기에
나는 내심 본질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더 높은 차원으로 떠난다면 나는 죽지 않을 거다
아니, 죽지 못할 거다
그렇기에 나는 위로 향하는 계단을 마주 보면서도
발걸음을 떼내지 못한다

날기 위해 걷는 새들
그와 같은 나
어쩌면 삶은 그런 것일까?
날 수 있기에 오히려 걷는 것이며,
날 수 없기에 결국 걷는 것이다

발버둥치다 쓰러져 널브러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
그 위에 앉는다
새삼스럽게 의자가 참 차갑다고 느낀다
언제 이 의자를 챙겼더라?
아마 처음 독립했을 때였던 것 같다
누군가 쓰레기장에 버린 이 의자를 주워왔다
이 의자도 한때는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었을 거다
누군가는 이 의자를 소유하고자 대가를 지불했을 테고,
시간이 갈수록 그 소유욕보다 대가의 가치가 더 크다고 느꼈을 테고,
그러니, 버려졌을 테고
모든 새것들은 중고가 되고, 중고가 된 것은 버려진다
모든 것들은 버려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거다
버려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거지
고작 이렇게 되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왔다고
고작, 이렇게 되려고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하얀 종이와 갈색 담뱃잎이 바알간 불을 만나
하얀 연기와 회색빛 재로 변한다
타오르는 것
단지, 타오르는 것
담배가 화장되어 재떨이라는 납골당에 안치된다
하지만 오늘은 납골당이 없다
담배 시체를 바닥에 버린다
입 안에는 아직 깔깔하게 담배의 뒷맛이 남아있다
혀를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혀는 쉽게 뽑히지 않는다
뿌리가 목 깊숙한 곳에 박혀 있기에

더 튼튼한 밧줄을 준비할까?
물론 인터넷이 아닌 철물점이나, 뭐, 그런 데에서 직접 사야 할 것이다
말했다시피 튼튼한가, 튼튼하지 않은가를 가늠할 눈은 없지만
이미 한 번 실패가 되어버린 시도를 다시 하기엔 찝찝하니까 말이다
쇠사슬이나, 철심이 박힌 항해용 밧줄을 구할 수도 있을 거다
적어도 끊어지지는 않겠지
잠깐, 그러면 천장에 쇠로 된 고리를 박아야만 할 텐데
밧줄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무게가 될 테니까
거기에 내 몸무게도, 상당하니까
그러나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전문가를 불러야 할거다
그런데 멀쩡한 집 천장 한가운데에 쇠고리를 아무런 생각이나 말 없이 박아줄 사람이 있으려나?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일 텐데
경찰과 엮일 수도 있다
그건 안된다
좋지 않다
사람들은 경찰관들이 일을 잘 하지 않는다고 불평들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찰들은 성실히 맡은 일을 수행한다
누군가가 경찰에게 전화해 집 천장 한가운데에 무언가를 걸어 놓기 위한 쇠 고리를 설치했다고 한다면
내 집은 순찰 범위에 포함될 것이고
나는 그런 괜한 의심 및 관심은 끌고 싶지 않다

아니면 그냥 칼로 손목을 그을까?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손목을 긋는 거다
끊긴 동맥으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올 테고
뜨거운 물은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도울 것이다
바알간 물 속에 파묻히는 것..
그러면 옷을 입고 해야 하나, 옷을 벗고 해야 하나?
언젠가 발견이 될 텐데
둘 다 꼴사납긴 할거다

음.. 뭐가 더 빨리 죽을 수 있지?
밧줄로 목을 조이는 것과
손목을 칼로 긋는 것
뭐가 더 나은 선택이지?

총을 구해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에서 총기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암시장은 존재하고,
그 암시장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마약, 칼, 총기, 심지어는 사람까지
뭐.. 당연한 일이지
세상은 보기보다 흉흉하고 비밀은 전세계 사람의 수만큼 많으니까
구할 수 없는 것은 없다
하지만 총을 구해 자살하고 발견된다면
사람들은 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총기를 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시리얼 넘버를 역추적해 암시장이 발각된다면
암시장을 이용하는 수많은 악당, 범죄자들에게 애로사항이 꽃 필 텐데..
남에게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로 인해 태어나
누군가 덕분에 자라났으니
죽음만은 누군가의 손길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존재함으로 존중 받고 싶다

다시 담배를 피운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른다

담배를 끈다
물을 뜨러 간다
물을 마신다
기침이 자그맣게 터져 나온다
다시 의자에 앉는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목이 쓰리다
멍이 들었나 보다
숨이 억지로 막히는 기분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불쾌했다

내 손으로 내 목을 조여 죽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인간의 몸이란 도구 없인 자기 스스로를 죽일 수 없게 설계되어 있으며
나 역시 인간이기에 그 규칙을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런 점에 따스한 소속감을 느끼면서도
견딜 수 없는 폐소공포증을 느낀다
몸을 찢어 직접 폐로 신선한 산소를 주입하고 싶어진다
겨우 나라는 존재가 나를 좌지우지 한다

창밖을 내다본다
어둠이 드리웠다
사람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을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오만한 것이 아닐까?

남들과 같아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나만은 다른 존재이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나로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추악하고 추잡한 이 내 마음
지극히 단순하면서 무엇보다 복잡하다
고작 뇌의 전기 자극에 불과한 것이
그 어떤 고압 전류보다 나를 떨게 만든다

잠이 온다
난장판 속에서, 이 판국에 잠이 오다니
그러나 사실 그렇게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죽음은 영원한 잠에 드는 것이라고
잠에 들기 직전 사람은 무척이나 졸려한다
마찬가지로 죽기 직전이었던 나에게도 잠이 쏟아져 오는 거다
잠과 죽음, 죽음과 잠..

나의 이 모든 생각들은 내가 처음 하는 것이 아닐 거다
무릇 생각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고,
전혀 다른 시대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들이마신 이들과 한 번이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집단 자살을 선택할까, 아니면 다같이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갈까

혹시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당신과 나는 그 전까지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죽음도, 무엇도, 외롭거나 괴롭지 않을 텐데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새겨질 수 있을 텐데

자꾸 잠이 쏟아지며 눈이 감긴다
머리가 알싸하게 아파져 오기 시작한다
그래,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니
지금보다 더 나은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방법이 생각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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