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다시 옆에 와 앉을 것 같아요

by 주또

여태 꾸준히 편지를 적어요. 부치지 못하여 휴지통으로 냅다 골인하는 한낱 글자에 불과해질 수도 있겠다만, 계속해서 적어내리고 있어요. 어수선한 마음과 달리 신기하리만치 카페 안은 조용하기 짝이 없네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두 다 짜고 친 것처럼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요. 간간이 책 넘기는 소리.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미세한 울림을 만들어낼 뿐이에요.


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당신은 지금 이 시각. 무엇을 하며 보내고 있을까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던 시절엔 이쯤에서야 일어나 습관처럼 커피를 내려 마시고서 책상에 앉아 음악을 틀곤 했는데요. 아직도 그러한 일상을 살고 있을지 문득 상상해 보게 되는군요.


여전히 비를 싫어하나요. 빗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게 되나요. 옷이 눅눅해지는 것은 물론, 온 바닥이 질퍽거려진다며 입술을 한껏 쭉 내밀고 있나요. 나는 당신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기를 바랐어요. 때로는 그걸로도 모자라다면 잠시라도 쉬다 갈 수 있는 작은방 한 칸이라도 되기를 원했어요.


원래 헤어짐 이후엔 이것저것 당신의 바람이었다며 미화된 기억 속에서 흠뻑 젖어들기도 하잖아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 대신 누군가와 좀 더 너그러웠더라면 싶어지잖아요. 나도 당신과 좀 더 발맞춰 걸었어야 했어요. 우리의 속도가 달랐다는 말은 어쩌면 변명밖에 되지 않으려나요. 이미 완결이 나버린 이야기를 질질 끌어가며 홀로 쓰는 뒷이야기는, 내심 심심한 면이 없잖아 있네요.


우리 함께 감던 테이프를 고스란히 구석 서랍장에 넣어 보관했어요. 꺼내어 다시금 두 눈에 담을 경우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 뻔하지요. 어떤 하루엔 지극히도 울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우스갯소리이다만 그럴 시엔 아주 딱이에요. 그만한 게 또 없을걸요(웃음).


당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팝콘을 입에 넣다가도 냉큼 울어버리는 일. 우습고 유치하지만 사랑이었더라고 연신 고백하다가 축축한 베개를 끌어안은 채 잠에 드는 일. 당신이 남기고 간 습관을 복사본 마냥 따라 하다가 얼떨결에 멍해지는 일. 어디 한군데 고장 난 사람처럼 삐걱거리는 일.


이 타이밍에, 질문 하나 해도 되려나요. 있잖아요. 익숙한 일마저 어려워지는 순간에 불현듯 당신 얼굴이 떠올라 물살처럼 울어버린다는 건, 멀쩡한 게 아니지요?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회피였지요. 단 한순간도 제대로 지워본 적 없어요.


그 얼굴, 변함없이 선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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