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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다시 쓰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아제르바이잔 바쿠, 꺼지지 않는 불의 사원 아테쉬가에서의 망상

by 후안

아제르바이잔의 근대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을 빌려올 필요가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형상으로 흙을 빚고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어 낸 후 지극정성을 바치자, 암상에 젖은 제우스가 인간에게서 불을 앗아간다. 이 대목에서 인간들 앞에 펼쳐진 세상은 처참한 지옥도로 변하였을 것이다.


욕지기질을 참아가며 쓰고 거친 풀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핏물 고인 역한 짐승 내장을 날것으로 질겅질겅 씹어 삼켜야 한다. 어둠과 함께 밤눈 밝은 야수들이 혈거로 기어들어 몸을 풀고 곤히 잠든 어미의 곁에서 배꼽이 채 마르지 않은 아이를 낌새도 없이 물어가고 (신화의 서사에 따르면 아직 판도라가 강림하기 이전, 여자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이니 이 부분은 아닐 수도 있겠다만 부디 그냥 넘어가자), 사냥에 나설 창이나 칼은 언감생심, 굳은 땅에 파종 구멍 뚫을 삽 한 자루 녹여낼 수 없어 굶주림은 더해만 가다 마침내 겨울이 찾아오면 얼어붙은 우물과 강마저 한 그릇 녹이지 못해 갈증과 한기에 몸서리친다. 비극은 한 마을의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고, 혹시나 불을 숨긴 자가 있는지 다른 취락을 쳐들어가 도륙질을 하고도 고작 건진 건 추운 밤을 견딜 짐승 가죽 몇 장뿐인데, 그마저도 다른 마을에서 쳐들어온 폭도들에게 목숨과 함께 약탈 당해 다시 주인이 바뀐다.

다행히 인자하신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서 몰래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돌려준다. 의분이 치받은 제우스는 두 개의 작은 바다 사이를 지나는 늙은 짐승의 툭 튀어나온 등뼈 모양의 산맥, 캅카스의 꼭대기에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하고는, 반성의 기미 없이 저주를 퍼붓는 그의 간을 매일마다 독수리가 쪼아 먹도록 징벌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영웅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구하기 위하여 산을 오른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 이제부터는 내가 새롭게 써보는 그 뒷 이야기이다.


최고의 육체를 가진 헤라클레스는 괴성을 지르며 단숨에 산을 뛰어올랐다. 하지만, 어디 캅카스가 만만한 곳인가. 프로메테우스가 묶여있던 엘부르스 산은 해발고도 5,642m로 유럽의 최고봉,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폴리스’(높은 언덕)의 해발고도가 고작 156m인 것을 생각해보면, 긴 시간을 두고 충분한 전문 등반 훈련이 필요했을 것이나 피 끓는 이 청춘의 괴력이 그를 곧장 로켓처럼 고고도 가까이로 쏘아 올리고 만 것이다.


희박해진 공기 속에서, 최강이라고는 하나 한낱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던 헤라클레스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높은 고도로 인간이 오를 수 없는 것, 이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 두 갈래의 의견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 프로메테우스가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신을 불법 복제하여 인간을 설계하면서 빚어진 미숙한 오류이거나, 또는 반대로 이 지적 설계자가 자신의 창조물이 자기 자리까지는 오르지 못하도록 애초에 설계적 결함을 가미한 치밀한 파괴공학으로 창조한 스펙다운의 결과물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여하튼, 미처 다이아목스를, 하다 못해 팔팔정이라도 한 알 사전처방 받지 않았던 헤라클레스는 이내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증, 구토감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러니 산중을 뒤져 마침내 프로메테우스를 찾아내었을 때는 이미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역시 얼굴이 누렇게 뜬 채 심각한 외상성 간 손상과 그에 따른 합병증에 시달리며 저혈량성 쇼크 및 범발성 혈액응고 장애, 각종 감염과 농양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프로메테우스.”

헤라클레스는 입가의 거품 침을 닦아내고 비틀비틀 활시위를 당겨 독수리를 겨눈다. 몇천 년을 매일같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물리도록 먹어야 했던 독수리도 그 모습을 보고는,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이 풍진세상 일식일찬 영양불균형의 생이 오늘에야 끝을 맺는구나, 쏠 테면 쏴라, 날개를 활짝 벌려 곧 날아들 화살을 향해 초초히 맹금의 눈을 감는다.

하지만 핑글핑글 돌아가는 눈알로 겨냥한 화살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체면이 상한 헤라클레스는 관자놀이를 꽉꽉 눌러가면서 다시 한 발을 겨냥해 쏘지만 이번에도 형편없이 과녁을 찾지 못한다. (반인반신의 괴력으로 쏘아 올린 두 발의 화살은 남쪽으로 400Km가량을 날아가 TNT 수억 톤의 폭발력으로 지각을 뚫고 맨틀까지 깊숙이 내리꽂혔는데, 그곳에서 불구덩이가 솟아오르며 두 개의 높은 화산이 생겨났다. 이것이 아라라트산의 탄생 비화이다.)


“잘 좀 쏘아보시게 헤라클레스.”

하지만 고통이 절정에 달한 헤라클레스는 프로메테우스의 구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돌 구르듯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만 했다.

“미안합니다, 프로메테우스. 황금 사과는 제가 어떻게 알아서 구해보겠습니다. 건강을 빕니다.”

그렇게 이 구출작전은 무위로 돌아가고, 독수리와 프로메테우스는 다시 쪼고 쪼이는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돌아가 수천 년을 더 보내게 되었다.


한편,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안겨다 준 저 아래 바닷가의 사람들은 번영의 나날을 이어나갔다. 밝은 불빛과 열 에너지가 미망(迷妄)을 걷어내고 인간의 이성을 밝혔고, 이내 마법이 달아나고 과학이 찾아왔다. 그러자 이제 인간들은 신보다 더 밝아진 혜안으로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으며 그 기록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불을 어찌 빼앗고 훔치고 주고 받을 수가 있었을까? 불은 바람이나 소리와 마찬가지로 현상이지 물질이 아닌데.’

그렇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훔친 것은 불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 때 물 다음으로 많이 사용했던 원료인 카르보니움(Carbonium), 원자번호 6의 ‘탄소’였음을, 그것이 산화 반응하며 활활 불을 뿜을 수 있도록 잘 버무려놓은 탄화수소 혼합물을 그가 인간에게 선물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만 것이다.


인간들은 이제 화석연료를 자유자재로 만지며 마치 그들이 두려워했던 신들처럼, 세상에 없던 것들을 새로이 만들어내었다. 석유를 끓여 나프타(Naphatha)를 뽑아내고 다시 에틸렌, 프로필렌을 걸러내면서 이제 프로메테우스의 불 제조 비밀은 완벽히 인간의 손에 넘어왔다. 튼튼한 합성 섬유로 만든 옷을 매일마다 갈아입고 고어텍스라는 기적의 기술로 신발을 만들어 신으며, 달랑 하얀 천 한 장을 칭칭 감아 두르고 끈 슬리퍼 차림을 한 신들의 패션 감각을 비웃었고, 검은 기름 찌꺼기를 깔아 튼튼하게 길을 굳히고 그 위에 폭신한 타이어를 붙인 강력한 내연기관을 올려 신보다 빠르게 세상을 내달렸으며, 날개를 붙인 보트에 맑은 기름을 부어 신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판도라가 열어젖힌 상자에서 튀어나와 인간을 괴롭히던 질병과 분노의 저주마저도 이제 정밀화학의 힘으로 창조된 알약과 합성 감미료로 다스려지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신전을 폐하고 그 자리에 포드식 공장의 굴뚝을 세워 올렸다.


저 높은 산에 묶여 자신의 피조물을 수천 년째 내려다보고 있던 프로메테우스는 이제 그들이 자신을 완전히 잊었음을 알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짜 형벌은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제우스의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의 고고한 마음은 배신감에 물들어 분노하고 외로웠으며, 고통스러운 회한과 복수심으로 들끓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사슬을 끊고 이 산맥을 저들 위로 무너뜨려 저 오만한 유기물들을 화석으로 되돌려버리고 싶었으나, 그는 저들의 고통을 더 오랫동안 두고 보며 즐기기로 결심한다. 심지어 저들의 파멸은 인간이 스스로 가져오도록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데, 인간에게 준 불꽃에게서 영속성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나의 불꽃은 이제 영원히 불타지 않을 것이며, 탐심에 물든 도적들이 끝없이 찾아와 너희를 노예 삼을 것이다. 마지막 불이 꺼지는 날, 다시 내 아버지의 지옥이 너희를 찾아 가리라.”


산 아래로 크게 울려 퍼진 프로메테우스의 저주가 몇몇 구도자들의 귀에 닿았다. 그들은 오래된 책을 뒤져 불을 빼앗겼던 과거의 지옥을 기억해내고는 공포에 휩싸여 대책을 논의했다.

“다시 이 불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결코 꺼지지 않도록 불을 지켜내야 합니다.

또한, 저 배신당한 신의 아픔을 우리가 함께 나누며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스스로 간을 쪼아내는 고통의 의식으로 우리가 참회하고 있음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들은 신단을 올리고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주야로 돌보며, 이 곳 이승의 땅 너머 도사리고 있는 지옥을 끝없이 세상에 경고했다. 그리고 토굴에 기어들어가 스스로 굶주리고 제 등에 채찍질하며 분노한 신을 달래고 고통을 이길 명상으로 욕심을 비우는 삶을 살았다. 이후 ‘자라투스트라’(영어명 조로아스터)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이 같은 구도의 의식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프로메테우스의 저주대로 불을 탐낸 자들이 끝없이 이 곳으로 찾아왔다.

동토에서 등걸불을 쬐며 초한에 시달리던 러시아 제국이 찾아와 땅을 파헤쳤고, 얼마 후에는 스웨덴에서 온 사업가 형제들이 가문의 이름을 내걸고 ‘노벨형제석유생산주식회사’를 세우더니 막내 동생이 개발한 다이너마이트라는 신형 폭탄을 터트려 구멍을 더 손쉽게 파헤치고 관을 꽂아 넣었다. 그렇게 뽑아 올린 석유를 세계 최초로 만든 유조선에 담아 러시아로 실어날랐는데, 오만하게도 이들의 탐욕을 경고한 선지자의 이름을 가져와 그 배에 ‘조로아스트르’라는 이름을 붙이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불꽃의 분별없는 사용으로 세상은 매캐한 매연에 시달리면서도 이 화석연료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제국에 이어 등장한 혁명가들마저 이곳을 탐내어 파이프를 연결했고, 록펠러와 로스차일드라는 먼 곳의 자본가들까지도 이 곳을 찾아와 곳곳에 파이프를 숭숭히 꽂아대었다.

지표가 너덜너덜해질 지경으로 벌집이 되었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한 프로메테우스는 광기 어린 독재자에게 이곳의 기름 냄새를 맡게 하였을 뿐 아니라 (다행히도 전차를 몰고 달려오던 히틀러는 적장을 이름을 딴 도시, 스탈린그라드를 먼저 파괴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진격의 방향을 돌리고 만다.) 이 땅에서 독재자의 대가 이어지도록 하여, 다시는 저 석유와 가스가 천국의 상징이 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해 나간다.

-끝-


공상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만,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실제 근대사는 화석연료와 그것의 산화 반응을 제외하면 그 환경과 역사, 정치, 경제에서 이야기할 것이 크게 남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상업 유전이 뚫린 곳이자, 20세기 초반 세계 원유 생산량 50%를 차지했던 곳이었으니, 그만큼 매장된 원유와 가스가 많고, 또 파내기도 쉬운 곳이었을 것이다. (바쿠의 해발고도는 -22m로 대양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도심과 그 주변 곳곳에서 마주치는 오일 드릴들의 활기찬 펌프질을 감상하다 보면, 바쿠는 역시 가연성이 강한 땅이라는 것이 실감이 된다.


좀 더 먼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일찍이 태양을 닮아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이 곳곳에 타오르고 있었기에, 낮과 밤, 빛과 어둠, 천국과 지옥,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이원적 종교관의 기원이 되었던 곳이고, 좀 더 따지고 들면 결국 원시적 형태의 조로아스터를 비롯해 지금 지구를 지배하는 아브라함 계통을 비롯한 유일신을 믿는 수많은 종교들의 시작점이 된 곳이 되는 셈이다.



조로아스터교 성지인 불의 사원 ‘아테쉬가’(Ateshigah)를 찾았다. 요즘 교과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어린 시절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배운 것은 틀린 사실이다. 기도를 올리는 동안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 정도를 한 것이지 불을 향해 절을 올리거나 기도를 하는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대신 각자의 방에서 마조히스트에 가까울 정도로 자해성 수련을 하면서 명상과 기도에 몰두했던 종교이다.



사원의 한가운데에는 꺼지지 않는 신성한 불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데, 지나친 시추로 가스 압력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파이프를 연결해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같은 비극은 바쿠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약 70년 전, 겁 없는 한 양치기가 당긴 담뱃불이 땅에서 새어 나오던 천연가스에 옮겨 붙었는데, 그 불이 여태껏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곳, ‘불의 산’ 야나르 다그(Yanar Dag)의 불꽃도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곳만이 아니다. 원래 바쿠 시내와 인근의 더 많은 곳에 영원의 불꽃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인근의 파멸적인 시추로 말미암아 그만 꺼져버리고 만 곳도 많다.

바쿠에 최초의 시추공이 뚫린 1872년으로부터 겨우 한 세기 반도 되지 않아 서리기 시작한 불길한 조짐이다.



앞으로 인류가 얼마나 더 화석연료를 파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하리라 믿고 있는 세상의 불꽃이 마침내 모두 꺼지는 날이 오면, 그제야 자본주의야 말로 오일과 그 에너지로 세워지고 버텨온 진짜 불의 종교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그대의 길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일곱 악마의 곁을 지나간다! 그대는 자신에게 이단자가 될 것이며, 마녀, 예언자, 바보, 의심하는 자, 성스럽지 못한 자, 악한이 되리라. 그대는 그대 자신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불태워 버리려고 해야 한다. 우선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거듭나기를 바라겠는가!"

- 결코 자라투스트라가 말하지 않았을 이야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만인을 위한, 그러나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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