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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Dec 12. 2017

영업 비밀이 담긴 방송작가의 수첩

섭외의 달인이 되는 비법을 전수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숨은 맛집에는 저마다 숨겨진 비법이 있다. 그리고 그 비법은 ‘며느리도 모르는’ 영업 비밀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숨은 맛집이라는 매력적인 아이템을 놓칠 방송 제작진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촬영 허가를 받아내면, 그 이후에는 요리의 달인들도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나 만드는 과정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들이 대를 이어 전하는 비법의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 재료를 넣는 타이밍이나 비율에 따라 맛이 좌우될 때가 많다. 즉,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해도 그것을 ‘언제’,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이다.

방송 스토리텔러들에게도 저마다의 숨겨진 비법이 있다. ‘무한도전’ 제작진은 웃음이라는 코드 속에 시의성 있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절묘하게 녹여내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나영석 PD와 그의 팀은 노출이 적었던 출연자나 쵤영지를 심미안으로 발굴하여 호감을 끌어내는 능력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라 하겠다.

 
방송작가였던 나도 동료들에게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나만의 비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늘 보물처럼 품에 지니고 다녔던 ‘작가 수첩’ 속에 담겨있었다. 도대체 그 수첩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현역을 떠나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일단 나의 작가 수첩을 펼치면 섹션이 구분되어 있는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각 분야별로 섭외 대상이 되는 전문가의 ‘리스트’를 나만의 시각으로 구분해 놓았다. 만약 내가 라디오 경제정보 프로그램의 구성을 맡게 되었다고 하자. 그럼 먼저, 경제 분야 안에서도 보다 세분화하여 항목을 나누고 도움받을 전문가들을 정리하는 식이다.

가령, 학계나 법조계, 시민단체 등으로 나눌 수도 있고 해외 경제나 국내 경제 등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의 정보 및 자료를 수집하는 구체적 방법으로는 첫째, 신문이나 잡지, 다른 방송 등에 자주 노출되는 전문가들을 찾아본다. 전문가를 찾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만 이미 잘 알려진 출연자들이 많다는 것이 단점이다.

둘째, 관련 단체에 연락해 추천을 받거나 믿을만한 지인들에게 소개를 받아 숨은 전문가들을 수소문할 수도 있다. 전문가가 추천한 전문가라 신뢰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지만, 가끔 관련 단체에서 단체장을 추천하거나 지인 역시 친한 사람을 소개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셋째, 작가가 평소 관련 논문이나 사설, 칼럼 등을 관심 있게 읽으며 학문적 견해나 논리성 등을 갖춘 전문가를 직접 판단하여 리스트에 올리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전문가의 목록은 방송작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리스트를 정리한 것만으론 '비법'이라 말할 수 없다.

나만의 리스트에는 전문가들의 이름 옆에 비밀스러운 표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표식에 따라 이들을 방송에서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 단번에 결정할 수 있었다. 일례로, 별표는 전문가로서 식견이나 수집한 자료, 사례 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방송에 적합한 외형이나 목소리까지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지식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방송에 적합하다는 말은, 꼭 외모가 수려하거나 아나운서처럼 표준어로 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편안한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전해줄 수 있으면 된다. 가끔 전문가가 쓴 글에 감탄하며 섭외를 했는데, 막상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출연을 부탁했을 때, 심하게 긴장하여 카메라를 보지 못하거나 말을 더듬어서 시청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정보나 지식의 1/10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표 출연자들은 방송의 형식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언제든 신뢰도 높은 방송을 만들어주는 분들이다.

동그라미 표식은 이론적 배경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는 전달 능력이 탁월하여 시청자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이런 분들은 방송 출연에 의욕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지닌 정보가 많지 않더라도, 미리 아이템을 알려주면 따로 공부해 와서 마치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분야처럼 얘기를 해주기에 방송 작가들에겐 안전장치와 같은 인물들이다.

세모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이지만 방송을 싫어하거나 방송 공포증을 가지고 있어 섭외나 방송 준비에 공을 들여야 하는 분들이다. 세모 유형의 전문가를 섭외하기 위해서는 평소 친분을 쌓아 제작진을 편하게 여기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방송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면, 전문가가 편안해하는 공간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녹화 방송을 지향하는 것이 좋다.

이 외에도 전문가들이 가진 특징을 유형화하여 나만의 기호나 도형으로 이름 옆에 보기 쉽게 정리해두면, 기획 과정에서부터 남들보다 빨리 출연자들을 섭외할 수 있고, 섭외를 잘못해서 생기는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방송작가의 수첩은 자신만의 노하우와 인맥이 담긴 비법 노트다.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수첩 덕분에, 나는 오랜 시간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넘나들며 시사·정보 프로그램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빨리 프로그램에 도움을 줄 인적 자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구성작가로서 나의 경쟁력이었던 셈이다. 다른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섭외에 난항을 겪을 때면 나에게 종종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으니 말이다.

스토리텔링 전 과정을 완벽히 잘 해내는 작가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계에 있다 보니 그런 빈틈없는 작가가 만든 콘텐츠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자신만의 시선이나 노하우가 있는 작가가 만든 콘텐츠가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열한 방송 현장에서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면, 스스로를 객관적 시점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인의 능력치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점을 발견한다면, 이 지점을 정교하게 다듬어 자신만의 비법으로 갈고닦아보면 좋을 것이다. 그럼 언젠가는 숨은 맛집의  달인처럼, 작은 차이로 큰 감동을 선사하는 진정한 고수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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