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는 아닙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러 개의 일정들이 참으로 바쁘고도 촘촘하게 지나갔다. 하루 종일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피로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회복하는 사람인가?
나는, 사실 어디서든 잘 눕는 편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놀이터의 등나무 아래 길게 놓인 나무 의자, 대형 마트 구석의 넓은 벤치, 좌식 감자탕집의 테이블 옆, 심지어 처음 방문한 지인의 집 소파 위에도 눕는다. 물론 한적한 시간에, 그리고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상황이어야 한다. 핑계를 대자면 많이 눕던 때는, 임신 중이라 쉬이 피곤이 내려앉기도 했었다.
대체로 1-20분이면 충분하다.
몸의 에너지를 끝까지 끌어다, 다 써버린 상태. 마치 폰의 배터리가 5% 아래로 떨어져 삼성페이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결제를 위해 단 1프로의 충전이라도 당장 필요한 순간인 것이다. 눈꺼풀이 무겁고 입술조차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 그 짧은 휴식은, 다시 눈을 뜨고 입술을 열고, 앉거나 걷기 위한 나의 필수 충전 시간이다.
운전대를 잡은 나의 팔은 차가 차선 안으로 잘 달릴 수 있도록 미세하게 조정하고 있지만, 입꼬리는 턱 아래를 향해 잔뜩 내려가 있다. 혼자만의 차 안에서 단 한마디의 혼잣말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노래를 부르지도, 음악도 듣지 않는다. 그저 고요히, 겨울잠을 준비하는 곰이 동굴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처럼, 에너지를 아낀다. 방금 전까지 웃고, 말하고, 손뼉 치던 나를 내려놓고, 행동을 최소화하며 회복되길 기다린다.
무표정한 얼굴이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스스로를 웃는 상이라 생각했건만 무신경한 내 얼굴은 시무룩하게 입꼬리가 내려가고, 눈은 동그랗게 뜨지 않아 매섭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있을 땐 미소를 지으려 애쓴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매를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아무 표정도 지을 필요 없는 시간, 눈조차 감아도 되는 그 짧은 와불상 상태에서 나는 충전된다.
누구에게나 무의미하거나 느슨한 시간은 필요하다. 반드시 '의미 있는 일'로만 하루를 채울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런 삶을 아이들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 학원에서 돌아와 소파에 널브러진 아이들을 보며 나무라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너도 회복 중이구나'
멍하니 있는 시간, 소위 멍 때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깐.
오늘도 우리 집 소파에 잠시 드러누워 급속 충전을 하고서야 노트북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