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상품은 다 만들었는데요, 어디서 팔아야 할까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왜냐하면 이 순서로 시작한 분들 대부분이 고생하시는 걸 너무 많이 봤거든요.
10년간 유통 현장에서 직접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면서, 그리고 수많은 분들을 컨설팅하면서 발견한 패턴이 있습니다.
실패하는 분들은
"만들고 → 팔 곳을 찾습니다."
성공하는 분들은
"팔 곳을 정하고 → 만듭니다."
순서 하나 차이인데,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내가 불편했으니까 다른 사람도 불편하겠지."
"이 정도 품질이면 당연히 사겠지."
"좋은 건 알아서 입소문 나겠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부 착각입니다.
좋은 상품은 팔리는 상품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좋은데 안 팔리는 상품이 정말 많습니다. 반대로, 별로인 것 같은데 잘 팔리는 상품도 많고요.
차이가 뭘까요?
팔리는 상품은 '팔 곳'을 먼저 정하고 만든 상품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로얄베르겐 뱀부타올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했습니다. 100% 천연 대나무 섬유로 만든 프리미엄 타올이에요. 지금까지 누적 480만 장 판매, 매출 22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프리미엄 뱀부타올 '로얄베르겐'
처음부터 이렇게 된 건 아닙니다.
상품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한 건 "어디서 팔 것인가"를 정하는 거였습니다. 우리 타올은 프리미엄 제품이니까, 타겟 고객이 모이는 채널이 어디일지 분석했습니다.
결론은 홈쇼핑과 백화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품을 그에 맞게 설계했습니다. 홈쇼핑에서 10분 안에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USP(차별점)를 만들었고, 백화점에 어울리는 고급 패키지를 디자인했고, 그 채널의 수수료 구조에 맞는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채널을 먼저 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상품을 먼저 만들고 채널을 찾았다면? 아마 "이 가격에 이 패키지로는 홈쇼핑 입점이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더 쉬운 예를 들어볼게요.
똑같은 수제 비누를 만든 두 사람이 있습니다.
A씨는 상품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연구해서 천연 성분 100%, 무향, 민감성 피부용 비누를 완성했어요. 그리고 나서 물었습니다. "이거 어디서 팔지?"
스마트스토어에 올렸습니다. 경쟁 상품이 3만 개입니다. 광고비를 태웠습니다. 적자입니다. 쿠팡에 올렸습니다. 가격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6개월 후 재고만 쌓였습니다.
B씨는 채널을 먼저 정했습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팔 거야." 인스타에서 뭐가 잘 팔리나 봤습니다. 예쁜 거. 감성적인 거. 선물용.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꽃잎이 들어간 투명 비누. 향은 라벤더. 패키지는 선물 포장처럼. 인스타 감성 맞춤형.
올렸습니다. 터졌습니다.
같은 수제 비누인데, 하나는 재고가 쌓이고 하나는 품절이 됐습니다.
상품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채널 이해의 차이입니다.
스마트스토어 고객과 올리브영 고객은 다릅니다. 쿠팡 고객과 인스타그램 고객은 다릅니다.
스마트스토어 고객은 검색해서 비교하고 삽니다. 스펙과 가격이 중요합니다.
쿠팡 고객은 빠른 배송, 최저가를 찾습니다. 충동구매보다 계획구매가 많습니다.
올리브영 고객은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요즘 뜨는 거", "1위 제품"에 반응합니다.
인스타그램 고객은 감성, 비주얼, 스토리에 반응합니다. 브랜드를 삽니다.
고객이 다르면 상품도 달라야 합니다. 채널을 모르고 상품을 만들면, 고객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드는 겁니다.
레드오션인 채널이 있고, 블루오션인 채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기능식품을 쿠팡에서 팔면 대기업과 싸워야 합니다. 광고비 경쟁, 가격 경쟁에서 초기 셀러가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상품을 특정 커뮤니티나 전문 플랫폼에서 팔면? 경쟁이 훨씬 적습니다.
채널 선택이 곧 경쟁 상대 선택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백화점에 입점하려면 고급스러운 패키지와 높은 마진 구조가 필요합니다. 홈쇼핑에 입점하려면 10분 안에 설명 가능한 명확한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올리브영에 입점하려면 트렌디한 디자인과 적정 가격대가 필요합니다. 채널을 모르고 상품을 만들면, 나중에 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패키지도, 가격도, 심지어 상품 구성까지.
그렇다면 어떤 채널을 선택해야 할까요? 3가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시면 됩니다.
내 상품을 살 사람이 실제로 모여 있는 채널이 어디인가요?
20대 여성에게 팔 거면 올리브영, 무신사, 인스타그램. 30~40대 주부에게 팔 거면 네이버 카페, 스마트스토어, 홈쇼핑. 기업 담당자에게 팔 거면 링크드인, 전시회, B2B 플랫폼.
고객이 없는 채널에서 아무리 광고해봤자 효과 없습니다.
콘텐츠 만드는 게 재밌으면 인스타그램, 유튜브. 글 쓰는 게 좋으면 블로그, 브런치, 스마트스토어. 사람 만나는 게 좋으면 오프라인, B2B 영업. 분석과 최적화가 강점이면 퍼포먼스 마케팅, 오픈마켓.
잘하는 걸 해야 오래 합니다.
같은 카테고리라도 채널별로 경쟁 강도가 다릅니다.
대형 채널은 트래픽이 많지만 경쟁도 치열합니다. 니치 채널은 트래픽이 적지만 경쟁도 적습니다.
초기에는 니치 채널에서 1등 하고, 이후에 확장하는 게 현명합니다.
지금 바로 해보실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드릴게요.
첫 번째,
채널 3개를 후보로 정하세요.
내 타겟 고객이 있고, 내가 잘할 수 있고,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채널 3개를 골라보세요.
두 번째,
각 채널에서 잘 팔리는 상품을 분석하세요.
베스트셀러가 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가격대는 어떤지, 리뷰에서 뭘 칭찬하는지 살펴보세요.
세 번째,
메인 채널 1개를 확정하세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승산 있는 채널 1개를 정하세요. 초기에는 집중이 중요합니다.
네 번째,
그 채널에 맞게 상품을 설계하세요.
채널에서 팔리는 상품의 특징을 반영해서 상품을 기획하세요. 스펙, 가격, 패키지, 상품명 전부 채널에 맞춰야 합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릴게요.
"팔 곳을 모르면 만들지 마세요."
상품 만드는 데 6개월, 1년 쓰고 나서 "어디서 팔지?" 고민하면 늦습니다. 그 시간과 돈을 채널 분석에 먼저 쓰셨어야 합니다. 유통의 본질은 "좋은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걸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팔리는 건 팔 곳을 알아야 만들 수 있습니다.
순서를 바꾸세요.
어디에 팔지 → 왜 살지 → 뭘 만들지
이 순서가 맞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상품 만들기 전에 채널부터 정해라"를 더 구체적으로 다뤄볼게요. 채널별로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는지, 어떻게 분석하는지 실전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