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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Nov 24. 2023

50대 50의 확률

죽음을 마주하다

임신 33주.

인큐베이터 자리가 생길 예정이라고 했다.

세 번째 양수감압술을 앞두고, 주치의는 갑자기 제왕절개 분만을 결정했다.

자가 호흡이 가능한 34주까지 기다리기엔 고위험 신생아 인큐베이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큐베이터가 없으면 아이를 근처 다른 병원에 보내야 했다.


33주 3일.

금요일 오전이었다.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수술실에 울렸다.

쌍둥이 중 한 아이는 제 머리만 한 종양을 안고 태어났다.

다행히 나와 아이들 모두 살아있었다.

예상치 못한 분만으로 남편은 뒤늦게 도착했다.

쌍둥이의 탄생과 함께 아빠가 된 그는, 아이들 얼굴 대신 수십 장의 동의서와 마주했다.

남편은 그때, 겁이 났다고 했다.

아이가 죽을까 봐.




의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양 탓에 신생아의 모든 장기들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겪는 입원과 수술에 정신이 없었다.

산부인과, 신생아과, 소아외과, 신생아중환자실...

산모 하나에 아이 둘을 담당하는 의사도 여럿이었다.

소아외과에서 나와 남편을 불렀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아이 수술을 담당한 K 교수를 만났다.

"제가 이런 말씀은 잘 드리지 않지만,

종양이 워낙 큰 데다가 어디에서 생긴지도 모르고,

아이가 너무 작습니다.

수술이 성공할 확률은 50대 50입니다.

테이블 데스도 생길 수 있습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큰 병마를 마주한 적 없던 나로서는 의사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종양만 없으면 다 정상이랬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으니 종양이야 여드름처럼 똑 떼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수술하다가 아이가 죽을 확률이 절반이라니...

나는 생에 처음으로 죽음을 마주했다.




태어난 지 3일 된 아이는 첫 월요일 오전을 수술실에서 보냈다.

산부인과 퇴원 시간이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수술 중인 아이를 두고 아무 연락이 없었다.

50대 50.

담당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휠체어를 타고 신생아중환자실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다섯 시간이 지났다.

수술이 끝났다는 문자가 왔다.

다행이다.

테이블 데스는 일어나지 않았다.

50대 50.

정확히 반으로 갈린 삶과 죽음의 확률에서 아이가 살아났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종양이 사라진 아이 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했다.

나는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두고 산부인과를 퇴원했다.


수혈을 해가며 긴박하게 진행된 수술이었다.

우리나라의 3대 병원이라는 A 병원에서 이토록 큰 수술은 1년에 몇 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지한 내가 너무나 쉽게 생각했던 수술이었다.

아이가 기적처럼 살아났다는 사실을 나는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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