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니차니피디 Oct 28. 2020

읽었으면 쓰자!

독서기록장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지금부터 5천 년 전에 ‘쿠심’이라는 회계사의 이름이 기록된 점토판을 소개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이름이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동굴 벽에 동물의 그림을 그렸고 손도장을 남기기도 했다. 이곳에 살았었다는 흔적들이 후세에 알리고 싶었는지는 모른다. 그때부터 우리는 기록하는 것만이 기억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5천 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에게도 26년 전 대학 생활을 기록한 일기장이 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면 중학교 졸업앨범 사이에 끼워둔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도 있다. 독자들도 보물상자 한 곳에 버리지 못한 어린 시절 일기장과 오래전에 주고받은 손편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기록은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쓰기와 기록의 의미를 보여주려고 1997년 사용했던 낡은 다이어리를 펼쳐 보였다. 아빠의 깨알 같은 손글씨를 본 차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보다 14년이나 더 오래된 물건을 처음 본 것이 신기하다며 엄마에게도 보여주더라. 




“아빠, 저는 올해 500권을 읽을 거예요.” 새해 독서계획을 발표하는 차니의 다부진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하루에 그림책 두 권만 읽어도 가능하다며 자신했다. 원 워드로 '끈기'를 정했으니 끈질기게 책을 읽고 싶다는 의지도 보였다. 지난해까지 책에 흥미가 없던 차니에게 가족나비는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독서습관을 확실하게 잡아주기 위해서 아빠도 50권을 읽겠다고 약속했다. 시니는 이야기책으로 200권을 읽겠다고 했다. 


목표를 이루려면 읽은 책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독서기록장을 별도 양식으로 만들었다. 책 제목, 내용, 날짜를 기록하고 내용에는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으로 구분했다. 나비에 발표할 책인지, 유튜브에 소개할 책인지도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아빠의 정성으로 독서기록장을 직접 만드는 것을 권한다. (아래 양식 참고)

     


독서 후 활동으로 기록과 발표를 하면 좋다. 독후감이나 필사를 하면 책을 읽은 감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같은 내용이라도 눈으로 읽기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쓰면 뇌가 활성화되어 장기기억에 자리 잡는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의 감성이 중요한 이유다. 손끝에서 시작한 생각과 감정이 상상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기를 바라며 독서기록을 이어갔다. 


얼마 전 차니 아홉 번째 생일이 지났다. 독서기록장에 500번을 채운 기념으로 같이 축하를 해주었다. 연필로 눌러쓴 A4 220장이 제법 두툼하다. 시니도 160장을 만들었다. 10개월 동안 책 한 권 분량이 넘는 기록물을 만들었다는 것에 아이들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두께감과 성취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봐도 대견스러웠다.


중요한 것은 독서기록장에 쓴 내용은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기대나 글쓰기 실력으로 아이의 기록장을 평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초등 3학년에게 글쓰기 실력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필사도 좋고 자기 생각을 한 줄만 써도 괜찮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기록장을 작성한다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릴 때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먼저니까.    


처음엔 한 장에 책 3권을 기록하도록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부족하다고 2권으로 용지를 수정했다. 한 장에 두 권을 기록하면 15줄로 책 한 권 내용을 기록한다. 부족하면 다음장에 이어 쓰기도 한다. 독서기록장도 100번째를 지나면서 치킨을 사주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들은 노력에 칭찬을 받으면 더 신나게 몰입한다. 




<차니 생각>

아빠의 오래된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아빠는 계속 기록을 하시는구나. 기록을 버리지도 않았구나. 기록을 하니까 다시 옛날이야기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구나. 나도 꼭 기록할 게 있으면 아빠처럼 노트, 일기장,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시니차니의 독서기록장 묶음


이전 11화 아이의 책을 읽어보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