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믿을만한 맛집인가!
내 동생은 셰프다.
나의 주관적이고 사심 가득한 기준에 따르면, 이태리 요리에 있어서 동생의 솜씨는 탁월하다. 동생이 만들어준 토마토 파스타와 스테이크, 화덕 피자는 내가 먹어본 요리 중 단연 최고다.
그런 동생이 수년 전, 자기 이름을 건 첫 식당을 개업했다. 당시만 해도 비싸게 여겨지던 파스타를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그러나 재료는 최상으로 써서 제대로 팔아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으로 작은 식당을 열었다. 큰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 시절 만들던 음식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에, 동생도 나도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음식 장사가 맛으로만 승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매상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고 단골도 생겼지만, 비싼 권리금과 월세를 빼고 나면 동생 손에 떨어지는 순수익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 동생에게 거절하기 힘든 제의가 들어왔다. 500만 원만 내면 방송에 동생의 가게를 맛집으로 소개해주고, ‘TV에 출연한 집’ 임을 증명하는 각종 사진과 증명판을 가게 곳곳에 붙여준다는 것이었다. 마침 앞집이 얼마 전 방송에 소개되어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동생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제안을 거절했다.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면 손님들이 저절로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듯했다. 방송의 힘보다 젊은 셰프의 정성과 열정으로 승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가게는 안타깝게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만 했다.
얼마 전, 즐겨보는 ‘수요 미식회’에서 프로그램 마지막에 자막이 흘러나왔다. 내용인즉슨, ‘수요 미식회’를 사칭하여 금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제작진들은 절대 금품을 받고 식당을 선정하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도 함께 실려 있었다.
몇 년 사이 맛집이나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풍토가 많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저런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하긴, 아직 동생 사례처럼 돈을 내면 방송의 작은 꼭지에 실어준다는 사례가 극히 일부이지만 방송가에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눈이 워낙 날카로워져서 이제 그런 사기 행각도 쉽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얼마나 특이한 음식을 소개하느냐?’였다. 그래서 방송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평범함을 거부한, 그야말로 이색적인 음식들로 넘쳐났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시각화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란 말을 방송 프로그램들은 철저히 실행에 옮겼다.
‘옛날 방송작가’였던 나도,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매주 좀 더 차별화된 식당, 뭔가 때깔이 좋은 요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양심 고백을 하자면, 당시 음식점을 소개한다고 돈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소개했던 음식이나 식당들이 추천할만한 곳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방송 주제에 따라 끼워 맞추기식 섭외를 했던 적도 많았다.
만약, 이번 주 주제를 녹차로 잡았다면, 녹차 잎으로 고기를 삶는다는 수육 집, 녹차로 면을 뽑거나 국물을 내는 국숫집, 녹차가루를 모든 메뉴에 섞는 녹차요리 전문점…… 식으로 섭외를 했다. 그런데 이때 진짜 맛집으로 꼽히는 식당들은 따로 홍보할 필요가 없다며 귀찮아하거나 오히려 방송에 나오는 것을 거부하고 기피하였다. 결국 한주 방송을 만들기에 급급했던 제작진과 홍보가 시급한 음식점의 욕망이 만나 ‘보기에만 좋은 음식들’이 방송을 탔고, 이를 맛본 시청자들의 실망 섞인 목소리가 프로그램 게시판을 도배하곤 했다.
하지만 2018년 방송 제작 환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적어도 맛집이나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그러하다. 이는 달라진 스토리텔링 전략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맛집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얼마나 믿을만한 음식을 소개하느냐?’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곳곳에 시청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신뢰의 장치들을 구성해놓고 있다. 앞서 언급한 ‘수요 미식회’의 경우, 1차로 믿을만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맛집들을 선정해 음식 칼럼니스트나 유명 셰프, 소문난 연예인 미식가들이 직접 방문한 후, 스튜디오에서 음식에 대한 솔직한 품평을 한다.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달인으로 검증받은 맛의 고수들이 신분을 숨긴 채 식당을 방문해 그 음식을 평가하고 비법을 묻는다.
이 외에도 음식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 택시기사나 파워블로거와 같이 ‘진짜 맛집’을 안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직접 나서서 식당을 추천해주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요약하자면, 방송에서 소개하는 요리나 식당들이 맛은 물론이고, 재료나 가격, 서비스에서도 믿을만한가를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 보여주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방송가에서는 예전에 비해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구성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청자들이 웬만해서는 방송 프로그램이 보장하는 ‘맛’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방송 스토리텔러로서 치러야 할 당연한 고단함이 아닐까? 그동안 나를 포함해 많은 방송국 사람들이 음식 이야기 역시 진정성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직무를 게을리한 탓이라는 반성과 함께 말이다.
현재 나는 방송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과거,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소개하면서 나의 자세가 얼마나 게으르고 안일했던가를 매주 반성하고 있다. 친정 동네에 있는 한 식당에 십여 년 전 내가 제작한 프로그램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 식당은 가족들과 직접 방문해본 결과, 맛이 없고 청결하지 못해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 식당이 어떻게 십 년 넘게 영업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방송에서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라는 게 확실하기에 매주 그 앞을 지날 때면 얼굴이 붉어진다. 혹시 지금도 저 간판 속 사진을 보고 음식점을 찾는 손님이 있지 않을까 양심이 화끈거린다.
맛집 프로그램에 얽힌 쓰디쓴 추억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 알았다면, 그때 좀 더 고심해서 스토리텔링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뿐이다. 못난 선배의 실수담을 듣고 부디 후배 작가들은 이런 실패를 경험하지 않길 바란다.
참, 내 동생은 지금 수제 맥주집을 운영하고 있다. 수제 맥주를 팔면서 특별 메뉴로 자신이 선보이고 싶은 그날의 요리를 자유롭게 정해 안주로 내놓는다. 다행히 입소문이 나서, 한 대학가 앞에서 꽤 유명한 가게가 되었다. 요즘 같이 방송에서 ‘신뢰’가 주요 덕목이 된 시기에 다시 파스타집을 낸다면, 이제는 방송국에서 절로 찾아오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순전히 방송작가가 아닌, 셰프의 누나로서 가지는 주관적 의견이고 사심 가득한 판단이라 동생을 유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