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11시, 메시지가 왔다.
침대에 거의 반쯤 누워 이불을 덮은 채 책을 읽다가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해 선잠이 들었던 소연은 메시지 알림 소리에 잠을 깨 눈을 떴고, 계속 자고 싶다는 욕망과 누구의 메시지인지 알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 뒤 결국 이불속에 있던 왼손을 꺼내 천천히 옆으로 뻗어 침대 옆 스탠드 아래 있던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본 스마트폰 화면에 주혁의 이름이 떠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소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이 시간에 주혁 씨가 왜?’ 놀란 것도 잠시, 소연은 궁금함과 기대감에 한껏 들떠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메신저 어플을 열었다. 채팅창 리스트의 가장 위에 그의 웃고 있는 얼굴과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 채팅창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의 첫 줄이 적혀있었다.
'[부고 안내]'
소연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채팅창을 열었고, 전체 메시지를 확인했다.
'故 이주혁 님께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병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메시지의 첫머리만을 읽은 소연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메시지를 반복해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주혁의 가족 중 누군가 죽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몇 번씩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아도 가족 그 누구의 호칭도 그 문장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소연은 ‘이주혁 님께서 병환으로 별세하셨다’는 문장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첫 문장 뒤에 이어진 빈소 등의 정보에 적혀있는 ‘고인 이주혁’이라는 두 단어가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소연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의 1년 만에 그에게서 온 개인 메시지는 그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프로필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본인 얼굴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있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소연은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환으로 죽었다니. 우리가 헤어질 때만 해도 건강했었는데, 왜? 나랑 만나고 있을 때도 병을 숨기고 있는 거였나? 하긴 병이 있었어도 아마 주혁씨는 자신에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소연은 생각했다. 주혁은 그런 성격이었다. 한없이 선량하고 부드러웠지만, 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진 않았다. 웬만큼 힘든 일이 아니고서야 혼자서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소연은 때때로 그러한 주혁의 성격에 답답함과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또 그런 면에 강하게 끌린 것도 사실이었다. 이 남자의 마음속 굳게 닫힌 서랍을 열어보고 싶었고, 그 서랍 속 신비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았던 연애를 하며 둘은 현실적인 난관을 마주하였고, 서로 사랑했지만 그 난관을 넘어서지 못한 채 1년 전 결국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갑자기 주혁의 죽음이라는 낯선 소식이 소연에게 전해졌다.
소연은 주혁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던 1년 전 이별의 순간을 떠올렸고, 그제야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겨울이 시작된 걸 알리듯 제법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던 11월의 어느 날 밤, 늘 헤어지곤 했던 연세대 정문 인근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둘은 더 이상 만나지 말 것을 약속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연희동으로 향하는 7017번 버스를 타고 주혁이 먼저 떠날 때까지 소연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혹시라도 먼저 돌아서서 떠나면 터져 나오는 울음에 어깨를 들썩이는 뒷모습을 주혁에게 보일 것 같았고, 그러면 마음 약했던 주혁은 자신을 다시 붙잡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소연은 끝까지 남아 주혁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는 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고 소연은 생각했다. 그저 끝까지 그를 바라보고, 그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머뭇거리며 버스에 오르던 그의 뒷모습. 그리고 창가 좌석에 앉아 애써 소연이 서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했던 그의 옆모습. 이제 그 모습들은 소연이 실제로 본 주혁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
소연은 이별 이후에 자신이 먼저 주혁을 다시 보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을, 그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괜히 안부를 묻는 척 연락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우연을 가장하고서라도 그와 마주치고 싶어 그가 매주 가는 명륜동의 음악학원 인근을 서성거리고 있을 것 같았다. 재결합을 원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것은 나중의 문제였다. 단지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주혁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가 더 멀어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하는 것을 주저했고, 그가 있는 장소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
그렇게 1년을 지냈는데, 결국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에게 연락을 해도 답을 받을 수 없고, 명륜동 그 골목길을 서성인다 해도 그를 마주칠 수 없게 되었다. 소연은 자신이 보았던 그의 마지막 모습, 어쩌면 버스에 오르길 망설였던 건지도 모를 뒷모습과 어쩌면 애써 눈물을 참느라 떨리는 입술을 보이기 싫어 정면만 보았던 건지도 모를 옆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는 눈물을 미처 닦지도 못한 채 그동안 주저하고 망설였던 시간을, 그렇게 했던 자신을 안타까워하고 원망했다.
다음 날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빈소를 확인하기 위해 본 안내 화면 속에서 소연은 주혁의 웃고 있는 얼굴을, 자신의 부고를 알렸던 메신저 속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주혁의 영정사진으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주혁은 너무나 티 없이 밝게 웃는 얼굴로 자신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연은 사진 속 그를 바라보면서 평소에도 눈꼬리가 처진 큰 눈과 큰 입으로 항상 웃는 표정을 띤 채 사람을 대했던 그였기에 어쩌면 저 사진이 가장 주혁 씨 다운 영정사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웃고 있는 주혁의 모습을 보며 소연은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주혁의 동생에게서 들은 그의 사인은 혈액암이었다. 지난해 2월에 암 판정을 받고는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젊고 건강한 몸이었던 만큼 암이 전이되는 속도도 빨랐고, 그만큼 몸 상태도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고 했다.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던 중 지난 10월부터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고, 결국 호스피스에 입원해 죽음을 준비했다고 동생은 말했다.
지난해 10월. 사실 소연은 10월의 어느 날 주혁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그 날의 청량했던 공기와 눈이 시리도록 파랗던 가을 하늘이 소연의 마음속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주혁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만들었다. 그 날의 날씨는 소연에게 그와 함께 했던 어느 가을날의 기억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둘이서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던 낙산공원 성곽길. 그곳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과 남산 위에 아름답게 솟아있던 남산타워, 그리고 파란 하늘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새하얀 셔츠를 입은 주혁의 모습. 파란 하늘과 그 아래 성곽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연락을 했다. 메시지 확인 여부를 나타내는 숫자 1은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주혁에게서 답장은 결국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메시지만이 달랑 떠있는 채팅창을 소연은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이미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증상으로 인해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설령 답을 할 수 있다 했어도 그는 분명 자기가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때 주혁 씨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갑작스럽게 맞이한 그의 죽음에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는 아무 소용없는 생각을 소연은 잠시 해보았다.
문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소연은 조명도 켜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소파에 몸을 뉘이고는 스마트폰으로 주혁과 함께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계속해서 보았다. 그 속에서 주혁은 큰 눈이 가늘어져 사라질 듯 활짝 웃고 있었지만, 소연의 눈 앞엔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소연은 이렇게 주혁을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연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집 안에서 소연은 그저 멍하니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고 있었고, 스마트폰 빛에 반사된 눈가의 눈물이 촉촉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새벽이 되도록 소연은 잠들지 못한 채 계속해서 소파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 놓인 디지털시계의 화면이 세 시로 바뀌자 소연은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연은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그리고 행선지를 묻는 택시기사에게 주혁이 있는 장례식장의 이름을 얘기했다.
주혁의 동생에게 들은 발인 시간은 네 시 삼십 분이었다. 네 시가 조금 넘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주혁의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운구를 맡은 그의 친구들이 발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연은 자신이 지금 이 곳에서 얼마나 어색한 존재일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만 같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라도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는 것이라고 소연은 생각했다.
발인이 시작되어 친구들이 주혁의 관을 들고 천천히 이동했으며, 그 뒤로 가족과 친척들이 뒤따랐다. 주혁의 동생이 웃고 있는 그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렬의 맨 앞에서 앞장서고 있었다. 소연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마지막 순간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닌 정면으로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또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저하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게요. 보고 싶을 때 찾아갈게요. 주혁 씨를 혼자 외롭게 두지 않을게요.’
소연은 운구차량에 들어가는 주혁의 관을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