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 Mar 18. 2019

여전히 성장 중...

Black (초콜릿... 그리고 연탄)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나의 하루는 커피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이 난다. 보통 사람들은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잠을 잘 못 잔다고 하던데 나는 아무리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다 하더라도 밤에 잠을 설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커피와 나는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엄마께서도 커피를 참 좋아하신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엄마께서 커피를 드시는걸 자주 봐왔다. 고로 일찍부터 난 커피와 친해질 수 있었으며 지금도 그 친분이 계속 이어지지 싶다.

나는 수많은 커피 중에서도 특히 블랙커피를 좋아한다.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신다. 주변 사람들이 간혹 "너 그렇게 커피 쓰게 먹다가 골로 간다."라는 엄청난 말로 경고를 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나를 만날 때 그들은 나를 위해 기꺼이 진하고 쓰디쓴 커피를 주문해 주시곤 한다.(감사합니다. 골로 가지 않게 주의할게요.) 까만색의 커피를 볼 때마다 그 검은 심연이 나를 안정시키고 그 씁쓸한 맛은 나를 또한 진정케 해주니 커피는 나의 베프임에 틀림없다.

커피 이전 검은색에 대한 추억을 꺼내보자면 가장 먼저 초콜릿이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적 초콜릿은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는 사치스러운 간식이었다. 아빠의 월급날이나 집에 좋은 일이 있을 때 엄마께서 늘 우리들에게 초콜릿을 사주시곤 했는데, 문제는 우리 형제가 너무 많은 고로 웬만한 양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한 가지 초콜릿만 었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 만점인 바로 그 알파벳 초콜릿.(저는 간접광고를 피하고자 상품명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만 다 아시죠?) 엄마께서는 알파벳 초콜릿을 사 오시면 우리 형제들을 동그랗게 앉히시고는 늘 똑같이 나누어 주시곤 했다.  가끔 개수가 맞지 않아 누군가에게 더 많이 가는 날에는 울고불고 싸웠으니 초콜릿은 우리 형제들의 애증의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만큼 초콜릿을 사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리고 알파벳 초콜릿보다 더 비싸고 더 좋은 초콜릿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어릴 적 언니들과 그리고 동생과 싸우면서 먹었던 그 초콜릿 맛은 이제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이제 그렇게 어리지도 또 그렇게 나누어 먹지도 않으니까....

아! 나누는 얘기를 하다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우리 아부지께서는 워낙에 음주를 좋아하셔서 대부분 취한 상태로 귀가하실 때가 많았다. 아빠의 주사 중의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취해서 들어오시면 우 모두를 모아놓으시고는 주머니에 가지고 계신 현금 전부를 뿌리시는 주사가 있으셨다. (이럴 때면 우리가 재벌이 아닌 게 천만다행인 거 같기도 하다. 아마 우리 아부지는 술 취하 셔서 길거리에서 돈을 마구 뿌리셨을 것이다. 허허..)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날도 어김없이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아부지께서 우리를 모아놓으시고는 돈을 뿌리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은 지폐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동전만 바닥에 떨어졌고 우리는 그 동전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아웅다웅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옆에 계시던 엄마가 박수를 치시는 게 아닌가. 내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자 넷째 언니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폐 세 장을 쥐고 있었다. 어라? 분명 지폐는 하나도 없었는데...

실상은 이러했다. 넷째 언니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그저 떨어지는 돈에만 집중한 채 큰 그림을 보지 못했던 반면에 다년간의 관찰과 경험을 통한 분석의 결과로 넷째 언니는 동전이 지폐보다 먼저 낙하한다는 그 놀라운 자연의 법칙을 깨달았고 그저 공중에서 느리게 낙하하는 종이 지폐를 여유롭게 낚아채어 간 것이었다. (난 역시 문과 체질. 쩝..) 그 뒤로 아부지의 그 아름다운 주사는 멈춰버렸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엄마께서 극구 말리셨고 그 주사가 나올라치면 원천봉쇄를 하시기에 이른 것이다. 주사도 고쳐질 수 있는 거였다...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가 보자면 때는 하숙생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나태해지는 여름이었다. 아직 방학철은 아니었으나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줄기차게 내리던 여름날, 일반 지대보다 낮은 우리 집으로 온 동네의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었지만 그 날은 워낙에 비가 많이 왔었고 결국 마당 한편에 연탄을 쌓아놨던 창고에 물이 차기에 이르렀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가 결국 연탄들을 녹이고 마당 한가득 검은 강을 만들어 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신 부모님께서 그 엄청난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시던 그때 우리의 성실한 모범시민들이신 하숙생들이 발 벗고 나와 그 검은 강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온몸들이 까매지고 입은 옷들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들은 열심히 물을 퍼내고 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들은 마치 물놀이를 하는 것처럼 웃고 떠드며 즐겁게 물을 퍼내고 있었다. 비록 학교에 다들 늦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들 모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신나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하숙생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숙생들에게 우리 집은 그들의 집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그들의 부모님이었으며 나는 그들의 어린 동생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식구였고 한 형제자매였다. 우리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이었고 그들의 즐거움이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은 그런 든든한 검은 여름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날 아침 한 오빠가 나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소영아, 잘 놀고 있어. 오빠 학교 갔 올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