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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Jan 26. 2020

내가 살아가는 이유

'가족'을 읽다.

  '거울을 마주하면 당신 자신의 얼굴만 볼 수 있을 뿐이지만 당신의 아이를 마주하면 마침내 다른 모든 이들이 어떻게 당신을 보아왔는지 알 수 있다.'
   - 다니엘 래번


  남자로 태어나서 하루, 일 년 그렇게 지내오다 보니 나 역시도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었고, 어느 날부터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정말로 그 순간은 '문득'이란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다. 나는 어린 시절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란 존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사업을 하고자 노력을 했었다고는 하나 계속되는 실패로 평생을 술과 함께 사셨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 학창 시절을 지내고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런 나였기에,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적을 말이 없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손녀딸을 보여 드린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역시 당신 손녀딸의 돌잔치를 한 지 이틀 만에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주위 사람들은, '자식에 그다지 해준 것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 선물로 자신의 생명을 며칠 뒤로 연장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을 해 주셨다. 하기야 손녀딸 돌잔치를 코 앞두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어찌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건 내가 서른 중반이 되었을 때였다. 친한 직장 선배가 기운 내라면서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부모님이 둘 다 돌아가시다니. 이제 하늘 아래 고아(孤兒)가 되었군. 처자식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보통 고아라 하면,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가 부모를 잃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이미 서른 중반이 넘은 나에게 고아란 표현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지금 시대에 장수하시는 분들은 백 살 가까이 사시는 분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죽음에는 결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일이 또 있었다.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우리 중에서 가장 건강했으며 한 마디로 '운동 마니아'였었다. 내가 알기에 세상에서 가장 건강했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저녁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다니. 살면서 그때만큼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던 날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친구의 영정사진 앞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내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이후 나는 거의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만일 오늘 밤 하루를 끝마치고 눈을 감았는데 그것이 내 생의 마지막 하루였다면 나는 과연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회의를 더 해야 했는데….',

   '야근을 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거래처에 전화를 해야 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더 많이 행복했어야 했는데….',

   '좀 더 가족들과 함께 해야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했어야 했는데….'

   대부분 사람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 되었을 경우가 되어야만 그때가 되어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껴진다. 사막의 한가운데서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이 바스러지는 가운데서야 비로소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알고,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기 한 줌의 소중함을 알듯이 말이다. 가족은 항상 곁에 있었는데, 날마다 내 옆에 있었는데 그 소중함을 모르면서 하루하루 지나쳐 보내고 있다.     


  매일 새벽 눈을 뜨는 순간잠들어 있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내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있어 가족이 있고, 가족이 있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드는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꼭 안아준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게 되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손을 한 번씩 꼭 잡아주고 출근한다. 이것이 어쩌면 가장 진솔하고도 소박한 우리 마음속 깊은 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평소에 느끼지 못하고 스쳐 보내고 있었던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건강해라. 아프지 마라. 잘 먹고 잘 자라.”

  내가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아무 뜻 없는 듯 시시때때로 들었던 말들. 그저 스쳐 지나는 인사말 같은 말들을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다. 삶이란 그렇게 돌고 도는 것. 순환의 고리 속에 있다. 내 부모로부터 나에게, 그리고 나로부터 내 아이들에게. 언뜻 보면 그 속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순간순간의 삶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마음이 곧 삶의 존재 이유이며 목적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렇지만 또 끝이 있으므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나는 내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중한 삶을 내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생의 한가운데인 지금, 나는 우주의 순환이라는 소중한 역할에 충실히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처럼 언젠가 내 아이들도 내 나이가 되어서 지금의 나처럼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또 자신들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또다시 반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는 부모님과 나의 세대, 그리고 내 아이들의 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교집합에 있다. 이 시간의 교집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짧은 시간이다. 부모님 세대가 평균적으로 80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나와 내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고작해야 2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안에 아이들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면 내 부모님의 세대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다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각할 때쯤엔 내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탄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그토록 짧은 순간만이 주어지는 법이다. 사랑과 행복만 생각해도 너무도 모자란 시간이 아닐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그것은 절대로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나 자신이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 것인가, 아닌가? 가 중요하다. 단 한 순간이라도 지금의 관점에서 후회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앞서 살아간 내 부모님과 내 이후를 살아갈 내 자식들과 그리고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예전에 모 보험회사의 광고를 보고 나서 평생 그 장면을 마음에 담고 살고자 다짐했었다. 그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에게 결과가 좋지 않다며 각자에게 남은 시간을 말해준다. 의사는 건강검진표를 남겨두고 자리를 떠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남겨진 건강검진표를 열어 보고, 각자에게 남은 시간이란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또 한편으로는 치열한 삶 속에서 자신이 가족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느끼게 해 주면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지금 고생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작은 행복을 키워야만 미래에 커다란 행복이 될 수 있다. 현재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미래에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3대 문호로 일컬어지는 톨스토이의 작품 중, 세 가지 질문이라는 단편 소설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기억하시오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왜 지금이 가장 중요하겠소우리는 오직 '지금'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오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또한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앞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 그 누구와 자신이 인간관계를 맺을지 모르므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지요그를 위해 이 세상에 인간이 보내졌고오직 이를 위해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 '그들에게 착한 일을 행하라.' 이 말들은 내가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세 가지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그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 가족은 내가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 내가 눈감는 그 순간까지도 절대 놓지 말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내가 일부러 인생 독서의 한 장르로서 '가족', '사랑'과 같은 주제의 책을 꼭 읽는 이유가 이것이다. 아무리 인생을 잘살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해도 가족이 없으면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임을 잊지 않고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을 읽으려고 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열심히 읽고자 한다면 그 장르의 하나로써 반드시 '가족'과 관련된 책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래전에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결혼으로 맺어진 또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다. 바로 장인어른과 장모님이시다. 나는 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가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안아드린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어머님'이라고 말씀드린다. 내 아이들은 내가 성장할 때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게 삼대가 함께 하는 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음을 감사해 하며,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서 했던 내일이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명언을 생각하며 우리 가족을 위해서 멋진 하루를 살아야 한다. 이 한 마디를 가슴속 깊이 새겨두고 오늘을, 지금을 내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감사의 기도를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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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다시 읽고 싶은 책, 권하고 싶은 책 ('가족'을 읽다.)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       (유현민, 왕일민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발행)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저, 문학동네, 2007년 발행)
《부모님 살아계실 때 꼭 해야 할 45가지》       (고도원 저, 나무생각, 2005년 발행)
《단 하나의 보물》       (가토 히로미 저, 국일미디어, 2004년 발행)
《숨결이 바람이 될 때》       (폴 칼라니티 저, 흐름출판, 2016년 발행)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윌리엄 하블리첼 저, 브리즈, 2007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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