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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May 28. 2022

자주적인 사람

 '지나가버릴 찰나의 평가, 잠깐의 말 때문에 내가 평생 원치 않는 일을 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얼마 전 방송에 나온 20대 여성의 말이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도배사가 되었다. 조직생활이 맞지 않았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직업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예상되듯이 그의 선택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의 학벌이 아깝다고 하거나, 도배일을 ‘그런 일’이라고 폄하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몸 쓰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직접 해보니 기술을 몸으로 터득하는 일은 가치 있고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인데, 그것은 한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참 자주적인 언니구나.’ 이 방송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손수건으로 살짝 덮어놓은 어떤 것을 툭 건드렸었다.


사실 이 방송을 보기 전에 기사로 먼저 접했었는데, 그때는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나 같아서 놀라기보다 공감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방송을 보면서 기사에서는 몰랐던, 그녀의 선택 뒤에 느껴지는 자주성의 힘이 새롭게 다가왔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말에서, 노동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는 말에서 그것을 느꼈다. 내가 이 ‘자주성’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요즘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방송을 보며 그것이 건드려진 거다.


이직을 준비할때였다. 경영악화로 타의에 의해 퇴사했었기 때문이다. 예정하지 않았던 퇴사였기 때문에 다시 준비하면서 진로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회사를 선택할 때 무엇을 중요시할지, 지역은 어디로 갈 것인지부터 아니면 아예 다른 직업을 가져볼지 까지 수많은 고민에 휩싸였던 날들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무렵 나는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이것을 놓고 생각하던 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를 지나치게 고려하고 있던 나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민의 중심이 나의 기준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이 된 것과도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준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 미성년 상태의 책임을 마땅히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은 이 미성년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이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미성숙이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판단을 맡겨버리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어 누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그렇게 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평가를 신경 썼던 걸까. 그리고 왜 내가 자주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렸을까. 그것은 칸트의 말처럼 용기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이 용기는 나에 대한 자신감과 연결되어 있다. 졸업을 하고 난 뒤에 점점 주변 친구들이 직업을 가지며 어떤 결과를 내놓고 있었고, 나의 가능성은 해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느낀 조바심과 불안함이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다수의 기준을 따라가는 것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었다.


물론 이후에 나의 모습을 자각하고 난 뒤에는 전처럼 나의 주관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든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은 위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주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려본다. 내가 생각한, 그리고 사회가 이야기하는 목표는 마치 달리기 선수가 좋은 성적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장면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의 성취와 다른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것의 여부에 따라 나의 자신감이 생겼다 사라졌었다. 하지만 도전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목표로 잡는다면 ‘결승선을 통과해서 박수를 받는 모습’이 아니라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목표라면 자주적인 삶은 훨씬 수월해진다. 어떤 결과를 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도전하고 노력하는 삶이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에 언급한 20대 도배사 청년처럼, 자신이 힘써 고민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특별한 삶을 사시는 것이 아니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그들의 자주적인 생각과 선택이 온전한 자신으로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디에 기대어 있지 않고 두 다리로 바로 서 있는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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