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크리스마스다? 아니, 평가시즌이다!
12월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눈, 반짝이는 트리, 송년모임으로 북적한 식당, 길거리 연인들의 모습, 언제 들어도 설레는 캐럴,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사람들. 그렇게 왜인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들뜬 분위기가 가득한 그런 모습이다. 나 역시 그랬다. 뭐라도 크리스마스 느낌을 주는 것을 사서 집을 꾸미는 게 좋았고, 1일부터 캐럴을 듣기 시작했으며, 송년모임을 핑계로 여기저기서 술을 먹느라 바빴다. 12월은 춥기보다는 포근한 겨울의 이미지가 더 컸다.
요새 경제가 많이 어렵다고들 한다. 사실 매년 올해가 제일 어렵다, 전년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언제 좋아질 때가 있긴 한 걸까? 그런데 올해는 정말 어렵긴 했나 보다.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의 피바람이 회사에 분다. 이 살벌한 분위기에 한참을 욕을 하다 퇴근하면 집에 와서 틀어놓은 뉴스엔 온통 '잘 나가는 줄 알았던' 대기업들도 권고사직 바람이 불어 30-40대 '강제 퇴사자'가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루아침에 몸담고 있는 직원을 내치는 회사에 진절머리가 나서, "더러워서 내 발로 나간다!" 하고 싶지만 나가도 이젠 정말 갈 곳이 없는 시국이다. 너도 나도 직원들을 내치고 고정비를 줄이는데 혈안이다.
직장인에게 12월은 평가시즌이다. 한 해의 성과를 최대한 잘한 것처럼 열심히 기술하여 최대한 좋은 고과를 받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하며, 일정 퍼센트가 정해져 있는 s, a, b, c, d의 평가 점수 중에 좋은 것을 내가 차지할 수 있도록 상사에게 최대한 잘 보여야 되는 때이다. 학교를 다닐 땐 시험으로 그간 공부한 것을 평가받았는데, 회사를 와서도 평가의 연속이다. 어쩌면 오늘의 회식자리가, 오늘의 프로젝트 발표가 나의 연간 평가에 어떤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회사나 비슷한 수준이겠지만 s와 a의 비중은 굉장히 낫다. 한 팀에서 1-2명 있을까 말까 하다. 대부분은 b, 뭔가 낙인찍힌 것이 있다면 c, 그 이하인 d면? 이제 그만 나가라는 얘기와도 같다. 다른 회사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선 그렇다. 그러니 직원의 반이상은 b를 받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한데, 아주 웃기게도 이번 권고사직 대상자를 리스트업 한 기준이 (물론 공식적으로 게시된 기준은 없고, 암암리에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난 것인데) 글쎄 고과 b 이하를 받은 사람이란 것이다! 회사는 정녕 반 이상의 직원을 내보내려는 목표를 세운 것일까?
물론 작년에도 권고사직의 바람은 불었다. 그러나 소수였고, 알려진 대상자들은 대부분 '나갈 만한' 사람들이었다. 업무 태도가 안 좋거나, 근태가 불량한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옆자리, 앞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그리고 어제까지 같이 회의하고 일했던 직원들이 모두 대상이 되었다. 이번엔 대상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휴 다행이다"로 안도하는 게 아니라, "내년에 나일수도 있겠네?"라는 아주 찝찝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채로 맘 졸이고 있느니 내 발로 나가겠다며 희망퇴직을 신청해서 떠날 결심을 한 직원들도 생겨났다.
나를 포함한, 아직 권고사직을 당하지 않은 남겨진 직원 대부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다. 아마도 아주 많은 수의 직원들이 정리되어 떠나고 나면 빈자리도 많아질 것이다. 올해 12월은 좀 많이 추울 것 같다. 오늘따라 캐럴도 슬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