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7.
모성애 (母性愛)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 어학사전에 '모성애'를 검색하면 나오는 말이다.
나는 결혼 전부터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아이를 귀엽다고 느끼는 감정조차 없었다. 심지어 키즈카페에서 1년 정도 일하면서 그곳을 ‘애기 지옥’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예쁘지도 않고, 아이들과의 소통에 있어 엄청난 피로감과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임신 소식을 접하니, 적지 않은 충격이 밀려왔다. 모성애에 대한 기대와 압박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주변에서는 “임신하면 자연스럽게 사랑이 생긴다” "내 애는 다를 거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16주가 흘러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출산과 육아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컸지만, 이제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남편과 함께 ‘육아 박람회’라는 새로운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육아 박람회는 다양한 육아 용품과 정보들이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부스와 제품들에 조금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평소 아이들과의 접촉이 적었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브랜드의 기저귀, 유모차, 아기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여러 부모들은 각자의 경험과 팁을 나누며 활기차게 대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 편하게 구경을 하듯 보고 오자 했는데 다양한 육아용품에 기가 죽고 눈치가 보였다. 도대체 이런 건 왜 필요한 건지 손수건은 왜 많이 사야 하는지 밤부? 엠보? 종류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물쭈물 대는 나에게 박람회의 한 부스에서 "준비가 어디까지 되셨나요? 몇 개월 이신가요?" 친절히 물었지만 나는 준비한 게 하나도 없어 웃음으로 답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냐 듯 쳐다봤다.
박람회에 참석한 주변 엄마들을 보니 출산, 육아 준비 리스트를 각자 나름대로 준비하여 물품을 고르고 있었고 유모차, 아기띠, 카시트 등 체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비싼 돈을 주고 이 제품은 왜 사야 하지? 왜 필요하지? 의문이 많았고 모성애가 없어 보인다는 듯이 한 직원의 일침에 나는 뜨끔했다.
"산모님 이젠 준비하셔야 돼요. 모르면 안돼요. 아기한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모성애가 뭐 길래?
임신한 내가 육아용품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죄스러웠다. 그 공간에 서 있으면서 순간적으로 나는 모성애가 결여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다른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제품을 고르고, 정보에 귀 기울이고 있는 반면,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혼란스러움만 느끼고 있었다.
"모성애라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결혼식 준비를 할 때처럼 열정적으로 아이를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육아용품 하나 고르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도 시부모님께서는 모성애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아이에게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최소 1-2년은 꼭 권장한다. 그리고 꼭 품 안에 안으며 젖을 물려야 한다"는 말씀에 나는 더욱 압박감을 느꼈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정말로 모유를 안 먹이면, 용품을 고르는 것을 잘 못하면, 태교를 하지 않으면 모성애가 없는 것일까? 나는 자격 없는 엄마가 되는 것일까? 주변의 다른 엄마들은 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과 편견, 그리고 강요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나 자신이 이렇게 느끼는 것도 죄가 되는 것처럼 느껴져 몇 날 며칠을 속상해하고 고민하며 울었다.
부모면 당연히 아이가 인생의 보물이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모성애가 생기는 것 이라며 자꾸만 강요하는 말과 행동들이 나의 감정에 쿡쿡 박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고 결국 스트레스 끝에 나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한 동안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침묵으로 일관하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말 잘못된 것인가?" 나는 아직 임신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모성애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받고, 강요받지 않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주변의 '모성애 틀'에 휘둘리지 않고, 나 스스로 아이를 사랑하고 돌보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모성애이고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이 다를 뿐 맞고 틀린 것은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강요받는 사랑의 이미지가 마치 모성애의 중요한 부분으로 사로 잡혀 그 틀에 벗어나는 엄마는 자격이 없는 것처럼 만드는 모든 세대들에게 나는 돌을 던지고 싶다.
초라함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과정을 즐기고 싶다.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속도로 이 과정을 경험하며 주변의 잔소리를 철저히 무시한 채 완벽한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대신, 나 자신을 돌보며 이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방식으로 모성애를 찾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