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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Feb 27. 2018

불가항력 상황에 방송작가가 대처하는 법

현장의 변수는 언제나 존재한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린 이들이 많겠지만 야외 촬영이 잦은 방송계야말로, 따뜻한 봄바람을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장수 프로그램 <6시 내고향>도 그 중 하나다.


<6시 내고향> 작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12월에서 2월 사이다. 농한기라 비닐하우스가 아니면 수확을 기대할 수도 없고 풍랑과 수온 때문에 바다에서의 어획 작업도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템 고갈의 시기다.


 이맘때 <6시 내고향>을 보고 있으면, 십수 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불안함과 조바심이 느껴져 맘 편히 시청하기가 힘들다. 그 시절 아이템이 없어 느꼈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던지, 방송일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도 뭔가 큰 일을 앞두면, <6시 내고향> 촬영이 펑크 나는 꿈을 꿀 정도이다.


<6시 내고향> 촬영 중에서도 특히 바다 작업을 나가는 날이면 초조함은 더 커진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풍량을 체크하고, 강수확률을 확인해야 한다. 한 번은 부산 가덕도의 명물 '숭어잡이' 촬영을 나가기 위해 PD와 작가뿐 아니라 카메라팀까지 몇 주에 걸쳐 준비를 하고 그 전날 촬영지 인근에서 숙박까지 하며 대기했지만, 결국 태풍주의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촬영을 접어야 했다.  


그런 비상 시기엔 <6시 내고향> 작가로서의 경력에 따라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고수인 방송작가들의 비법은 평소에 각 지역의 이장님, 부녀회장님, 해녀회장님 같은 농촌계, 어촌계의 '허브(hub)'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촬영 펑크 시 바로 전화를 걸어 손두부 만들기를 세팅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어느 집에서 오늘 무슨 수확을 하는지, 재미있특별한 사연 있는 이웃이 있는지 정보통을 총 가동해야 한다.


15년이 넘게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6시 내고향>을 꼽는다.

일, 이년을 꼬박 공들여 5부작 다큐멘터리도 만들어봤고, 방송을 내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을 받으며 시사 다큐멘터리도 제작했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쉴 수 없고, 명절 때는 남들보다 더 바빴던 라디오 데일리 프로그램도 써봤다. 하지만 <6시 내고향>이야말로 하늘이 허락해야 촬영을 할 수 있는 아이템들로 가득 찼기에 '불가항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추억이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얘기하라면, 그 역시 <6시 내고향>이다. 농어촌의 많은 어르신들에게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작가가 얼마나 어리고 미숙하게 보였을까? 그래서 현지 사정을 모르는 작가에게 전화 호통을 거나, 촬영장에서 버럭 화를 기도 하셨지만 막상 촬영이 끝나고 정이 쌓이면, 누구보다 다정해져 고향에 내려온 자식을 챙겨주듯 꾸러미마다 수확물을 챙겨주시곤 했다. 그래서 '인정'에 대해, '인연'의 귀함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고 깨달은 시절이다.


이제 곧 3월이니, 방송 제작진들은 마음 놓고 산으로, 들로 카메라를 들고나갈 것이다. 나들이를 나선 시청자들을 따라, 또는 나들이를 가지 못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제작진들 역시, 봄이 찾아오는 생생한 현장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중계방송’이다.


중계방송은 현장의 모습이나 행사를 청취자나 시청자가 실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방송하는 포맷을 말한다. 간단는 기상 캐스터들이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원에서 날씨 중계를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늘 답답한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던 아침 정보 프로그램들이 자연을 세트 삼아 야외에서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 축제 특집 방송을 준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축제를 찾은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방송으로 이뤄지는 중계방송의 스토리텔링에서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방송 전 현장 답사는 필수다.

생방송은 녹화 방송처럼 잘못되면 끊어가거나 편집할 수가 없다. 그 시각, 그 장소의 모습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서 가감 없이 전달되는 방송이다. 사실 매주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준비할 경우, 매번 방송작가가 촬영 현장이나 녹화 현장을 답사하기란 녹녹지가 않다. PD나 카메라 감독 등이 현장을 둘러볼 시간에 방송작가들은 섭외나 자료조사 등 다른 사전 준비들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생방송 중계가 잡힌 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생방송으로 현장을 연결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그곳의 정취와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작가도 중계할 장소를 직접 찾아가 방송에 꼭 소개되어야 할 눈에 띄는 특징이 무엇인지 가늠하고, 주위의 색감이나 지형지물까지 꼼꼼히 체크하여 동행하지 못한 스태프들과 공유해야 한다. 또한 직접 오감으로 체험한 현장의 느낌은 방송작가들에게 나중에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으로 대본을 쓸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봄꽃 축제 현장을 중계한다면, 현장을 다녀오지 못한 방송작가는 그 지역만의 미묘한 특징을 잡아내지 못할 테고, 결국 그가 쓴 멘트는 어느 봄꽃 축제에서 사용해도 무난한, 특색 없는 대본을 쓸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 돌발 변수를 고려한 글쓰기가 필요하다.

현장 답사를 아무리 철저히 했다고 해도 녹화가 아닌, 현장에서 직접 진행하는 중계방송은 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 일단, 그 날의 날씨가 최대의 변수가 된다. 기상 정보만 믿었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강풍이 출연자들과 카메라를 사정없이 흔들어댈 수도 있다. 진행자나 출연자가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일도 생길 수 있고, 리허설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생방송에 들어가면 현장 연결이 안 되거나 오디오 사고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장 중계방송을 준비할 때 우산과 같은 소품은 필수고, 혹시 현장이 매끄럽지 않을 때 바로 틀 수 있는 브릿지 영상이나 관련 VCR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방송에서 중요한 것이 시간 체크이다. 리허설이나 원고 리딩을 했다고 해도, 현장의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준비한 멘트가 모자랄 수도 있고, 꼭 해야 하는 멘트를 다 맺지도 못하고 방송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현장 멘트로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작가는 세심하게 대본을 작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순발력 있는 MC와 출연자가 필요하다.

MC는 ‘Master of Ceremonies'의 약자이다. 방송을 이끄는 주인이자 선장으로서 모든 프로그램에서 MC의 역할이 중요하겠으나, 생방송 중계방송에서 MC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생방송 장소를 미처 답사하지 못한 작가가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대본을 썼다고 해도 베테랑 MC들은 준비된 대본 사이에 적절한 현장 분위기를 섞어 생동감 있는 방송을 만든다. 날씨나 기술 오류와 같은 변수에도 순발력 있는 MC들은 차분하게 위기를 대처해나가며 프로그램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얼마전 <무한도전>에선 기상캐스터의 현장 중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체험한 바 있다.


더불어 박진감 있는 진행을 위해서는 MC와 더불어 리포터나 출연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나에게는 생방송 중계 방송하면 떠오르는 한 명의 리포터가 있다. 십여  년 전, 부산에서 열리는 봄축제 중 ‘대변 멸치축제’를 중계하게 되었다.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멸치털이’ 행사다. 엄지손가락만 한 멸치들을 그물 한가득 잡아와 여러 명이 그물을 맞잡고 장단에 맞추어 일정하게 그물을 턴다. 리포터는 멸치털이 모습을 소개하고, 멸치털이를 하고 있는 어부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현장답사는 물론이고 리허설까지 꼼꼼하게 마쳤다. 그런데 멸치털이가 시작되자 생각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카메라가 돌자 어부들이 평소보다 더 격렬하게 그물을 털었고 멸치들이 날아와 리포터의 얼굴과 몸에 붙기 시작한 것이다. 온 얼굴에 멸치의 잔해들이 묻는 와중에도 웃으면서 멸치의 싱싱함과 어부들의 신명남을 중계하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아름다운 진행자이자 탁월했던 섭외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지금 능력 있는 쇼핑호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텔레비전(television)'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곳에 가서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텔레비전이 가진 매력이다.


시그널 음악만 들어도 무슨 방송인지 전 국민이 다 아는 <6시 내고향>을 비롯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중계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특정 현장의 생생함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의 활기를 그대로 전하는 스토리텔링을 위 방송작가들은 오늘도, 고단한 준비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숨 막히는 생방송의 긴장감을 즐기며 일하고 있다. 지금도 하늘이 허락한 방송들을 만들기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혹은 촬영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방송작가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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