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일으킨 연대감
코로나19 후 엄마의 일상을 삼켜버린 감정은 두려움과 외로움이었다.
평생 자신의 울타리였다고 믿었던 동네를 떠나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전부이자 자랑이던 자식들이 자가격리를 하고, 코로나19 검사를 연이어 받으며 하던 일에 피해를 입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덩굴처럼 뻗어나갔다.
낮에는 입안이 까끌거려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하니 피로가 쌓이고 살이 빠졌다. 시간은 엄마에게만 더디 흘러가는 것 같았고 이 세상에 우두커니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몇 달 동안 엄마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일상에 큰 변화를 만나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6년보다 팬데믹 상황이 한창인 2020년에 병원을 찾은 우울증 환자가 30퍼센트나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 ‘코로나 블루’라는 말도 생겨났다.
의료전문가들은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려면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로 우선은 일상의 리듬을 되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 과도한 공포나 불안이 생길 수 있으니 오히려 뉴스에서 멀어지라고 했다. 무엇보다 주변에 자신의 코로나19 확진 경험을, 그리고 우울한 상태를 알려서 도움이나 치료를 받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나부터도 세상을 향해 엄마가 코로나19 회복자라고,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선뜻 외칠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엄마가 코로나19 확진자였다는 사실을 전하지 못한 지인들이 있다. 친하다면서 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공감받지 못하거나 나를 피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주위에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동생이나 후배들이 많다. 기자나 PD, 교사처럼 팬데믹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대면해야 하는 직업군들이 가까이에 있다. 그들에게 괜한 불안감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서야 우리 가족에게도 몇 개월 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한동안 코로나19에 걸린 유명인의 기사에 ‘고백’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백(告白)’은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한다는 뜻이다. ‘정치인의 코로나 19 감염 고백’, ‘할리우드 여배우 코로나 후유증 고백’, ‘아이돌 가수 코로나19로 우울감 고백’ 같은 기사들이 연이어 나왔다. 기사 제목들은 대중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는 사람도 코로나19 확진자라고 알리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기사를 읽고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오래도록 엄마를 괴롭히는 죄책감을, 엄마를 바라보며 가족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을 이해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였다. 엄마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기 가도를 달리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줄줄이 코로나19에 걸리자 엄마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몇 주 후 그들이 다시 나와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자 엄마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혼자 싸운다고 느끼던 엄마가 누군가와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연결의 마음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무대를 보며 조금씩 미소와 활력을 찾아갔다.
우울증에 빠지면 어둡고 깊은 터널 속을 혼자 걷는 것처럼 고립감을 느낀다고 한다. 한동안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엄마가 가족이나 친구보다 텔레비전 속 가수들에게 더 위안을 받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이겨낼 수 있다는 격려와 힘내라는 응원이 아니었다. 나도 당신처럼 힘들었다고, 지금 느끼는 불안과 고독이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은밀한 고백과 공감의 끄덕임이었다. 어디에선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 동행하고 있다는 연대감이 엄마에게는 캄캄한 터널 속 희망의 빛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