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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손님들이 있다

- 언어치료사와 캐나다 손님


아침에 일어나면 그런 생각을 해요.

오늘은 누가 책방을 찾을까? 또 어떤 기적 같은 일이일어날까? 하루하루 기대에 차서 설렙니다.


어쩌면 아무도 오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명이 올 수도있고, 백 명이 방문할 수도 있는 하루입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곳 책방까지 오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처음 만나게 될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재회하는 손님도 계실 거예요. 어느 날 우연히 벌어지는 만남들이 축복이고, 감사할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설령 아무도 찾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있으니까요.


아무도 책방을 찾지 않더라도 저는 냥이들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지저분한 털들을 빗질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먼지와 털을 쓸어내고, 젖은 걸레로 테이블을 깨끗이 닦으며, 책들이 조금 삐뚤어진 것도 정렬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손님들이 찾아오길 기다립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땡그랑’하는 문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찾아오고, 뜻밖의 이야기들을 안고 책방으로 들어오죠.

구의 증명, 최진영 작가 그리고 금빛 종소리 김하나 작가

어느 날은 오랜 자취 생활로 익숙한 솜씨로 설거지를 하던 중, 예상치 못한 시간에 한 여성이 들어왔어요. 오픈 전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었죠.


“안녕하세요.”


나는 설거지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 컵을 닦으며 손님 움직임을 살폈어요. 손님은 망설임 없이 책장으로 직행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책들을 꼼꼼히 살폈죠. 제목이 마음에 들면 꺼내어 표지를 한 번 더 보거나, 목차를 훑거나, 첫 문장을 읽기도 했어요. 나는설거지가 끝나자 손을 닦으며, 어떤 책을 들고 올지 궁금한 마음에 손님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그 손님은 살며시 한 권의 책,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내밀었어요. 요즘 한강 작가가 책방을 거의 다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죠. 나는 마음속으로 “고마워요, 한강 선생님”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저기, 천선란 북토크 말이죠? 지금도 신청받나요? 제가 지금 ‘천 개의 파랑’을 읽고 있거든요.”


손님은 천선란 작가의 웹포스터를 가리키며 물었어요.


“네, 1월 21일 화요일 저녁 7시에 북토크가 열립니다.”


“아, 화요일이요? 어떡하지... 그날 수업이 있는데...”


“그럼 선생님이세요?”


“네. 언어치료사랍니다.”


“그게 어떤 일인가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발달장애 아이들이 단어를 습득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돕는 일이에요.”


“그럼 책도 많이 읽어야겠군요.”


“맞아요. 그래서 요즘 관심이 많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항상 유쾌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책방의 올해 달력을 건넸습니다.

나쁜 책 김유태 작가 북토크



그날 오후 3시 무렵, 검은 옷을 입은 여성 한 분이 책방에 들어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책 몇 권을 뽑아 들었습니다.


“어, 여기서 이정모 관장님 북토크 하네요. 같이 계산해 주세요.”


천선란 작가 북토크 전단지 옆에 있던 이정모 관장님 전단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어요.


“네, 여기 천안에 사시나 봐요?”


“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천안에 살면서 가까운 동네 책방을 찾지 못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고요. 저는 책방 투어가 취미거든요."


"아, 그러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박남준 시인 북토크


"네. 캐나다에서 살다가 한국에 2년 동안 머물 계획으로 혼자 왔어요. 천안은 아무 연고도 없는데 말이죠."


여성분은 며칠 전 전남 장흥에 있는 독립책방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 책방은 시골 골목길에 있더군요. 꼬불꼬불 깊숙이 들어간 곳이었어요. 책은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 책 읽기와 요가 같은 문화행사도 하고 있었죠. 오랫동안 그 동네에 계신 분인지, 동네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하던데요. 그런데 진작 가까이 있는 가문비나무아래를 찾지 못했네요."


우리 책방을 자작나무 아래로 잘못 알아서 길 찾기가 힘들었다는 캐나다 손님. 이곳 천안에서의 2년 계획 동안 좋은 추억 많이 쌓으시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가며 이 밤이 끝날 줄 알았는데, 저녁에는 까만 패딩을 입은 젊은 여성이 들어와서 저희 책방에 오고 싶다는 이유로 쌍용동에서 추운 길을 걸어왔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녀는 겨울 밤의 고요하고 거룩한 순간을 가문비나무 아래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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