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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

[단편] 아이를 찾습니까 (3)

by 히말

시설로 가는 게 아니라면 가방을 쌀 필요가 없다더니, 그 사회복지사 아저씨는 영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기내 가방에 책과 학용품, 아이패드, 유희왕 카드, 터닝메 카드, 그리고 우주 해적 레고 세트를 담아 가지고 서울로 왔다. 컴퓨터는 김은하 경찰관이 나중에 택배로 부쳐주겠다고 했다. 김은하 경찰관이 그래도 제일 고마웠다.


대구를 떠나던 날엔, 기차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내가 싫어하는 기색을 너무 내서 그런지, 사회복지사 아저씨는 오지 않았고 김은하 경찰관만 같이 왔다. 나는 기차역 편의점에 들어가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냉장 커피 두 개를 샀다. 하나를 김은하 경찰관에게 내밀었다. 한 번은 내가 쏘고 싶었다.


"커피 좋아하니?"


나는 입에 빨대를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클 때라 커피가 몸에 안 좋을지도 몰라. 하지만, 잘 마실게."


김은하 경찰관이 내 친부모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30대 중반이라 엄마랑 나이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애들 의견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목구멍으로 올라온 말을 내뱉는 사회복지사와는 달리 듣는 사람 마음을 헤아린 다음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지만,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경찰관 아줌마, 아이 있어요?" 곧 헤어질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나는 다소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아들 하나, 딸 하나."


"엄마가 경찰관이라서 좋겠어요." 경찰관 엄마가 있으면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고, 그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딴 데를 쳐다보았다.


대화를 거기에서 끝내고 싶었다. 정말로 우리 엄마가 나를 유괴한 것이 맞다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그랬다면, 엄마처럼 좋은 사람도 아이가 갖고 싶어서 범죄를 저지를 정도라면...


"뭐가 좋아. 엄마가 바빠서 아이들 챙겨주지도 못하고. 맨날 미안하지."


"하긴. 다른 애들 챙겨주느라 자기 자식은 챙겨주지도 못하니까, 아줌마도 힘드시겠어요."


"그게 일인데 뭘. 충기 어머님도 그렇게 남들 챙겨주시는 좋은 분이셨잖아."


김은하 경찰관도 나를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친부모를 만나러 가려고 기차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를 잊어버리고 '친엄마 친아빠'랑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수성 경찰서 공식 입장 아니었던가.


그런 마당에 남의 아이를 유괴하고 11년을 키운 다음에 죄책감으로 자살한 우리 엄마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은 맥락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김은하 경찰관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말꼬리를 흐리다가 다른 말을 이어 붙였다.


"서울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살아야 돼."


"그럼요. 걱정 마세요, 아줌마. 고맙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열차가 도착했고, 김은하 경찰관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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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 도착하면, 금천 경찰서에서 사람이 나와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몇 호차에 타는지 이미 연락을 해놓았기 때문에, 기차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김은하 경찰관이 말해 주었다. 혹시 무슨 도울 일이라도 생기면 연락하라는 빈말을 덧붙였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똑같이 빈말로 대답해 주었다.


서울까지는 두 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바깥을 쳐다보려는데, 자꾸 터널이 나왔다. 그래서 아이패드를 꺼내 들면, 다시 기차가 터널 바깥으로 나와 화면이 안 보이게 만들었다. 졸리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아 보았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가지 않았다.


30분이 넘게 옆자리가 빈 채로 와서 그나마 좋았는데, 대전역에서 옆자리에 어떤 아저씨가 앉았다. 앉자마자 자리를 뒤로 젖히고 잠이라도 자는 줄 알았는데, 시끄럽고 촌스러운 음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게 벨 소리인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 시끄럽게 통화를 하던 그 아저씨는 통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자기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서 통화를 계속했다. 지나가던 승무원이 통화는 연결통로에서 해달라고 말하면서 주의를 주었다. 죄송하다고, 금방 끊겠다고 말을 하면서 그는 일어나서 연결통로로 나갔다.


승무원이 객차를 나가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그리고 아까처럼 뒤로 기대어 시끄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계속했다.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매너가 왜 그 모양이냐고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했다. 잠깐 동안 목소리를 낮추던 그 아저씨는 조금 지나자 다시 원래 목소리 크기로 돌아와서 전화를 계속했다. 그 아저씨는 광명역에서 내릴 때까지 그렇게 계속 시끄럽게 굴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이나 롯데월드에 와보기는 했지만, 서울은 낯선 동네였다. 서울역에 기차가 들어서자 역이 정말 크다는 생각을 했다. 동대구역도 컸지만 서울역은 훨씬 더 컸다. 기차에서 내렸는데 나를 아는 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전화라도 해볼까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꺼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기둥 옆에 서 있던 아줌마가 휴대폰을 귀에 가져대는 나를 보고 다가왔다.


"충기 어린이?"


"네. 금천 경찰서에서 오신 거예요?"


"아니, 나는 사회복지사. 경찰관 아줌마는 잠깐 화장실 갔어. 나랑 같이 올라가자."


둘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대합실로 올라왔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사회복지사 아줌마는 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줌마가 기내 가방까지 들고 에스컬레이터 한 칸을 차지하니, 옆으로 사람이 걸어 올라갈 수가 없게 됐다. 뒤에서 사람이 걸어 올라오다가 내 가방에 막혀 제자리에 섰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 꽉 차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중에 누군가가 또 내 친엄마나 친아빠라고 주장하는 걸 아닐까 하는 공상을 했다.


금천 경찰서에서 나온 여자 경찰관과 합류하고, 우리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대합실에 있는 롯데리아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역 앞에 있는 롯데리아로 가자고, 여자 경찰관이 말했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고 말했지만, 둘은 점심은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 앞 롯데리아까지 걸어가는데, 계단 아래쪽에 노숙자가 앉아 있었다. 멀리 떨어져서 통과했지만, 냄새가 지독했다.


잠시 얼굴을 찡그리다가 생각했다. 내가 저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에 가면 고등학교 때까지만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학도 떨어지고 취직도 못 하면 저렇게 되는 것 아닌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머무를 집이 있게 되었으니 친부모를 발견한 것이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생판 처음 보는 어른 둘을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말이다.


롯데리아에서는 음료로 커피 셰이크를 달라고 했다. 오지랖 넓은 어른 둘은 예상했던 대로 성장기 어린이에게 커피가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게 둬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커피 우유나 커피 셰이크나 비슷한 거니까 그냥 먹겠다고 했다. 경찰관과 사회복지사도 더는 참견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길어야 며칠 동안의 인연이다. 오늘 내가 친부모를 만나서 기쁨의 포옹이라도 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나를 보지 않아도 될 터였다.


경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부터 금천 경찰서까지 갔다. 이제 경찰차를 하도 타서 그런지 신기할 것도 없었다. 경광등이라도 울리며 달린다면 모를까. 경찰차에서 내려서 금천 경찰서로 들어갔다. 정문 옆에, 자판기 몇 대가 서 있는 휴게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던 아줌마 아저씨가 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일어서는 게 보였다. 달리 누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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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곧바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아줌마는 30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에 핏기없는 얼굴이었다. 색이 바랜 갈색 머리카락을 머리끈으로 묶었는데, 머리끈을 풀면 산발일 것이 틀림없었다. 햇살 받은 머릿결이 푸석푸석한 것이 선명했다. 몸집은 왜소한 편이지만, 키는 오히려 우리 엄마보다 조금 더 커 보였다. 163 정도?


아저씨는 40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에 앞머리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튼튼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체격은 커 보였다. 은퇴한 야구선수가 알코올 중독이 되면 저런 모습일까. 두 어른 다 체크무늬의 와이셔츠 같은 걸 입고 있었는데, 다소 꾀죄죄해 보였다. 언뜻 보니 신발도 낡아 보였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점심은 드셨고요?" 사회복지사와 여자 경찰관이 거의 동시에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


"구내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아저씨는 나를 보면서 덧붙였다. "그 아이가?"


"네 맞아요, 아버님. 충기야, 인사해야지?" 여자 경찰관이 이쪽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허리를 90도로 꺾어 꾸벅 인사했다. 등에 멘 가방이 들썩였다.


아줌마는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아저씨 표정은 좀 달랐다. '감격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시원하지만 섭섭하고 씁쓸하면서도 다행이라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하긴, 11년 동안의 퀘스트가 끝났다. 전설템이라도 주어진다면 감격적이겠지만, 그냥 '상황 종료'라는 말과 함께 집에 가라는 말을 듣는다면 저런 표정일 수밖에 없을 거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예쁘기만 한 두 살배기 아이가 사라지고, PC방에 가고 커피 우유나 마시려는 초딩이 나타났으니 어이가 없을 수도.


아저씨 손에는 전단지가 쥐여 있었다. 대구에서 사회복지사 아저씨가 보여주었던 바로 그 전단지와는 조금 달랐다. 휴대폰에서 봤던 전단지는 왼쪽에 사진이, 오른쪽에 글이 적힌 전단지였는데, 아저씨 손에 쥐어진 전단지는 사진이 두 장이었다. 언뜻 보니 왼쪽은 아기 얼굴, 오른쪽은 어린이 얼굴이다. 11년이 지난 현재 모습을 추정한 사진이 더해진 전단지였다. 추정한 얼굴은 영 못생겨서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저들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만큼 저들도 나에 대해 설명을 들었으리라. 나의 친아빠라는 사람은 직장인이고, 친엄마라는 사람은 가정주부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집안 사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김은하 경찰관 말이, 친부모가 사는 서울 집은 지금 집보다 작다고 했다. 서울 집값이 워낙 비싸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기에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저 두 어른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을까? 유괴범이 진짜 엄마인 줄 알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했을 거고, 아이가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그거 말고, 캐릭터로서 나의 특징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까? 평범한 키에 약간 마른 체형, 조금 곱슬거리는 머리에 안경은 쓰지 않았고 말하는 속도는 좀 빠르다 정도? 석환이와 동필이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다면 뭐라고 할까? MMORPG 게임 캐릭터 이야기부터 하는 건 아닐까? 전사를 주 캐릭으로 키우는 사람이니까, 책임감이 남다릅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로 나를 설명할 수도 있겠다. 나는 커피랑 젤리를 좋아하고, 젤리 중에는 포도 맛 젤리를 제일 좋아한다. 음식 중에는 역시 피자를 제일 좋아하고, 떡볶이, 라면, 튀김... 그러니까 밀가루 음식은 다 좋아한다. 퍼즐이나 시뮬레이션 게임은 별로고 RPG가 최고다.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 색깔은 노랑. 이상형은 수지. 가수는 트와이스. 좋아하는 책은 역사 책. 야구팀은 삼성 라이온즈.


아저씨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아줌마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아줌마가 말했다. "네가 아람이야? 아람아, 엄마 모르겠어?"


우리 엄마는 죽어서 지금은 한 줌 재가 되었다. 엄마가 간호사로 있던 영남대병원 산하 납골원에 자리를 받아 그곳에 안치되어 계신다. 그리고 내 이름은 이아람이 아니다.


손을 아줌마에게 잡힌 채, 나는 말 없이 서 있었다. 아저씨가 어느새 가까이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람아, 아빠야.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금천 경찰서 여자 경찰관이 끼어들었다. "충기야, 엄마 아빠야. 손 잡아 드려야지."


냉큼 손을 잡아도, 머뭇거리면서 손을 잡아도 이상해 보일 것이다. 엄마는 없다. 내게 지금 남은 선택지는 시설이냐 새로운 부모냐, 그렇게 두 가지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사라져 혼자 살고 싶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안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시설보다는 이게 낫다고 한다. 아니, 친부모를 찾았으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않을쏘냐 하는 분위기다. 수성구 사회복지사 그 아저씨만 의견이 달랐어도 참 좋았을 텐데. 이번에 한창 소동을 겪으면서 만난 수많은 어른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그 아저씨도 '시설보다는 친부모가 낫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더 기분 나쁘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뭇거리며 손을 잡는 쪽이 되고 말았다. 아줌마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왼손을 그대로 놔둔 채, 오른쪽에 덜렁거리면서 팔에 매달려 있던 오른손을 들어 아줌마의 그 손 위에 포갰다.


외아들인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이들은 겉보기보다 더 젊을지도 모른다. 11년 동안의 고통, 분노, 좌절, 그리고 쉴 새 없는 노동이 이들을 더 나이 들게 했다. 그걸 죄라고 한다면, 내 엄마는 죄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재가 되었다. 나를 이들 친부모에게 돌려주기 위해 그렇게 길고 긴 유서도 썼다. 도중에 분실되지 않도록 등기 우편으로 부쳤다. 혹시 내가 다른 마음을 먹을지도 몰라 경찰서로 보냈다. 아들의 친부모를 찾아달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이래도 죗값이 아직 남은 걸까?


엄마는 아이를 갖고 싶어서 나를 유괴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던졌으니 엄마는 결국 행복하지 못했다. 엄마를 잃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나도 지금 괴롭다. 이들은 나를 되찾아 지난 11년간의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들은 지금 정말 기쁜 걸까?


아줌마가 내 손을 잡은 채 눈물을 떨구었다. 목이 마르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 커피를 마시면 더 목이 마른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시고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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