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길렀다. 원체 바짝 자르는 타입이어서 제때제때 잘라주는 편인데 이번엔 손바닥을 보일 시 덩달아 손톱도 빼꼼 고개를 내밀 정도로 길렀다. 귀찮아서 그랬다. 당신을 포기해가며 세상만사 지루하고 따분하다. 재미없다. 손톱을 자를 기력도 없다.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사실상 당신을 떠올리는 시간이다. 아울러 잠을 자는 시간도 늘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괴로워 차라리 잠을 자는 편이 나았다.
내리는 빗줄기를 가만 응시할 때면 나가서 흠뻑 젖고 오고 싶다. 불을 보면 뛰어드는 불나방인 양 당신을 볼 경우 뛰어들고 싶다. 달려가 대뜸 안아버리고 싶다. 소나기인 줄 알았던 사랑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긴 장마이다. 다시 병원을 다닌다. 잘라야 하는 건 손톱이 아닌 짙어진 감정일 수도 있겠다.
일주일 전. 당신 꿈을 꾸었다. 당신이 내게 손을 내밀며 활짝 웃는 꿈이었다. 단번에 꿈인 걸 알아챘다. 당신이 내게 이리도 헤프게 웃어줄리 만무한데. 어깨동무를 한 채 당신과 다정히 사진을 찍은 뒤 뒤편에서 울었다.
꿈에서 깨어났다. 눈물에 젖어 무거워진 눈을 뜬다.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단정한 당신의 옷차림새와 깔끔하게 넘어간 머리카락을 매만져주고프다. 잊을 거라면, 정말로 잊을 거라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노릇이다. 당신에 대해 더욱 상세히 적어나갈 수가 없음이 원통스러울 따름이다.
청춘의 색을 잃었다. 그렇지만 인제 진짜 나아가야 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한발 한발 움직여야 했다. 당신에게 초콜릿을 전해주러 갔던 길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해야 했다. A와 나누었던 지난날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아하기만 하는 건데 왜 안 되어요. 너무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하지 마요. 내가 그 사람과 이상의 무엇을 행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이 쓰던 젓가락을 훔쳐 와서 간직하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그 사람이 버린 무언가를 다시 주워오는 것도 아닌데.”
“그건 범죄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안 되냔 말이죠. 단순히 그냥 좋아하는 건데.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한 것도 아니고.”
내 손을 움켜쥐던 A의 체온이 되살아났다.
시나브로 봄이 온다. 죽어있던 것들이 생명력을 되찾는 계절이 온다. 정황상 모든 것들이 우리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래도록 기척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