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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Oct 01. 2022

덩굴식물

덩굴식물


지난해 받아 두었던 풍선덩굴의 씨앗을 뿌린 화분에 작은 떡잎이 올라왔다. 화단 하나 가꿀 수 있는 마당은 없지만 현관 밖에 내어놓은 화분에 올라온 싹이다. 햇볕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아침이면 조리개로 물을 뿌려 주었다.


어린싹은 잘 자랐다. 아침에 보니 초록의 이파리 사이로 가느다랗지만 길고 꼬불꼬불한 덩굴손이 올라왔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그런 것처럼 사춘기쯤 자랐을 풍선덩굴도 혼자 서기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덩굴식물은 어딘가에 의지해야 꽃 피고 열매를 맺는다. 풍선덩굴을 위해 가느다란 낚싯줄을 찾아 화분과 처마 끝을 연결했다. 덩굴에 주렁주렁 풍선을 매다는데 좋은 지지대가 되어주길 바라며 덩굴손의 기둥을 만들었다.


한 때,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새벽 등산을 다닌 적이 있다. 사실 등산이라기보다는 숲길 산책 정도의 나들이였다. 이른 아침,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배낭에 넣고 여름 아침의 이슬을 털어내면서 치악산으로 향했다. 치악산 아래 이곳저곳의 숲길을 산책하다가 도시락을 꺼내 아침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른 아침의 여름 햇살은 맑았고 산의 초록 이파리들은 싱싱했다. 숲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건강이 하루에 한 뼘씩은 자란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몸에 피와 살이 되는 게 분명했다. 긍정의 사고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건강 역시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민머리에서는 싹이 올라오듯 솜털이 자라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고, 더벅머리 개구쟁이처럼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톤치드 가득한 산의 공기가 몸과 마음을 치료했고 웃음이 점점 많아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옆을 보니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다. 한 아름이나 되는 갈색의 두둘두둘한 소나무 기둥에 연한 초록의 담쟁이가 작은 이파리로 기둥을 기어오르고 있다. 이슬 먹은 숲 속의 어린 담쟁이가 귀엽고 예뻤다. 굵은 기둥을 내어준 소나무도 늠름했다. 그 모습이 예뻐서 웃음까지 따라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계곡의 다른 쪽에는 칡덩굴과 함께 다른 덩굴나무들이 엉켜 있었다. 자리를 잡고 키를 키운 나무기둥에 덩굴나무 줄기가 얼기설기 얽혀서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큰 키의 나무는 나무대로 자신의 가지를 뻗고 있었다. 덩굴식물들 역시 자신의 몸을 의지할 곳을 찾아 이웃의 나무 기둥과 줄기를 감은 채 이파리들을 키우고 있었다. 서로 살아가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난장판이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매달려 살아가는 내가 식물이라면 과연 어떤 식물일까? 기둥을 곧게 세우고 당당하게 혼자 살아가는 나무는 아니다. 건강을 돌봐주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줄기를 가진 식물이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없었을까? 아프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해져서 가족들에게 걱정거리를 만들거나 화를 내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발을 담그고 앉아 앞으로의 생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 했다. 회복을 위해 홀로서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의지하기에 앞서 조금 더 운동에 집중하기로 하자. 때로는 의지해야 할 기둥이 필요한 덩굴식물이라 하더라도 나팔꽃 같은 예쁜 덩굴식물도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니 걱정이 사라졌다. 걱정이 달아나면 웃음이 함께하는 생활이 된다. 운동과 웃음이 건강의 지지대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아침운동 길에 마주하는 밭에서는 오이와 호박 덩굴이 올라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덩굴식물은 얽히고설켜 갈등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좋은 영양제가 되기도 한다. 밭에서 자라는 덩굴 농작물의 지지대를 바라본다. 좋은 지지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을 한다. 걸으면서 가족들의 아침상에 오를 영양제를 생각한다.


집으로 들어서며 화분의 풍선덩굴을 다시 둘러본다. 지지대를 잡은 가느다란 덩굴손에 힘이 가득하다. 저 덩굴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예쁜 여름과 가을을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초록 화분에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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