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선 숲에서 나무 몇 그루가 쓰러진다. 그러면 숲 지붕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으로 음지이던 땅에 햇살이 비춘다. 빛 조건이 좋아지면 땅속에 숨어있던 종자들이 발아하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온 새로운 종자들이 자라기도 한다. 이런 공간을 가리켜 ‘숲 틈(forest gap)’이라 부른다.
산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수풀이 우거진 산에 가게 되면 숲 틈이 어디에 있나 찾으려 두리번거린다. 언제가 숲해설가를 취재하면서 숲 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숲 틈이 생기고, 그 공간이 나무가 아닌 다른 식물들로 채워지는 과정은 숲에 다양한 종들이 공존하게 해 주고 숲의 생명력을 지켜준다고 한다. 우리 눈에는 비어 보이는 공간이 실은 숲에 더 풍부한 활기를 불어넣는 채움의 공간이다.
숲 틈의 역할은 회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와도 닮았다. 회화에서 여백이란 사물이나 대상을 그려 넣어야 할 지면을 화가가 의도해서 비워두거나 생략한 공간을 말한다. 여백은 화면 속 그려진 대상에 보다 집중하게 만들고, 비어둔 자리는 그림을 보는 이가 채울 수 있는 상상의 여지를 준다. 비움을 통해 화폭 너머까지 그림을 그리는 효과를 얻는다. 여백의 미를 잘 구현하는 화가들은, 화폭에 대상을 배치하는 구성력과 표현력이 과감하고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글쓰기에도 틈과 여백을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방송 초년생일 때, 한 선배가 서툰 내 원고를 읽고 무심코 던진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초짜일수록 원고 빈칸을 채우기 바쁘고, 고수일수록 덜어내기 바쁘지.”
그땐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방송작가로서 경력이 쌓이면서 선배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신입 작가일수록 원고 빈칸을 모두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조사하거나 알고 있는 정보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반면, 경력 작가는 표현은 간결하게, 정보는 중요한 핵심만 전달해야 시청자들에게 보다 잘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애써 써 놓은 글들을 줄이고, 또 줄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한다.
방송 원고는 영상이나 인터뷰, 현장음이 주인공이다. 방송작가가 글을 쓴다는 말은, 영상과 인터뷰, 현장음이라는 주요 요소들을 지면에 먼저 기록하고 나머지 공간을 자신이 쓴 문장으로 채운다는 뜻이다. 실제 방송에서 작가가 창작한 문장은 내레이션이나 진행자의 멘트로 만날 수 있다.
방송 현장에서 쓰는 속어 중에 “마가 뜬다”는 표현이 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간 즉, 오디오가 비어있는 순간을 말한다. 영어식으로 ‘블랭크(blank)를 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라디오의 경우 7초 이상 진행자 멘트나 음악이 나가지 않고 침묵이 계속되면 방송사고가 된다. 그런데도 원고를 쓸 때, 쉬어가는 틈이나 여백을 마련해야 할까?
방송 글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상황이나 배경을 설명하고 둘째, 정보를 전달하며 셋째,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석을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노인이 배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장면이 있다. 신입 작가는 “바다 위를 달리는 크루즈선에서 일흔 살의 일본인 노리코 씨가 책을 읽고 있다”라고 그림을 묘사하는 원고를 쓰기 쉽다. 그러나 경력 작가라면 호텔처럼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크루즈선이라는 상황을 설명하거나 일본에서는 크루즈선을 타고 황혼 여행을 타는 것이 노년층의 문화라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는 크루즈 여행이 평생소원이던 노리코 씨에게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을 덧붙일 수도 있다.
만약 이 영상이 방송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를 장면 자체가 함축하고 있거나 흘러나오는 음악 또는 주인공의 표정이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이미 표현하고 있다면, 그때는 ‘블랭크(blank)’를 메울 필요 없이 그냥 두는 편이 낫다. 제작진의 의도를 밝히지 않고 침묵하여, 시청자가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여백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도 원고의 일부분이다. 아니, 침묵의 시간이 오히려 더 다양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할 수 있는 기회이다. 보는 이가 화면 속 인물과 상황에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사유의 흐름을 확장시킬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 앞에 놓인 새하얀 지면을 모두 글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독자의 편에서 생각해 보자. 쉼표나 마침표 없이 혹은 문단의 구분 없이 쭉 이어지는 글은 숨이 찬다. 과시하듯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쏟아붓고, 미사여구나 감정의 표현이 과한 글들을 만나면 독자들을 질리게 할 수 있다.
중요한 말을 하고 싶을수록 작가의 욕심과 열정을 오히려 덜어내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자. 당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이미지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시청자에게 최소한의 정보와 설명, 의미만을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자. 결국, 작가의 실력은 글을 넘치게 쓰고 싶은 욕구를 얼마나 절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술은 특히 사진이나 그림이 주가 되는 책 집필이나 SNS 글쓰기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다. 간혹, 사진이나 그림이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겠다는 불안감에 이미지를 글로 한 번 더 읊어주거나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는 글들을 만난다. 이미지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수식어를 붙이거나 중언부언 설명이 많아지면 사진이나 그림에 독자들의 시선이 머물 기회를 빼앗게 된다.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면, 그 작품은 더 이상 작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처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읽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다양해질 수 있고 그 속에서 작품의 생명력은 강해진다. 숲에서 그러하듯, 글에서도 적절한 틈과 여백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비워두었기에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