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열세 번째 주방장의 한국술 소개라니!
반갑습니다.
<월간 주방장>의 주방장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제가 한 달 동안 마신 한국술을 편하게 소개해드리는 자리입니다.
1년 전 <월간 주방장> 시작 당시, 첫 설렘을 상기하며 인사드립니다. 1년을 맞은 열세 번째 <월간 주방장>을 읽어주셔서 반갑습니다. 브런치에 한국술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떠오른 콘텐츠는 매달 새로운 한국술을 주방장의 시선과 감각으로 소개하는, 바로 이 <월간 주방장>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매거진보다 월간 주방장은 더 애정이 가고 잘 쓰고 싶은 글입니다.
그러나 매달 다른 술을 소개해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과 자체적인 데드라인(매달 말일)을 지키는건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처음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글이 별거냐라고 생각했지만, 꽤 '별거'였습니다. 모니터 너머 알 수 없는 독자들과의 약속과 개인적인 책임감이 사명감을 가지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낯선 한국술들을 검색했을 때, 월간 주방장 글이 상단에 노출되면 누군가에겐 작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여 이 기록을 꾸준히 쌓아가려고 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작년 이 시점에 첫 글을 쓸 때의 그 두근거림을 담아 2019년 9월의 한국술, 소개합니다.
9월엔 단양주를 빚었습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국화'를 함께 넣어서요. 말린 국화를 넣고, 잘 우린 국화 물도 첨가해서 향기를 오롯이 담으려고 했어요. 한 번만에 빚어서, 일주일 안에 마실 수 있는 술인 단양주. 그만큼 맛의 스펙트럼이 넓은 단양주는 마시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빚는 재미를 선사해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빚으면 신기하게도 혼자 빚을 때보다 양조 과정이 덜 고되게 느껴져요. 추석을 맞아 빚어 본 국화단양주. 열세 번째 월간 주방장의 첫 한국술로 소개드립니다.
# 정보
식품유형 탁주 (단양주)
알코올 약 7%
내용량 약 1.5ℓ
성분 찹쌀, 누룩, 말린 국화, 국화 우린 물
# 코멘트
“가을 향기가 서린 단양주"
오미자처럼 다섯 가지 맛이 단계적으로 느껴지는 국화 단양주는 단맛이 감돌다가 신 기운이 침을 돌게 하고, 끝에는 국화 향기가 잠시 노크하고 지나가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어떤 분은 술 빚기가 끝나고서도 이 국화 단양주의 여운이 계속 남는다며 몇 잔을 더 드셨어요.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없는 국화 막걸리는 직접 빚어야 그 맛과 향을 알 수 있습니다. 국화차는 국화로 시작해 국화로 끝난다면, 국화 단양주는 쌀과 국화가 좋은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내 찹쌀의 달달함으로 시작해 국화 특유의 향기로 마무리 됩니다.
# 어울리는 음식
“술 자체가 안주"
안주가 필요 없는 술. 달고 시고 쌉싸름하고 다 해요. 굳이 맛있는 술은 안주가 필요 없어요.
우곡주는 故 배상면 회장의 호를 따서 만든 술입니다. '누룩을 생각한다'는 뜻답게 우곡 배상면 선생은 평생을 전통주를 생각하고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한국술 계보에 큰 획을 그은 인물답게 '호'만으로도 술이 위엄 있게 느껴집니다. <주선 주조사>라는 엄청난 책을 남기고, 술 한 병에 그 철학을 담아낸 배상면. 어려서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 배혜정 씨에게 우곡주는 더 특별할 것만 같아요. 아버지를 '술'로 추억하고 기억하며 그 뜻을 잇는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봅니다. 우곡의 헌신과 철학이 담긴 이 술은 어떤 감동을 전해줄까요. 다시금 느끼지만, 장인이 된다는 건 어느 분야에서든 참 대단한 일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꾸준함과 결과물까지 필요하니까요.
# 정보
식품유형 살균탁주
알코올 13%
내용량 375mℓ
성분 유기농 쌀, 누룩
양조장 배혜정도가
# 코멘트
“묵직하게 응축된 한국술의 고집"
우곡주를 한 모금 마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꾸덕하고 뭉근하면서도 새콤달콤한 탁주의 모든 매력을 담고 있는 한 모금은 금세 다음 잔을 마시게 이끌죠. 우곡주는 조선시대까지 양반과 부자 계층에서 마셨던 주정 13도의 원주로, 가수량이 적어 그 질감과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지인은 이 술이 '어른 요구르트'같다며 그릭 요거트처럼 후식으로 즐기고 싶다고 합니다. 나름 고가의 살균 탁주이지만, 이 한 병이라면 우곡 배상면의 집념과 헌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에 기회가 된다면 꼭 시음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어울리는 음식
“기로스"
새콤달콤한 요거트 맛이 강한 술이어서 그런지 마시면서 지중해 음식이 생각났어요. 기로스는 피타라는 빵에 고기와 야채를 올리고 요거트 소스로 마무리해서 랩처럼 말은 음식으로 우곡주와 조합이 색다르면서도 익숙할 것 같네요.
잣은 다른 견과류보다 막걸리와 궁합이 좋은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잣맛과 약간의 쌉싸름함, 기름진 향이 막걸리와 어우러져 좋은 케미스트리를 이루기 때문이에요. <가평 잣 막걸리>는 그런 의미에서 밸런스를 잘 잡은 탁주입니다. 만약 조금 더 '진한' 잣 맛과 향을 원한다면 산수양조장에서 만든 <백자주>를 추천드려요. 가평 잣 막걸리는 잣을 톡톡 씹어 먹는 정도라면, 백자주는 잣을 통째로 입안에 가득 넣은 느낌이랄까요. 2018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하고, 최근 총리 공관장 만찬주로도 관심을 받은 잣 막걸리! 시원하게 한 잔 마셔봅니다.
# 정보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6%
내용량 750mℓ
성분 김포금쌀, 가평 잣, 아스파탐
양조장 우리술
# 코멘트
“선을 잘 지키는 잣 막걸리"
가평 잣 막걸리는 마지막에 마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자칫하면 끝맛이 오래가는 잣맛이 다른 술의 맛과 향을 방해할 수도 있어요. 가평 잣 막걸리는 어느 하나 튀지 않고 그 중간을 잘 지키는 탁주입니다. 적당한 단 쌀맛과 잣, 청량감과 바디감까지. 서글서글하고 둥글둥글한 막걸리이기에 대중적으로 쉽게 즐길 수 있겠어요. 최근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부담 없이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 어울리는 음식
“바질 페스토"
보통 빨간 파스타만 생각했다면, 바질과 잣 풍미가 가득한 초록색 파스타는 어떠신가요? 잣이 막걸리와 만나고, 잣이 파스타와 만났을 때 비로소 "막걸리와 파스타" 조합이 가능해지죠.
2014, 2015, 2016 리큐르 부문에서 삼 년 연속 수상한 매실원주입니다. 매실이 들어간 술이라고 하면 익숙한 매실주 떠오를 텐데요. 매실원주와 비슷한 맛일까요? 더한주조는 최근 인기를 끄는 <서울의 밤>을 비롯해 현대적인 디자인과 독특한 스토리로 주목받고 있는 양조장입니다. 담금주로 익숙한 리큐르를 고급스럽게 재탄생시킨 더한주조 양조장은 특별하게도 음악을 전공한 '바이올리니스트' 대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변 양조장 대표님들이나 양조사들의 이야기를 접할면서 정말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시다가 술의 매력에 빠지신 걸 발견하곤 합니다. 물론 조리를 전공한 제가 술을 빚고 있듯이 말이죠.
# 정보
식품유형 리큐르
알코올 13%
내용량 500mℓ
성분 정제수, 매실주 원액, 매실청, 꿀, 스테비아, 캐러멜
양조장 더한주조
# 코멘트
“황매실과 천연 꿀의 조합"
매실이 두 가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우리에게 익숙한 매실은 초록색 청매실일 텐데요. 보통 청매를 6월에 수확한다면 황매는 7월에 느즈막히 수확해 완전히 익은 당도 높은 매실입니다. 시중의 매실주에 들어가는 매실은 보통 일반적인 청매실 이지만, 매실원주에는 황매실이 들어갑니다. 그래서인지 뭔가 매실의 성숙한 풍미가 리큐르에 녹아있는 듯 느껴졌어요. 보통 매실주에 설탕이 들어가지만, 이 매실 술엔 제주도산 천연꿀이 들어가서 그런지 달달함이 질리지 않게 느껴집니다. 30도의 천매는 물을 전혀 섞지 않은 100% 최고급 라인이라고 하니 다음번엔 천매를 마셔보고 꼭 소개해드릴게요! (13도는 1년 숙성, 15도 제품은 3년, 20도 제품은 5년 숙성)
# 어울리는 음식
“고르곤졸라 피자"
꿀에 찍어먹는 고르곤졸라 피자를 칠링 한 매실원주와 함께 마신다면 향긋함이 배가 될 거예요. 한 가지 팁이지만 느끼하고 무거운 음식을 먹을 땐, 매실음료나 주류와 함께 곁들인다면 소화도 쉽고 편안한 식사가 될 수 있어요.
이도 소주라 해서 정말 도수가 "2도"라면 이 술을 소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래 이미지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이도는 세종대왕님의 본명으로 좋은술세종에서 만든 대표작입니다. 2016 우리술 품평회 증류식 소주 부문에서 대상을 탄 경력의 이 증류주는 세종대왕이 치료했다고 전해지는 초정 광천수와 유기농 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랜 기간 발효 숙성시켜 저온에서 감압 증류한 증류식 소주는 보드카나 고량주에서나 보았던 화끈한 도수를 자랑합니다. 왕의 이름을 딴 강력한 소주, 한 잔 올리옵니다.
# 정보
식품유형 증류주
알코올 42%
내용량 750mℓ
성분 증류원액(유기농쌀 100%), 물
양조장 좋은술세종
# 코멘트
“화끈하지만 부드럽다는 표현을 납득시키는 술"
보통 높은 도수의 증류주는 음미해서 마시기보다는 한 모금에 탁! 털어 마시길 추천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후취라고 해서 목 끝을 타고 올라오는 향기와 뜨끈하게 타고 내려가는 기운을 느낀다면 증류 소주를 제대로 즐기고 계신 겁니다. 탁주처럼 입안에 오래 머금고 있었다가는 맛과 향을 즐기기 전에 강한 알코올에 마비될지도 모릅니다. 이도는 그런 의미에서 마셨을 때, 고도주를 마시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 줍니다. 42도의 화끈하면서 날렵한 한 모금이 쌀 향기와 부드러움으로 보답합니다. 감압증류기 때문에 정말 '깔끔한' 화끈하고 부드러운 매력을 선사하는 이도입니다.
# 어울리는 음식
“오지치즈 프라이" 베이컨 추가 꼭 해서요"
베이컨은 꼭 추가해주세요. 느끼함의 절정이라는 오지치즈 프라이에 이도 소주 한 잔 마신다면, 끝도 없이 들어가겠죠? 보통 삼겹살과 소주를 함께 즐겨 찾는 이유도 느끼함을 한 모금에 털어 없애고 다시 삼겸살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겠죠.
한국술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진 만큼 양질의 콘텐츠와 정보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어요. 주담의 <우리술 카드>나, 인스타그램의 다양한 술 리뷰어, 한국술 유투버를 비롯해 패션 매거진까지 낯설었던 한국술에 대한 관심이 커짐을 느껴집니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글이지만, 1년 동안 60종이 넘는 술을 마시고 주방장만의 시선으로 표현하고자 머리를 쥐어짰어요. 한국 술맛과 향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어 <플레이버 휠>까지 만들고, 어울리는 음식도 직접 만들어서 시음회에서 소개하기도 했죠. 좋은 건 나눌수록 좋아진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매달 새로운 술들과 (절대 줄지 않는 한국술 예비후보들) 주방장만의 경험과 시선으로 한국술을 전달해드릴게요.
1주년에도 지나치지 않고 꼽아 본 '장원주와 차석주' 선정입니다.
장원주(참 좋았던 한국술)는 우곡주, 차석주(뭔가 2% 아쉬웠던 술)는 가평 잣 막걸리입니다. 우곡주는 여운이 남는 묵직한 탁주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가평 잣 막걸리는 모든 밸런스가 잡혀 좋았지만 특별히 뛰어난 포인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완연한 가을이 될 9월에 찾아뵌다고 했지만, 아직도 여름의 끝자락이라고 느껴지는 날입니다. 다가오는 10월엔 새로운 소식을 하나 전달하려고 해요. 그럼 그때 다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