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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ug 17. 2023

글 한 줄 읽어도 되는 세상 맞습니까

책 속에서 고등어와 백수가 한 판 고독을 겨루고 있었다. 고독한 백수와 고독한 고등어! 누가 더 고독한가! 아니,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나. 꿈인가? 아니었다. 오독이었다. 고등어를 고독이라고 잘못 읽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때, 그제서야 나는 책에서 눈을 뗐다. 고독도, 백수도,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중간에 '가을에는 고등어 한 토막을 굽고'라는 대목이 있었을 뿐이다. 지끈. 어디서부터 잘못 읽은 것인가. 읽고 있기는 했던가. 두통과 근육통이 동시에 몰려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밖으로 나가 천변을 걸었다. 밤바람은 시원했다. 다리 위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비슷한 존재들이 몇 더 있었라. 그들도 말없이 다리 위에서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저들 중 누군가는 슬프고 누군가는 기쁜가. 누군가는 몽상하고 누군가는 참선하는가. 누군가는 늦여름이고 누군가는 초가을인가. 나는 나의 고독을 반절 접어두고, 그 자리를 타인의 고독으로 채워 보았다. 우리는 고독의 종족. 우리 잘 고독해 봐요. 힘내요 우리. 나는 말없이 서 있는 존재들과 홀로 교감하며, 그들의 고독을 응원했다.


여름마다 긴 열병을 앓는 것 같다. 나를 태어나게 한 이 뜨거운 계절이 나는 괴롭다. 세상을 미친 듯이 들끓게 하던 온도가 기적처럼 꺾이기 시작할 때, 그제서야 나는 시나브로 36.5도로 돌아온다. 은둔 속에서 독서로 버틴 한 철이었다. 그러나 내 괴로움의 근원 또한 독서였다. 나는 '독서하는 나'를 못 견뎌했다.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세상의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뉴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뒤꿈치에 힘을 꽉 주고 있어야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물었다. 별일 없이 글 한 줄 읽어도 되는 세상 맞습니까. 하루종일 이 책 저 책 부유하면서, 산만한 죄책감으로 오독을 일삼았다. 그게 고독인지 고등어인지도 모르고.


마음을 다친 이에게 뉴스는 위험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마음이 채 다 아물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많은 뉴스를 읽은 것 같다. 뉴스 촬영과 편집으로 먹고 살아온 내가, 뉴스 때문에 이토록 흔들리고 있다니. 학교 폭력, 살인 예고, 마약 음료, 실업 급여, 주가 조작, 전세 사기, 경계 경보, 역사 왜곡, 방사능 오염수, 정치 비리, 전쟁 난민, 경제 불황…… 폰을 켜면 슬프고 억울한 이들이 매일매일 작은 화면 속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숱한 새벽, 나는 이들과 함께 울었다. 저 슬픈 가슴 어떡합니까. 저 사람 남은 삶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어쩌라고 이러는 겁니까.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나는 그저 운 좋은 생존자 같았다. 나는 일상을 더욱더 많은 책들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절망을 모르는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책 속에 절망이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책은 나의 약이자 독이었다.



누군가에겐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인 이 계절, 여름. 청춘이 한바탕 지나간 사람들도 여름이 오면 다시 소년이 되고 소녀가 된다. 소년들과 소녀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뜨거운 해변을, 빛나는 고래처럼 뛰어다닌다.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존재의 살아있음을 만끽한다. 뛰어다니는 존재들은 아름답다. 우리는 모두 그 천진난만함을 사랑한다. 그러니 이 여름, 미망한 마음으로도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온 자들의 마음 다치게 하지 말아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더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여름이 식어가고 있다. 나는 책 속에 웅크리고 앉아 여름의 일루전이 사리지기를 기다려 왔다. 이런 사람도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가장 고독하게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모든 것이 앙상해지고 메말라 가는 가을과 겨울에 더욱 풍성한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밤, 이런 나도 아주 잠깐 꿈을 꾸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다리 위에서, 열기가 식어가는 계절 속에서, 고독 대신 사랑을 위해, 절망 대신 삶을 위해, 아마도…… 기도했던가. 꿈결처럼 속은 것인가. 소녀여, 꿈꾸는 고등어여……


그리고, 다시 잊어버렸다. 내려왔다. 그곳에 머무른 적 없다는 듯이.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리겠다는 게 아니다. 뉴스를 들으면서 나의 일상도 이기적으로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울려면, 먼저 내 울음을 그쳐야 한다. 그들을 위해 화내려면, 먼저 내 분노를 그쳐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것이다, 늦여름인지 초가을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그래도 답은 없다, 늦여름이기도 하고 초가을이기도 것처럼.


늦여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일정을 바삐 채우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리, 내 안에는 이미 가을이 도착해 있는 걸. 나 같은 존재들 때문에 가을은 더 빨리 찾아오는 건지도. 먼저 가 있을게요. 소년이여, 소녀여, 어서 오세요.



*치욕스럽다는 이유로 더 소중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치욕스럽다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더 잃어서는 안 된다.

-유병록, <안간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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