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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Nov 24. 2023

송파구의 금빛 낙엽

생의 기적과 소중함

아이들이 태어난 계절. 

금빛으로 물든 은행잎이 떨어지면

나는 아이들을 낳았던 그 가을로 돌아가 생의 기적과 소중함을 생각한다.




무통주사 부작용으로 경련이 있었고,

쌍태아를 키우느라 커질 대로 커진 자궁은

수축에 엄청난 통증을 불러왔다.

아무리 아파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이가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매일 NICU(신생아 중환자실)를 찾는 것이

나의 산후조리였다.

병원 안내원이 배가 덜 들어간 나를 산부인과 분만장에 데려다준 날도 있었다.

아주 심하게 아픈 아이와

조금 일찍 태어나 불안정한 아이.

두 아이의 면회에 늘 친정엄마가 함께했다.

유독 은행나무가 많았던 송파구의 가로수.

엄마 차를 타고 병원에 갈 때면

금빛 낙엽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나는 기도했다.

1년 뒤, 아이 손을 잡고 저 낙엽 위를 걷게 해달라고.

쉽게 지치고 포기하던 내게

살아야만 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며칠 동안 심각했던 주치의가 일주일 만에 웃었다.

종양과의 싸움에서 이긴 아이는 5주 뒤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일주일을 지내고 패혈증을 만났다.

응급실을 거쳐 다시 입원. 

태어난 지 7주가 된 신생아는 

3주 동안 어린이병동에서 나와 함께했다.

A 병원의 어린이병원 145 병동.

아픈 아이와 엄마들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곳.

아이는 병동에서 가장 어렸지만, 건강한 편이었다.

입원 중 심방중격 결손으로 심장과 외래가 있었다.

시술법도 있고 흔한 질환이라는 의사의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퇴원만 하면 다 끝났다고

그 거대한 종양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패혈증으로 퇴원한 뒤, 안과에서 내사시 판정을 받았다. 

가림치료가 쉽지 않았지만 이 또한 괜찮았다.


나는 어느새 병명을 알고 고칠 수 있는 질환이라면

하나도 무섭지 않은

용감한 엄마가 되어있었다.  




오래된 메일함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O 선생님!

2년 전 10월, 긴박했던 쌍둥이 산모 줄리아입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벌써 두 해가 되었네요.
아직도 가을 겨울이 되면

태아치료센터와 산부인과에서의 기억이 선명해집니다.
수많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크게 아프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제 할 일을 하며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그저 품 안에서 잘 지내다가
잘 태어나, 잘 자고 잘 먹고..
그렇게 알아서 잘 자라는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그렇게 태어나고 자란 것만 같아서...
새삼, 엄마라는 존재가 참으로 위대하게 다가옵니다.
장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기적 같은 탄생과 성장이

제 인생에 많은 것을 가르쳐주네요.

선생님,
기적 같은 삶을 선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도 이 아이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바랄게요.
그 기억으로 산모와 태아들에게

또 다른 기적을 전하는 의사가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ㅡ한 해의 끝자락에 줄리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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