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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maPD Dec 07. 2024

닥치고 출근

마음이 어지럽고 기분이 다운될수록 묵묵히

 평소에 뉴스를 보지 않는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지만, 가끔 너무 무식해서 무안할 때가 있긴 하다. 아이들에게 '모른다는 것은 멋진 거야'라고 했지만, 솔직히 스스로가 멋져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별 불편함은 없었으니까 무관심한 짐승으로 하루하루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는데, 뉴스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남편과 하이볼을 한 잔씩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톡이 몰려왔다. 만우절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날 일찍 잠들지 않았던 많은 국민들이 그러했듯이, TV를 켜고 마음을 졸이며 여의도 상황을 지켜보았다. 누구 하나라도 끌려가듯 잡혀갈까 봐, 앳되어 보이는 군인 청년들도 행여 다칠까 봐, 결국 뜻을 모으지 못하고 어두운 아침이 밝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


 뉴스는 계속 쌓인다. 심한 감기 몸살을 앓은 것처럼 몸이 쑤시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할 일은 태산인데, 마음의 혼탁함으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뭐라도 쓰면 속이 좀 후련할까? 글을 쓰고 싶지만,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랐다. 정말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마음은 타는데, 붓을 드는 깜냥이 되질 못했다.   



 나는 오늘 홈쇼핑 이야기를 연재하는 날이다. 채널 사이사이 홈쇼핑에선 여전히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싱글벙글 정성껏 판매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방송을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브런치북 연재일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그 결심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들이 무슨 가치가 있나?  


 "다 시국선언문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동기 작가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 대단한 글을 쓸 주제도 못되지만, 또 마음이 갑갑해 글을 못쓰겠다고 하는 것도 내 주제에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냥 나는 내 분수에 맞는 생각과 느낌으로 써보면 되는 게 아닐까? 너무 많은 근심과 걱정은 되려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그냥 쓰자. 뭐라도 쓰자.


 읽어야 할 분량의 책을 읽고, 해야 할 만큼의 운동을 하고, 약속된 글이 있다면 써 내려가는 동기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런 건 지도 모른다. 여느 때와 같이 밥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빨래가 밀리지 않도록 세탁기를 돌리고, 유리창은 못 닦더라도 식탁은 닦아두는 일.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는 일.  


 환율과 주식이 날뛰어도 멘털 털리지 않고, 내가 팔아야 하는 상품에 집중하는 일. 소비가 위축되어 행여 협력사에 타격이 가지 않도록 더 꼼꼼히 방송 준비를 한다. 울적한 고객들에게 선물이 될 만한 요소를 찾아보고, 필요한 단 한 분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포인트를 잘 전달해보자. 내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으로 근심하는 시간의 자리를 바로 채워야 할 것이다.


 내가 괴로웠던 건 그동안의 편안했던 무지를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뭘 쓰든 이제 쓰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다는 무게가 느껴진다. 모르는 게 부끄럽지는 않지만, 꼭 알아야 하는 게 있다면 절대 외면하지는 말자고.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갑갑해와도 시선을 돌리진 말고 직시하자고. 기운이 없다고 쓰러져있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휘둘리지 말고, 곧은 오늘들을 쌓아냈으면.



 마흔 넘은 닭이 아직도 솜털난 병아리 같다. 읽고 쓰는 삶이 미약한 나를 성장시키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 나는 성실하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쪼았다. 마음의 잡음을 끄고 그래도 오늘을 살았다. 새 새벽이 오면 우렁차고 시원하게 한 번 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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