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항상 곧잘 사라질 것 같다고 하잖아요. 언제이고 자취를 감출 준비가 된 사람 같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실은 안 그래요. 난 삶에 가장 미련이 많은 편이거든요. 한데 이러한 모습을 들킬 시엔, 약점으로 잡히는 경우가 태반일듯하여 일부러 매사 덤덤한 척을 하는 거랍니다.
약한 인물로 취급되고 싶지 않아서 되려 밝게 구는 경향이 있고요. 이게 강해 보인다고는 장담 못 한다만, 적어도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듯이 보일 순 있을듯해서요. 대체 뭐가 좋은 것이냐, 묻는다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배시시 웃겠습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되게 많아요. 꼭 나도 모르는 사이 쌓여버린 숙제 마냥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요. 때문에 자꾸만 새벽 두세시경에 깨어나 뜬눈으로 밤을 새웁니다. 어제는 거미가 나오는 꿈을 꿨어요. 굳이 해몽을 검색해 보진 않았어요. 귀에 꽂고 잠들었던 이어 플러그를 빼내고서 멍하니 벽을 바라봐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있잖아요. 본인을 제일 괴롭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랑받는 느낌이 들 때면, 버릇인 양 어깻죽지가 뭉쳐와요. 나의 아프고 미운 생애를 되돌아보게 되어 행복할 자격이 없단 결론을 붙들게 되거든요.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알아요.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는 아침이네요. 애정하는 이를 데리고 갈 만한 디저트 가게를 찾아보아요.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치도록 해야겠어요.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할까요? 나를 선택하여 후회하진 않았을까요? 타인이 일상 깊숙이 들어오는 게 무서워 기피했었는데요. 이젠 당신 없인 내 하루가 불안정해져요. 당신의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는 순간, 가까스로 안정에 가닿을 수 있어요. 수시로 사랑을 말하는 일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을 테지요. 그래서 ‘귀엽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당신한테는 가끔 나의 치부를 다 들켜도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요. 참, 위험한 마음인데 말이죠. 어리숙한 표정으로 안아달라며 두 팔이나 뻗어봅니다.
다소 쑥스러운 비밀인데요.
훗날 내가 진짜 도망치고 싶은 때가 온다면,
서둘러 문 두드릴 곳이 당신 품 속이기를 기도하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