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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Apr 26. 2022

그 안에 숨었다.

평생 그럴 듯 한 선글라스를 사본 적이 없다.

도수를 넣어 써도 되었을 텐데 굳이 안경을 썼다 벗었다 바꿔 쓰기 귀찮기도 하고, 대갈장군이다 보니 딱히 큰 앞면을 가려줄 맘에 드는 선글라스를 만난 것도 아니고 해서 변색렌즈로 살아왔다. 시력 교정 수술도 망설여 봤는 데, 했을 거면 좀 더 반짝일 때 했어야지 나이 들어 하려니 어쩐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얻어걸린 운으로 안경을 벗었다.


백내장 수술 다초점렌즈 삽입으로 수십 년을 써 왔던 안경을 벗었더니 드러난 민낯.

움푹 파이고 다크써클로 얼룩진 눈 밑, 안경 코 받이를 지탱하고 있던 코에 남은 거무튀튀한 자국, 평생을 달고 살았던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이쁜 얼굴도 아니었건만. 거울을 볼수록 심사가 뒤틀려진다.

수술했더니, 자외선 차단과 눈부신 불빛의 빛 번짐 때문에 눈이 시리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데 적응이 쉽지가 않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가녀린 촛불이 세상을 밝혀주듯 한 줄기 광명과도 같이 선글라스가 생겼다.

언제였는지 몰라도 안경테가 맘에 들어서 사놓았던 안경.

투명 렌즈를 껴놨을 때는 웃자고 만들어 놓은 안경 같았는데, 색이 있는 렌즈를 끼고 보니 딱이다.

십 년을 내다본 나의 심미안에(못 버리는 습관이 이럴 때 빛이 난다. 이러니 안 쓰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며 미적거리는 좋은? 나쁜? 습관이 고쳐지질 않는다) 감탄할 따름이다. 내 너를 얻었으니 세상을 얻은 거와 진배없느니라.

음~하하하~~


곧 있음 마스크를 벗을 날이 오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얼굴 반을 마스크로 가리고, 나머지 맘에 안 드는 눈 주위를 시커먼 선글라스로 몽땅 가려주니. 눈 가리고 아웅~

거울 속의 나는 딴 세상 사람이 된다. 아싸브리~~~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이토록 맘에 들었던 적이 없다.

예전에 친구들이랑 놀라 가면 너도나도 선글라스를 쓰더니 이런 맛이 있을 줄이야.

므쪄~ 아주~~ 흡족하다.

보이기 싫은 흔적도 가려주고 눈에 드러나던 내 맘도 적당히 감출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화가 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급변하는 안면 때문에 성질머리 더러운 걸 감출 수가 없었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찰떡 보너스인가.

나이 먹으면 배만 나오는 게 아니다. 눈물샘이 고장 났는지 시도 때도 없이 질질 짠다.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보다 눈물이 먼저 삐질 거리고 나와버리니 이건 내 맘과는 따로국밥이다.

진한 렌즈 안에서 그렁그렁해지는 정도는 가능하니 이 또한 따블 보너스. 마스크를 벗기까지는 주르륵 흘려봐야 마스크 안이니 주책맞은 눈물 때문에 뭐 팔리는 거지 같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시커멓고 커다란 선글라스 렌즈 안의 세상이 썩 맘에 든다.

흔들리고 종잡을 수 없는 맘을…

혼란스러운 삶을…

혼돈의 세상에서 나를 보호해준다.

그렇다고 내내 이 안에서 살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잠시가 될지라도 지금 당장은 좋다.

편안하다.

어쩌면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삶 속에서 정작 나란 사람은 없는 시간을 살아왔으니, 이 시간은 치유의 시간들이 될 것이다.

왜곡된 시선일지라도 조금만 더 이 안에서 쉬고 싶다.


이 안의 세상은 멋있단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 찍는 것을 극히 싫어했는데, 선글라스 덕분에 찍혀 보는데 삭제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ㅋ 가리니 사진이 불편하지가 않네. 역시 다가려야 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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