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을때 처음에는 '코로나 시대'라는 단어를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여느 전염병처럼 태풍이 지나가는 느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계속 지나면서 결국 코로나 시대라는 단어를 인정하게 된다. 코로나는 지나가는 태풍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깊고 오래 지배하는 전쟁과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코로나 시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데에 한 가지 계기가 더 있었는데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였다.
어느 날 나는 무민 이야기를 읽었었다. 그 책은 작가 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 중 가장 첫 책이었다. 책 가장 뒤에 작가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을 때 무민 시리즈 시작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보던 어떤 책에서 톨킨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반지의 제왕>을 쓸 때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물론 전쟁과 비교를 할 수 없지만, 모든 일상이 마비되고 움직임을 정체해야 하는 이런 상황은 어느 세대든 겪었고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두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전에 겪었던 다른 전염병과 다르게 점점 심해져가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보는 마음가짐의 변화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코로나 뒤에 시대를 붙인 단어를 인정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곧 나아지겠지, 곧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겠지 매일 외던 나의 생각들이 배신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더 좋아졌었다. 그동안은 코로나 시대에 끌려다녔는데, 인정하고 나니까 주도권을 찾은 것 같았다. ‘코로나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만 할 수 있는 일이 뭘지 생각하고 계획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여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코로나 시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시대는 조금 더 내적이고 정적인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준다. 또 참석하고 싶지만 재정이나 시간이나 거리 때문에 궁금함을 품은 상태로 포기했던 곳들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 시대가 주는 혜택들을 더 열심히 누리려고 했다.
이런 생각의 전환들을 겪으면서 인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정하면서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상처는 상처받았음을 인정할 때부터 치유가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회피하고 있는 상황과 감정은 어쩌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기회일 수도 있다.
막연하고 또 절망스러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그 위에 선다. 그리고 그 현실을 자근자근 밟으며 걷는다. 그 길이 끝나갈 때쯤, 내가 걷던 길은 새로운 세계로 이어주는 다리였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