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생각들이 싸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할 3단계
전편 Ep 6. 내가 인생을 바꾸는 ‘선택'을 한 방법 (1)에서는 ‘할까, 말까?'라는 고민에 대해 제가 개인적으로 시도한 세 가지 접근법을 나눴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질문에 ‘하자’라는 결정을 내린 후, ‘어디로?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어떻게 고민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UX 디자이너로서 해외에서 커리어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제가 거친 3단계를 공유하려 해요.
UX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전환하려면, 어느 나라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까?
그렇다면 그 나라에서는 어떤 학교에서 석사를 해야 할까?
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를 찾기 위해 떠난 7개월의 나 홀로 세계여행에서 ‘UX 디자인'이라는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UX 디자인으로 커리어 전환을 시도해 볼까, 말까?’라는 질문’에 “시도해 보자"는 답을 내리게 되었을 때 제 여행은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고민할 차례였죠.
먼저, 세계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살고 싶은 나라들을 적어봤어요. (저에게는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싱가포르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의 UX 디자인 관련 대학원 프로그램과 관련 일자리 상황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조사와 고민 끝에 두 나라 - 미국과 싱가포르로 좁혀졌지만, 그 둘 중에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예요.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인생에서 갈팡질팡할 때마다 법륜 스님의 가르침을 찾곤 해요. :) 다음은 법륜스님의 책 <스님의 주례사>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여러분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다면, 어떤 쪽으로 결론을 내든 어차피 반반인 거예요. 여러분이 밤잠을 안 자고 결론을 내리려고 해도 결론이 안 나는 것은 고민할 가치가 없는 거예요. 그만큼 결론이 안 난다는 것은 이해관계가 반반이라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연구해도 이익이 별로 없고, 단박에 결론을 내더라도 손해가 별로 없어요. 이때는 아무쪽으로나 결론을 내려도 됩니다. 다만 어떤 결론을 내든 이익과 손실이 반반이기 때문에 한쪽이 이익을 취하게 되면 다른 쪽이 손실을 감수해야 해요.
그래서 이것은 선택에 따르는 책임의 문제이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법륜 스님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두고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대개 그 선택지들의 이해관계가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무슨 선택을 하든 결과는 비슷하고, 다만 중요한 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하셨어요.
물론 맞는 말이에요. 하나의 선택지가 월등히 좋아 보였다면,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 만큼, 일단 ‘선택지들의 이해관계가 반반인 것'이 정말 맞는지 더 깊이 파고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그 후에도 선택지들의 차이가 미미하다면, 그때 가서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딩동댕'처럼 결정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정을 거쳤어요.
먼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미국'과 ‘싱가포르'로 선택지가 좁혀지기 전에도 폭넓은 조사를 했지만, 이제 선택이 두 가지로 좁혀진 만큼 더 깊이 있는 정보 수집이 가능했죠.
예를 들면, 무시무시한 소문이 무성한 ‘미국 취업 비자'와 관련된 사실들을 검토하기 시작했어요. 취업 비자의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왜 그렇게 어렵다는 건지, 최근 변화는 어떤지, 그리고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최대한 다양한 경로로 조사했어요. 미국 이민국 웹사이트는 물론이고, 한인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 해외 취업 수기, 네이버 지식인까지 다방면에서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중요한 점 1: 객관성 유지하기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인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주관이 있어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비자 정보를 조사하면서 부정적인 사례에만 집중하면 "역시, 이런 사람도 실패했는데 내가 된다고?" 하고 시작도 전에 포기할 수 있어요. 반대로, 긍정적인 사례만 본다면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죠.
중요한 점 2: 타임라인 설정하기
또,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나만의 타임라인을 설정하는 것이에요.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인터넷 검색은 물론 전문가 상담, 관련 기관에 문의하거나 경험자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보를 모으는 데 너무 오래 걸리면 쉽게 지치거나 불안감만 커져서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흐지부지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타임라인’을 정했어요. 서른 전에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 제약을 두고 정보 수집에 2주 이상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객관적인 정보 수집을 마친 후, 저는 두 장의 종이를 준비했어요. 종이를 접었다 편 뒤, 왼쪽에는 장점을, 오른쪽에는 단점을 적었죠. 한 종이엔 ‘미국', 다른 종이엔 ‘싱가포르'라고 크게 적고,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각 칸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단점 중 가장 큰 문제는 취업 비자였어요. 당시(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이민 정책이 강경해져 비자받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었죠. 뉴스에서는 기존 이민자들도 쫓겨나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이 연일 보도되면서, 비자 문제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될 가능성이 커 보였어요.
반면, 미국의 장점은 ‘기회의 땅’이라는 점이었어요. 실력만 있다면 나이, 성별, 배경을 초월해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죠.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요.
한편, 싱가포르의 단점은 UX 디자인 관련 석사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UX 디자인이 아무래도 미국에서 시작해 발전한 분야이다 보니, 싱가포르에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싱가포르의 장점은 취업 비자를 받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점이었어요. 미국에 비해 비자 시스템이 덜 복잡하고, 외국인을 고용하는 회사들이 많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였죠.
이렇게 각 나라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적어나가면서, 좀 더 명확하게 제 선택지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장단점을 쭉 정리해 봤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았어요. 미국도 그렇고, 싱가포르도 그렇고, 장점과 단점이 너무 명확했거든요. 이 장점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건지, 이 단점들이 얼마나 치명적인건지, 그래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각 장단점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깊이 탐구해 보기로 했어요. 이때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가장 큰 단점은 열악한 취업 비자 문제잖아요. 이 단점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 봤죠. 비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정말 ‘out of control’한 영역이잖아요. 조사해 보니 10명 중 9명은 비자를 못 받아 쫓겨나도, 1명은 살아남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그 9명 중 하나가 될지, 아니면 1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 하지만 확률상 9명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너는 너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운빨을 믿고 부딪혀 볼 만한 깡이 있니?”
“너는 설령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져도, 그래도 너가 원하는 걸 시도해 봤기에 후회 없이 살아갈 자신이 있어?”
한편, 미국의 큰 장점은 실력만 있으면 나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기회가 열리는 곳이라는 거죠. 이 장점이 저에게 어떻게 적용될지 생각해 봤어요. 저는 당시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배워 커리어를 전환하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나이나 과거 경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 점은 저에게 엄청나게 큰 플러스 요인이었어요. 나이나 학부 전공, 이전 경력은 제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이런 요소들이 ‘걸림돌’은 될 수 있을지언정, 길을 완전히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하지만 여기에도 전제 조건이 있었어요. '실력만 있으면'이라는 조건이요. 그 실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내가 머지않은 미래에 그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또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있어?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던 고3 때보다도 열심히 살 자신 있어?”
“너는 너 자신을 얼마나 믿어줄 수 있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를 시간 동안 웅크리고 있어야 할 텐데, 너의 선택을 대쪽같이 믿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이렇게 각 장단점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꼼꼼히 분석한 후, 그에 따른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리고 나니,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인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었어요. 그래서 선택지마다 장점 Top 3와 단점 Top 3를 정리하고, 장점은 +5점 만점, 단점은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봤어요.
예를 들어,
미국:
장점 1: +5점
장점 2: +4점
장점 3: +4점
단점 1: -3점
단점 2: -2점
단점 3: -2점
이렇게 점수를 매기면 미국의 총점은 +6점이 되죠. 싱가포르도 동일한 방식으로 점수를 매겨서, 두 나라의 점수를 비교해 보니, 답이 나왔습니다. 최종적으로 제 선택은 미국이었어요.
이제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만큼, 남은 과제는 어떤 학교를 선택할지였어요. 저는 이번에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우선, 새로운 엑셀 파일을 만들고, 국가/도시/학교 이름/학과명/소속학과/기간/신청 마감/자격요건/학비/기타 고려 사항 등을 적었어요. 각종 자료를 찾아가며 표를 채워나갔고,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 vs ‘인지도 높은 학교들’로 좁혀졌습니다.
이번에도 종이 두 장을 꺼내 반을 접고, 각각의 장단점을 적었어요.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 장점:
위치: 실리콘밸리 근처라 UX 디자인 관련 인턴십과 취업에 유리함
학비: 다른 인지도 높은 학교들에 비해 절반 수준
빠른 시작: 3개월 뒤에 바로 석사 과정을 시작할 수 있음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 단점:
커리큘럼과 네트워크: 인지도 높은 학교들에 비해 부족한 커리큘럼, 교수진과 동문 네트워크
취업 경쟁력: 인지도가 낮아 졸업 후 경쟁력이 약할 수 있음
국내 취업: 만약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국내 취업에서도 불리할 수 있음
인지도 높은 학교들 장점:
강한 커리큘럼과 네트워크: 뛰어난 교수진과 체계적인 커리큘럼, 넓은 동문 네트워크
높은 취업 경쟁력: 미국 내외에서 취업 경쟁력이 뛰어남
인지도 높은 학교들 단점:
위치: 대다수가 out of nowhere에 있음
학비: 두 배 이상 비쌈
저에게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의 위치는 엄청난 메리트였어요. 샌프란시스코는 제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도시이자, 7개월 동안 20여 개국을 돌고 나서도 결국 가장 살고 싶었던 도시였으니까요. 게다가 실리콘밸리의 중심이라 UX 디자인 관련 직업을 찾을 기회도 더 많을 것 같았죠.
또한 학비가 비교적 저렴하고, 최대한 빨리 석사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매우 매력적이었어요. 인지도 높은 학교들은 지원 마감이 지나 1년 이상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에 TOEFL/IELTS뿐만 아니라 GRE까지 준비해야 했거든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또 공부를 위한 공부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반면, 아트스쿨은 아직 지원이 가능했고 GRE도 요구하지 않았죠.
물론 그렇게 입학이 쉽고 학비가 낮은 만큼, 프로그램의 질이나 학교 네임밸류, 그리고 미국 내외의 취업 경쟁력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 조사에 의하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실력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 미국과 싱가포르를 비교할 때 했던 중요한 질문을 다시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있어?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던 고3 때보다도 열심히 살 자신 있어?”
“너는 너 자신을 얼마나 믿어줄 수 있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를 시간 동안 웅크리고 있어야 할 텐데, 너의 선택을 대쪽같이 믿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저는 이 질문에 "응"이라고 답할 수 있었고, 각오도 되어 있었어요.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각각의 점수를 매겨본 결과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이 월등히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저는 마침내 최종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UX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전환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아트스쿨'에서 석사 과정을 하기로 결정한 과정입니다. 핵심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아요:
1. 객관적인 정보 수집
2. 각 선택지의 장단점 정리
3. 각 장단점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탐구
이렇게 많은 고민의 과정을 통해 선택을 하게 되면, 힘든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괜찮아, 이미 생각해 본 변수잖아. 그런 상황이 올 거란 걸 알고도 선택했던 거잖아.”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기며, 여전히 왜 이 선택을 했는지를 잊지 않을 수 있죠.
결국 이러한 치열한 과정을 통해 얻은 선택은 우리를 뒤돌아보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아요. 한때 모든 가능성을 고민했던 만큼, 우리가 선택한 것이 최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제는 그 선택이 진정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만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큰 선택을 앞둔 분들에게 제 경험과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는 제가 본격적으로 UX 디자인 세계에 뛰어든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응원 주시면 더욱 힘이 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