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보험

보험료처럼 살아가기

by 소라움

켜켜이 쌓여가는 하루가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허무함과 무망감 속에서 나는 그저 살아가고 있다.
삶의 작은 기쁨의 자투리들을 그러모아,
두 손에 담고 얼굴을 묻으며 버틴 날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의미를 찾기 어려운 하루의 끝에서,
뜻밖의 작은 기쁨 하나를 발견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가온 다정한 위로.


그것은…… 실비보험.


누군가 그랬다.
"실비보험의 진가는 서른 중반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맞다.
20대 초반, 별 생각 없이 들었던 보험은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수납의 반복이었다.
"언젠가는 쓴다니까…" 하는 말에 그냥 그러려니 넣어두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내 몸이 하나씩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살려줘.”

첫 시작은 어깨였다.
차가 급정거하던 찰나, 아이를 챙기느라 잠시 안전벨트를 풀어두었던 터였다.
앞좌석에 어깨를 부딪혔고, 결국 주사와 충격파 치료 그리고 2개월의 수영 금지라는 처방을 받았다.

매 회 10만 원이 넘는 치료비였지만, 실비보험 덕분에 무사히 감당해낼 수 있었다.
(정형외과들은 실비로 돈을 버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에겐, 아주 오래된 친구가 하나 더 있다.
족저근막염.

뒤꿈치에 뼈가 자랄 만큼, 오랜 시간 동거동락하며 살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내 발을 보며 "이건 50대 발이에요" 하고 혀를 찼고,
또 다른 선생님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이고… 많이 아프셨겠네요”라고 말했다.

만성이 된 통증이라 그냥 동반자처럼 여기며 지내왔는데,
이젠 발이 더 이상 버텨주지 않았다.
앞꿈치까지 통증이 번졌고,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발바닥에 주사를 맞고 충격파 치료를 받으며,
“그동안 내 발을 너무 모른 척했구나…” 하는 반성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퇴근길,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낯선 가벼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토록 하찮고 귀찮게 여겼던 실비보험이
지금 이 순간, 내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가 되어 있는가

정확히는,
"이거 들어두면 좋대"라고 말해주었던 엄마,
그리고 아무 의미도 모른 채 묵묵히 납부를 이어갔던 예전의 내가 대견하고 고맙다.


요즘 나는 줄곧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지금의 나날이 나에게 어떻게 돌아오게 될까.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지하철 플랫폼을 밟으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도,
어쩌면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와 닮아 있는 건 아닐까?


요즘은 모래알같은 기쁨들을 찾아 모으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런건 참 행복한 일이잖아?'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어느 순간에도 기쁨을 찾아내는 내 삶의 방식은

그 동안 차곡 차곡 쌓아둔 내 시간들이 조용히 닦아둔 것이겠지. 오래된 발자국들로 반들하게 윤이난 그 길들이 나를 살려낸다.


조금 벅찬 날들이 이어진다고 해도 언젠가의 나를 위해 무언가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겠구나,하는 위로가 된다.

발이 뜯긴 통증완화인형...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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