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습니다.
안녕히 개새야!
안녕히 개새야, '안녕히 계세요'의 미묘한 변형형. 소심하고 은밀하게 발음하기로 했던 우리들의 지키지 못한 약속. 사탕처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씹곤 했던 우리들의 추억이자 은어.
퇴사한 날 밤에 술에 취해 글을 썼는데, 취기 절정의 순간 처음부터 읽어보니 갑자기 한줄기 제정신이 번쩍 내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못 볼 거라도 본 양 던져버렸다. 아, 순수한 미치광이가 되기에는 여전히 2%의 광기가 부족해. 미치고 싶어도 미쳐지지 않는 슬픔, 당신도 아시나요. 바로 그 2% 때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날은 아무 어깨나 끌어안고 싶은 날이었다.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속이 썩 가볍지는 못했다. 마지막 퇴근 후 아무 일정도 잡지 않은 채 자취방으로 돌아와 딸깍, 하고 불을 켜는 순간, 유독 내 삶이 낯설고 쓸쓸했다. 늘 그래왔으면서 새삼스럽게 고독했다. 아시다시피 삶은 그런 날일수록 우리를 철저히 고립시킨다. 우리, 아니 사실은, 나를. 침대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데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시야가 아득해졌다. 큭, 산다는 건 이렇게나 고독한 것. 방에는 산만한 도시 소음과 함께 슬픔인지 막막함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올이 떠 다녔다. 순간 침묵과 눈이 마주쳤다. 무심한 침묵에게 손을 뻗었다. 끌어안고 싶었다. 내쪽으로 당기고 싶었다. 침묵마저…… 그러나 침묵마저 내게서 돌아서던, 참 너무한 오후. 떠다니는 감정들을 바라보다 잠깐 잠들었다. 그 희망 없는 단잠만이 내게 유의미한 퇴사 선물이었다.
어제, 수많은 얼굴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돌아섰다. 달라진 건 없었고 해방도 없었다. 마지막 퇴근길은 다만 더 이상 이 세상에 속지 않을 거라는, 치기로 얼룩진 다짐뿐이었다. 미래에는 또 어떤 절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삶을 살아가는 한 또 만날 것이다. 더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안녕은 끝인사가 아니다, 안녕, 거기에 잠시만 안녕히 개새라.
시간이 흐르면 몇몇 개인에 대한 원망은 식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회사가 그래야 돌아간다는데, 그들도 어찌하랴. 아주 약간 더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우리 모두 대도시의 노예 아닌가. 당신들도 똑같잖아. 이 대도시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잖아.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 믿고 싶다. 그러니 당신들도 최소한 내 탓을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부디 평안하시라.
저녁에 모든 단톡방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동안 병적으로 맞춰놨던 모든 새벽 알람을 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세상 속에서 사계절 발버둥 친 흔적들이 일상 여기저기에 묻어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 간단한 말이 차마 나오지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상으로부터 조용히 로그아웃하는 것뿐이었다. 아픈 일을 겪는다고 누구나 성장하는 건 아니다. 아니, 대부분은 겨우 들었던 철도 리셋된다. 고생 많았다,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면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내가 아니다. 그건 거짓말이다.
다음날, 나는 백수의 신분으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어제까진 직장인이고 오늘부터는 백수라 한다. 어제까지는 저것, 오늘부터는 이것. 이런 것들 우습지 않은가. 픽, 의미 부여 그만하자.
나는 그냥 나. 무엇을 상실했든, 무엇에 상심했든.
그냥 쓰기. 무엇을 쓰든, 왜 쓰든.
그냥 살기. 삶을 궁금해하지 말고, 탓하지도 말고.
이렇게 앉아 있자니 내가 이전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시간, 답도 없는 질문들만 읊조리며 목하 빈 시간을 채워 본다. 그냥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