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이루어낸 것들
영하의 온도와 단풍나무가 공존하는 날이다. 갈수록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한 해였다. 11월까지도 반팔을 입고 다녔으니, 영 오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의 손 시려움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정치적 이슈로 시끄러웠던 한 주였다. 살아생전 계엄령이란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이번 사태로 넷플릭스에 영화 '서울의 봄'이 다시 1위로 올라왔기에 한번 틀어봤는데(아직까지 난 이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사이다 없는 고구마를 먹고 싶지 않아서...), 역시나 혈압이 너무 올라 중간에 꺼버렸다. 이번 계엄령으로 경제는 한 층 더 팍팍해졌다. 이렇게 불안해 보이는 나라에 어떤 외국인이 투자를 하고 여행을 오겠는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지구와, 나라를 보면 한낱 미물인 내가 매일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손 놓고 시간을 보낼 순 없으니, 오늘도 나는 아침부터 시간계획표를 짜서 움직이고 있다. 아이를 보내고, 나에게 쉴 틈이 생기면 끝도 없이 아이에 대한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에, 내가 세운 특단의 조치는 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핸드폰에 시간 계획표를 짜는 어플을 다운로드해 분 단위로 하루를 쪼개놨다. 그리고 그 일정들은 시작 전, 종료 전 수시로 알람이 뜨며 내가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없게, 그 일정을 시간 안에 끝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을 다 완료하고 났을 때 느껴지는 작은 희열이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를 몰아치는 삶이 나를 내일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아픈 것을 이겨내기 위해선 나를 소진시키는 게 나았다. 그래서 아이를 떠올릴 여력이 없게 만드는 편이 나았다. 12월이 되어 한 해 이뤄낸 것들을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한 달에 2권씩 책을 읽어보자는 목표를 세웠었는데, 지금까지 45권을 읽으며 목표 대비 2배 이상을 이뤄냈다. 인강도 3개를 수강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혔고, 남은 12월 동안은 자격증도 하나 취득해 볼 예정이다. 아이가 떠난 후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 보기 위해 여자 풋살반을 6개월 정도 다녔었고, 4월부터 등록했던 PT는 지금까지 이어오며 헬스에도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최소 주 3회 이상 운동을 하자는 목표를 착실히 수행하며 건강한 신체를 만들고 있으며, 부동산과 주식 공부도 시작해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아,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아이를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심리상담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상담선생님께서는 슬프겠지만 이 모든 게 아이가 주고 간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아이는 떠난 후에도 나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사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삶을 보냈을 것 같진 않다. 시간을 쪼개서 벼랑 끝까지 나를 내몰아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저앉는 대신 나아가는 방향을 택했고, 덕분에 발전과 성장이라는 결과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번씩 아이가 떠오르면 처음 아이를 보냈을 때만큼의 깊은 가슴 통증을 느낀다. 그래서 바쁜 일상 속에서 꾹 눌러왔던 감정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해방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평소 절대 볼 수 없었던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며 절규한다. 콧 볼이 까질 때까지, 눈두덩이가 분홍색으로 부어오를 때까지 한없이 눈물을 쏟으며 가슴 한켠에 숨겨놨던 그리움, 미안함, 보고 싶음, 죄책감 같은 감정들을 풀어놓는다.
언젠가 아이를 다시 만날 날까지 나는 이만큼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겠지. 너무 빨리 떠나버린 아이의 몫까지 충실히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나를 다잡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