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당신이어서 참 다행이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복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정신과가 있어서 이렇게 조용한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를 길잡이 삼아 조심스레 몇 걸음 옮겼다. 그런데...
약국, 치과, 내과, 한의원, 정신건강의학센터 등이 한데 모여 있는 복도는 나에게 미로나 다름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각종 지도앱은 실외에서 길을 찾는 데에 특화되어 있어서, 이렇게 건물 안(쇼핑몰, 지하철 역사 등)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생활 속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실내용 내비게이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러 이유로 아직은 진척이 더디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던 그때였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요?”
저 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사람이다!’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홀린 듯 그쪽으로 걸어갔다.
“당신이 고생하는 거 나도 잘 알아요.”
나는 자석에 끌리듯 목소리를 쫓아갔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아마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가 보았다.
“네, 미안하고 사랑해요. 잠시만요.”
나는 봄바람 남자에게 방향을 물을 요량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정신과는 약국 맞은편에 있다고 네이버 지도에 나와 있었다.
“그건 당신이 오해한 거예요. 내 마음 몰라요? 잠시만요.”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되는 걸까, 약간 망설였지만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복도는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사람이라곤 봄바람 남자와 나밖에 없었다.
“맞아요, 여보. 잘했어요. 저기, 잠시만요.”
나는 닭살 돋은 팔을 문지르며, 남자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잠시만, 잠시만요. 혹시 **정신과에 오신 시각장애인분 맞으세요?”
“...”
뭐지? 소름 돋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치과나 내과 말고, 나는 딱 봐도 그쪽인 건가?
“네, 그렇긴 한데...”
“제가 원장이에요. 우리 통화 한 적 있죠?”
그랬다. 봄바람 남자는 병원 원장님이었고, 우리는 진료도 보기 전에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전화 통화를 즐겨(?) 하는 원장님인가 보았다.
“여보오, 손님이 와서 이따 전화할게요. 점심 챙겨 먹어요오.”
저 나긋나긋한 음성. 나는 봄바람 원장님과의 며칠 전 통화를 떠올렸다.
학교가 8월 중순께에 개학했고, 나는 그 얼마 후인 8월 말 즈음에 정신건강의학센터를 방문했다. ‘개학’과 ‘내원’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까. 교사로서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나는 과민한 탓인지, 개학 시즌이 도래하면 밤에 숙면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불면의 밤은 짧으면 1주, 길면 한 달가량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10년 남짓을 불면과 동거동락해 왔다. 내가 과민한 거니까, 꾹 참으면 다시 평소처럼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애써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23년 여름, 괜찮은 줄 알았던 교사들이 괜찮지 않게 되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장애 교사야말로 교육 현장에서 가장 괜찮지 못한 존재, 무탈하기 힘든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은 교사이자 안녕한 사람이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평안을 선물하고 싶었고, 그만 애쓰기를 바랐다.
10년 동안 미루어 온 숙제를 하듯, 정신건강의학센터를 수소문했다. 그야말로 인터넷을 폭풍 검색했는데, 내가 내원하고 싶은 병원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진 병원이었다.
첫째, 집 혹은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
둘째, 방문 후기(영수증을 통해 인증한 다음 작성한 후기)가 많고, 평점 및 후기 내용이 좋은 병원.
셋째, 원장님의 약력 및 경력이 의사로서 훌륭한 병원.
그리고 무엇보다!
넷째, 시각장애인을 친절하게 진료할 수 있는 병원.
문제는 네 번째 조건이었다. 생각보다 시각장애인에게 정신과 진료는 장벽이 높았다. 다른 과와 달리 정신건강의학과는 진료 전에 작성하는 문진표가 꽤나 많았고, 접수 단계에서부터 자필 작성을 요구하기가 일쑤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문진표나 대체 서류가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고, 대필조차 허용하지 않는 데가 많았다. 비단 장애인뿐 아니라, 글쓰기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분들이나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정신과 진료는 쉽지 않아 보였다. 마음을 치료하려다가 마음을 더 다칠 판이었다.
병원 몇 군데에 전화 걸어, 시각장애인임을 밝히고 진료 예약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내원하라고 하거나(지인은 곤란하다고 했다), 사전 문진표를 작성하지 않고 진료를 보게 하거나(문진표가 없으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아예 진료를 에둘러 거부하곤 했다.
하지만 **병원은 달랐다. 어떤 방법으로 진료가 가능할지 살펴본 후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놀랍게도 원장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 왜 내원하려고 하는지, 증상이 어떤지 등을 부드럽게 물으셨다. 아무 걱정 말고 내원하라는 말씀을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하게 하셨다. 그것이 봄바람 원장님과의 첫 번째 통화였다.
“이렇게 만나는군요오.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러 가는 길이었어요.”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병원에 앉아 있을게요, 원장님. 식사하고 오세요.”
내가 흰지팡이를 접으며 말했다.
“그럴 수가 없어요. 병원 문을 잠그고 나왔거든요.”
“들, 들어갈 수가 없나요?”
“저하고 같이 들어가요.”
원장님을 따라 들어간 병원은... 적막했다. 폐원한 병원처럼 불도 꺼져 있었고 음악도 나오지 않았으며 간호사님들도 안 계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장님만 두고 점심 식사를 하러 일찌감치 나갔다고 했다. 이분, 혹시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머리털 나고 처음 방문한 정신과였다. 안과나 내과 등을 내원했을 때와는 기분이 달랐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가진 놈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괜스레 입안이 마르고 뒷목이 뻣뻣해져 왔다.
나는 원장님이 안내해 주시는 대로 병원 대기실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을게요. 식사하고 오세요, 원장님.”
“하실 게 아무것도 없긴 해요. 저희 병원은 과 특성상 TV도 없고... 가만히 계실 수밖에 없어요. 그건 그렇고, 많이 안 좋으세요? 얼마나 안 좋으신 거예요?”
“시력 말씀이세요? 저는 선천성 녹내장이에요.”
“아뇨, 눈 말고 여기요, 여기.”
“여기요? 어디요?”
“아, 죄송해요. 잘 안 보이시죠? 마음이요. 여긴 정신의학과니까요.”
원장님이 옆에 앉으며 말씀하셨다. 이건 진료인가, 가벼운 티키타카인가. 그나저나 너무 가까이 앉은 것 같아. 배도 고프실 텐데, 얘기가 길어지면 어쩌지? 여러 생각이 마음에 두둥실 떠올랐다.
“말씀하기가 좀 힘드십니까? 천천히 이야기해 보시죠.”
사위가 고요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하나, 불 꺼진 방처럼 마음이 적요했다. 원장님은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 말을 기다렸다.
은은한 아로마 향이 실내를 빙글 맴돌았다. 다른 과와는 달리 정신과는 아로마 향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봄바람 원장님이어서 참 다행이야.’, 처음으로 마주한 정신과 의사가 동네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